빌레몬서는 바울 서신 가운데 가장 짧은 서신인데, 헬라어 원어로 겨우 335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성경은 빌레몬서를 ‘프로스 필레모나’로 부릅니다. ‘빌레몬에게’라는 뜻인데, 빌레몬서는 이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서신의 발신자는 바울이고, 수신자는 빌레몬입니다.
빌레몬은 에베소에서 내륙 방향으로 약 161킬로미터 떨어진 골로새 시에 살았던 노예들을 소유한 부유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사역할 때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빌레몬의 노예 중 하나인 오네시모는 잘못을 저지르고 로마로 도망쳤습니다. 대체로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돈을 훔쳐서 도망친 것으로 봅니다. 그런 오네시모가 로마에서 바울을 만난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위해 오네시모의 도움과 섬김이 계속해서 유지되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보다 먼저 도망친 노예였던 오네시모와 주인 빌레몬의 관계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단지 노예로서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들이기를 호소하기 위해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서신과 함께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빌레몬서가 기록된 시기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인 주후 61-63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에 바울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인사(1-3)
바울은 빌레몬과 빌레몬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에 안부를 전하며 편지를 시작합니다.
(1-3)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다른 서신서에서는 자신을 ‘종’이나 ‘사도’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서에서는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은 실제로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빌레몬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로마 감옥에서 쓴 다른 서신과는 달리 오직 빌레몬서에서만 자신을 갇힌 자로 소개하는 것은 사도의 권위로서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함께 고난받는 동료로서 빌레몬에게 호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수신자인 빌레몬을 ‘사랑을 받는 자’이자 ‘동역자’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고, 자신에 사역에 동참하는 동역자로 여겼습니다. 빌레몬 다음으로 거명된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로 보입니다. 또 바울이 자신과 함께 병사 된 자라고 지칭한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이거나 그의 가정에 속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빌레몬의 가정과 그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에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4-7)
바울은 빌레몬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찬사를 보내며 자신의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4-7)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바울은 자신이 빌레몬을 위해 늘 기도했음을 밝히며, 빌레몬의 두 가지 면모를 칭찬합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성도를 향한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입니다. 특히 사랑과 믿음이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료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타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알파벳 X와 같다고 말합니다. 중간점으로부터 위아래의 길이가 똑같아야 온전한 X인 것처럼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 조화와 균형을 이룹니다. 빌레몬은 이 X의 삶을 잘 살아냈기에 바울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빌레몬처럼 X의 삶을 추구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레몬의 사랑의 열매로 자신이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음을 칭찬합니다. 또 성도들이 빌레몬으로 인해 마음의 평안함을 얻었다는 칭찬으로 보아 그의 베풂과 마음 씀씀이가 매사에 관대했을 것입니다.
빌레몬을 향한 바울의 칭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은 믿어도 좋다’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이 오네시모의 일에도 반영되기를 바랐습니다.
오네시모를 위한 간구(8-21)
바울은 이제 도망친 노예인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 들여줄 것을 빌레몬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특히 빌레몬이 그를 다시 받아 들여줄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환영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8-9)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바울은 사도로서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오네시모 문제의 해결을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연로한 죄수의 상태에서 사랑의 권면으로 빌레몬의 자발적 결단을 호소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의 강요 때문에 마지못해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빌레몬이 자발적으로 오네시모를 용서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가 있습니다. 무슨 수단이나 방법을 쓰더라도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속담처럼 ‘결과 우선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향해 결과보다 바른 과정이 더 중요함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는 그렇지 않은 방법으로 만든 결과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10-12)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바울은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말함으로써 오네시모가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그의 사역을 통해 회심했음을 밝힙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을 자식처럼 생각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아버지라고 말하고, 회심한 후 동역자가 된 디모데와 디도도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오네시모를 아들이라고 부를 때는 그보다 더한 사랑의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그리스-로마의 철학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노예와는 인간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역설합니다.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인과 연장 사이에, 영혼과 몸 사이에, 주인과 노예 사이에는 전자가 후자를 사용해 유익을 얻을 뿐이다. 생명 없는 사물을 향해 우정이나 정의를 논할 수 없다. 노예는 살아 있는 연장이고, 연장은 생명이 없는 노예다”라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아 있는 연장’으로 정의하며, 인간관계의 성립 자체를 부정한 노예 오네시모를 바울은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이 노예 오네시모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죄인인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봅니다. 벌레보다 못한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은 감히 측량조차 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오네시모가 전에는 빌레몬에게 무익했으나, 이제는 바울과 빌레몬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또 오네시모가 자신의 심복이라고 강조합니다. 심복은 ‘배와 가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지만, ‘긴하여 없어서는 안 될 사물’ 또는 ‘마음 놓고 부리거나 일을 맡길 수 있는 충성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됩니다.
