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말씀은 말과 다릅니다. 우리 말에서 말씀은 ‘말’과 ‘숨’(호흡)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의 ‘숨’(호흡)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단지 ’말‘일 뿐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3:16)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숨결이 인간에게 강하게 작용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도록 섭리한 것을 의미합니다.
헬라어로는 말씀을 지칭하는 단어를 두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고스’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레마’는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진 도구로 사용된 ‘음성 또는 소리’를 ‘포네’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나온 영어 단어가 phone 입니다. 구태어 구분한다면 ’소리, 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누구를 대표하는지가 결정이 됩니다. 우리 말은 결국 ‘포네’일 뿐입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떤 말이냐에 따라 내가 누구인지가 결정됩니다.
말이 곧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 자신의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 안에는 쉼 없이 재잘대는 자아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를 받아 전하면 나는 자아와 하나가 되고, 반면 성령으로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은 ’대언의 영‘이라고 소개합니다(계19:10).
우리 각자는 누군가의 말이 나를 통해 흘러나오게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우리 자아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말을 하는지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아나돗’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땅을 분배할 때 아론의 후손들에게 분배된 땅입니다.
예레미야는 아나돗 출신 제사장이었습니다. 예레미야를 아나돗 출신이라고 소개한 이유는 그들이 특정 집단을 이루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이 왕위를 이어받은 후에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했다가 실패한 다윗 때의 제사장 아비아달이 제사장에서 파면당하고 고향 땅 아나돗으로 쫓겨납니다. 아비아달은 엘리의 후손이었습니다.
엘리는 자녀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고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여 징계를 받아 죽음을 당하고 그의 손자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뜻의 “이가봇”이란 이름을 얻게 했던 사람입니다.
그 후손이었던 아비아달은 다윗 때는 다윗 곁에서 제사장 사명을 감당했으나 솔로몬 때부터는 더 이상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제사장의 사명만을 감당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런 출신 상의 자궤감이 있었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1:6)하고 겸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말’이 ‘말씀’이 되게 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때는 바벨론의 세 번째 침공으로 성전은 완전히 불탔고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노예로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선지자로 활동했기에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두 가지 “말라”와 두 가지 “하라”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말라‘는 두 가지는 “아이라 말하지 말라”와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이라고 하지 말라’는 것은 주의 일은 예레미야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그는 도구(포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두 가지 ’하라‘것은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라”는 말씀과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가서 말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던지신다’,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는 조국의 멸망이라는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던져진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우리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레미야’ 들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며, 가정에서, 일터에서, 우리 사회의 역군으로 ‘던져져’, 그곳을 ‘세워가는’ 도구(포네)들입니다.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그 안에 머물 때 우리의 ‘말’은 ‘말씀’이 되어 우리를 도구 삼으시는 주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오 주여
우리의 ‘포네’(말)을 도구 삼으소서
주의 뜻이 우리 안에, 우리를 통해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