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서의 삶(Life beyond death) 요8:51

 

요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오늘은 성금요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이 땅에서 죽음을 선택하신 날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죽음으로 그 값을 치루신 날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삶과 죽음을 다른 각도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귀신 들렸다고 비난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주님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분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치 선문답처럼 이어진 대화 끝에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만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물었을 때 들었던 ‘I AM’을 예수께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는 나’다.”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에게 적용한 것입니다. ‘I AM‘(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일러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삶과 죽음을 넘어 계셔서, 초월하신 하나님의 본성, I AM으로 자신을 소개하신 것입니다. 이에 ’신성모독‘이라고 분개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의 본성이 우리에게 적용되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한 삶과 죽음의 개념은 과연 무엇일까? 2020년도 아브라함 카이퍼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두 번째 산’이란 책에서 삶과 죽음의 주제를 ’산의 비유‘로 소개합니다.

그 책에 소개된 호주 브리즈번에 사는 ‘그레그 선터’의 사연입니다. 그가 21년을 함께 살던 아내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내의 수발을 들면서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병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제가 병수발을 한 시간은 채 6개월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죽음만큼이나 충격적이었던 것은 죽음에 대한 저의 성찰입니다.“

그리고 소개한 것은 마치 C.S 루이스의 ‘A grief observed’(헤아려 본 슬픔)의 내용과 흡사한 성찰의 사연입니다. “저는 그 경험을 통해 내면적인 성찰을 하면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성장한 것의 정말 많은 부분이 아내의 죽음에 따른 결과였다는 깨달음에 저는 죄책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아내의 죽음을 통해 죽음이 저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죽음은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죽음이 삶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육신적인 죽음 후에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우리의 믿음이 그 첫번째입니다. 또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죽음이 삶의 일부가 되어 더 이상 고통을 주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기 싫어서 발버둥 치는 것은 죽음의 가치를 아직 삶과 연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짜 죽음은 죽음을 삶의 일부로 만들지 않고 삶이 끝나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Life beyond death(죽음을 넘어서의 삶)을 믿게 되면 죽음은 더는 죽음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됩니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작은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 주를 따르는 것’은 이미 일상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삶을 말씀합니다. 이러한 죽음들이 이웃을 위해 쓰였다면 우리도 의미 있는 죽음을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인 삶입니다. 그 십자가의 삶을 따르면 삶과 단절되는 절망적인 죽음을 맛보지 않게 됩니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두 번째 산’에서 우리가 죽음이 주는 고통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각이 열리면 우리의 삶이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라 매듭을 짖습니다.

’성 금요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 ’함께‘의 진리를 선물하신 것입니다. 이미 이루신 하나님의 결론,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는 것’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 금요일의 사건이
우리의 일상에 함께 나타나는
우리의 사건이 되게 하소서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매일 작은 죽음을 경험하게 하소서
죽음이 삶의 일부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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