도망친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무익한 사람에서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변화를 이끕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도 무익한 사람에서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13-16)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복음의 동역자인 빌레몬은 옥중에 있는 바울을 도와 안팎으로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도 빌레몬에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신 곁에 두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의 돈을 훔쳐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노예가 도망치는 것만으로도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오네시모는 주인의 돈을 훔쳐 달아났으니 그 죄가 너무 컸습니다. 바울은 이 죄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할 문제임과 동시에 빌레몬과도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직시했습니다. 그래서 속건 의무를 다하게 하려고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바울은 인간에게 속건제를 명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제 빌레몬이 자발적으로 ‘선한 일’을 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오네시모를 자발적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떠난 것을 영적인 의미로 해석합니다.
오네시모가 도망친 노예였지만 그리스도를 믿고 유익한 사람이 되었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빌레몬과 영원히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에는 인간의 잘못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잘 드러납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모를 때가 많지만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선으로 바꾸시는 경험을 수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 세심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삶을 계속해서 책임져 주십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이제 빌레몬에게 돌아갈 오네시모를 노예 중에 하나로 대하지 말고, 사랑받는 형제로 여길 것을 강하게 권면합니다. 바울은 주인과 노예라는 관계의 회복을 넘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 것을 촉구합니다. 사회적 관습과 세속적인 가치를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법(갈 6:2)을 성취해야 하는 과제가 빌레몬 앞에 주어졌습니다.
(17-21)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그래서 빌레몬이 바울을 동역자로 생각한다면 오네시모를 바울 자신처럼 생각하여 환대해 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또, 오네시모가 불의를 하였거나 빚진 것이 있으면 자신 앞으로 계산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와 함께 바울은 빌레몬도 자신에게 빚을 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복음 전파를 통해 빌레몬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오네시모가 저지른 불의와 채무에 대한 책임을 더는 묻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의 요청을 반드시 들어 줄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빌레몬으로 인해 자신이 기쁨을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이뿐 아니라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라는 말에는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한 후에 다시 자신에게 돌려보낼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끝인사(22-25)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숙소를 마련해 달라는 마지막 요청과 함께 안부를 전하며 편지를 맺습니다.
(22-25)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바울은 자신이 석방된다면 그것은 빌레몬의 집에서 모이는 성도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결과로 석방된 이후에 자신이 머물게 될 숙소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또 에바브라,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의 문안 인사를 전합니다. 이 다섯 사람의 이름은 골로새서 4장 10-14절에도 등장합니다. 바울은 축복 기도로 빌레몬서를 맺습니다.
빌레몬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료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사랑과 믿음을 나타낸 사람이었습니다. 온전한 X의 삶을 살아낸 빌레몬이지만 그에게도 도망친 노예인 오네시모와의 관계는 풀기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그런 빌레몬에게 바울은 사랑의 권면을 통해 자발적인 용서를 요청합니다. 사회적 관습과 세속적인 가치를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하는 과제가 빌레몬에게 주어졌습니다.
한편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의 돈을 훔쳐 도망친 노예였습니다. 도망자였던 그가 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 심복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속건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는 도망쳤던 주인 빌레몬에게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 서신 이후에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초대교회 전승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가 에베소교회에 보낸 서신에는 오네시모가 에베소교회의 감독으로 헌신하고 있다고 나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서신에서 헌신적인 오네시모의 사역을 거듭 칭찬합니다. 또 오네시모는 주후 95년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용서를 낳았고, 그 용서가 온전한 헌신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자신만의 빌레몬서를 삶으로 써 내려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빌레몬과 같이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바울과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복음의 다리를 놓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의 다리를 놓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