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위기가 몰려올 때
아가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흔히 ‘사랑은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일방적입니다. 사랑은 ‘공유’ 하고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일방적인 사랑은 기쁨을 빼앗고, 상대를 부담스럽게 합니다.
대학에서 만난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는 남자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알바를 해서 번 돈을 남자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남자의 자취방에 가서 빨래와 청소를 해주며 사랑하는 남자에게 많은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여자가 먼저 취직이 되었습니다.
남자는 취업이 되지 않자 대학원에 진학, 다시 ‘취준생‘이 되어 사회진출을 위한 숨 고르기를 하였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학비를 대고 헌신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남자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였습니다. 여자는 이제 고생스러운 시간이 끝나고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여자는 남자로부터 그만 헤어지자는 충격적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여자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자가 다른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왜 여자를 떠나려 했던 것일까? 여자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빚을 많이 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빚을 떠안고 결혼해 평생을 갚아야 할 부담감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쁜 남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물론 잘해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상대가 어떤 마음을 갖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내가 더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부담감이 가중됩니다.
사랑을 하면서 ‘내 사랑이 사랑이 맞나?’ 살펴봐야 합니다. 가짜 사랑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은 ‘사랑하는 것만으로 기쁜가?’입니다. 만약 사랑하는데 우울하다면 ‘적신호’입니다.
사랑하는데 힘들어서 다른 보상을 찾는다면 사랑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멈추고 돌아봐야 할 빨간 신호등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산더 듀마가 사랑의 본질을 잘 파헤칩니다.
“기쁨을 주는 사람만이 더 많은 기쁨을 즐길 수 있다.” 사랑은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것만큼 행복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사랑하면 행복해지는 이유입니다.
사랑의 노래인 아가서는 사랑하는 관계에서 잃을 수 있는 기쁨을 어떻게 회복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깨어있을 것을 말합니다. “나의 완전한 자야..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문을 열어 다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과 헤어지는 꿈을 꿉니다. 팔레스타인의 굵은 이슬로 흠뻑 젖은 채 먼 길에서 돌아온 솔로몬이 신부를 부르면서 문을 두드립니다.
술람미 여인은 깊은 잠에 빠져, 일어나 문을 여는 것이 귀찮고 불편했습니다. 마지 못해 문을 열고 그녀가 밖을 보았을 때 솔로몬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난 후였습니다(6절).
그 귀찮아하는 마음 때문에 사랑하는 신랑이 물러갔다고 생각하자, 그녀의 마음은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그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물러간 신랑을 찾기 위해 한 밤중에 길거리로 나섭니다.
당시나 지금의 중동지방 풍습으로 볼 때, 여인이 밤거리를 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습니다. 무엇을 상징적으로 말씀합니까? 사랑의 기쁨을 회복하는 노력을 상징합니다.
사랑하는 부부 간에도 때로 귀찮은 마음, 서운한 마음에 서로 문을 닫아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자기중심적인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그 상태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그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정신을 차려 솔로몬을 찾아 나섭니다.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를 쫓아내듯, 부부 안에 있는 문제를 함께 해결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 비유를 주님과 우리의 관계로 본다면, 우리도 처음에는 주님과 연합하는 기쁨을 누리지만, 어느 순간 그 뜨거운 사랑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마음에서 몰아내고 냉냉해집니다.
만약 기쁨을 잃었다면, 술람미 여인처럼 한밤중이라도 수치와 위험을 무릅쓰고 그 기쁨을 회복하도록 찾아 나서야 합니다. 페르시아 전쟁 때 장군 마르도니우스가 막대한 보물을 파 묻어 놓고 전사합니다.
이 소문을 들은 테베 사람이 보물을 찾으려고 신전에 빌자 제우스가 말합니다. “마지막 하나까지 돌을 뒤집어보라.” 유명한 인용구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찾으려 하는 것은 진짜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 성경 5분도 안 읽고 기도 5분도 안 하며 하나님을 보고 싶다는 말은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가서는 오늘 우리 영혼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기쁨이 가득차 있습니까? 만약 기쁨을 잃었으면 되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오 주여
사랑의 기쁨을 잃지 않도록
늘 깨어 있게 하소서
술람미 여인처럼 그 기쁨을 되찾도록
찾아 나서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