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VCC 오늘의 묵상 (7월 21일 목요일)
바울측근의 남자들
📖 딤후 4:9-21
로마 감옥의 연금 상태에서 잠시 풀려난 바울은 동역자들과 함께 니고볼리 전도집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도집회가 한창 준비 중일때 로마로부터 모든 죄수들 특히 기독교인 모든 죄수들을 다시 감금하라는 명령이 내려집니다. 이로써 바울은 다시 감금되게 됩니다. 이때 바울은 이제 곧 죽게 될 것을 직감하고 유언에 가까운 편지를 기록합니다. 그것이 디모데후서입니다. 이 유언의 내용은 한마디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1:7-8)
지중해 일대와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한 위대한 바울 사도에게도 이제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 노년이 찾아 왔습니다. 사람은 죽음이 임박해 오면 생각이 많아지는데 무엇보다 자기를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하나 하나 떠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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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디모데후서 본문에도 바울을 지나간 사람들의 명단이 쭉 열거되는데 무려 18명이 됩니다. (디모데, 데마, 그레스게, 디도, 누가, 마가, 두기고, 드로아 가보, 알렉산더, 브리스가와아굴라, 오네시보르, 에라스도, 드로비모, 으블로, 부데, 리노, 글라우디아) 그 중 3명 정도는 우리가 유심히봐야 될 인물들입니다. 바로 데마, 마가, 누가입니다.
첫째, 데마(중도하차형)입니다.
데마라는 이름의 뜻은 ‘인기가 있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데마의 생애를 보면 그 이름과 이상하게 일치되는 것을 봅니다. 세상의 인기를 너무 좋아하다가 그만 끝이 좋지않게 끝납니다. 인기는 무슨 연예계만의 얘기도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모두도 인기도 추구하면서 그 인기에 살고 인기에 죽는지도 모릅니다.
데마는 처음에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 게 틀림없습니다. 믿은 그 즉시부터 바울 곁에서 열심으로 선생님을 섬깁니다. 그가 1차, 2차 투옥 때 바울과 같이 있었던 것을 보면, 그의 선교여정은 결코 일시적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감옥까지 따라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1차 투옥 때는 바울이 석방될 가능성이 많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2차 투옥이 되었을 때는 석방 가능성이 점점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네로황제가 등극하면서 환경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데마는 점점 심적인 변화를 겪게 되고 그러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바울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자기 고향 데살로니가로 떠나버립니다. 그가 어떤 이유로 떠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바울이 그에 대해서 코멘트 한 것을 보면 그의 상태는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것보다 더 모욕적인 표현이 어디 있을까요? 믿음이 약해지자 세상을 사랑하는 본능이 되살아나고 그 본능앞에 데마는 결국 굴복하고 만겁니다.
둘째, 마가(개과천성형)입니다.
마가라는 이름은 로마 이름입니다. 그의 히브리어 이름은 요한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예의가 바르다”라는 뜻인데 그는 이름과 걸맞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생애에 한 번 실수를 하긴했지만 더 이상의 실수는 없었던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마가는 실패를 딛고 일어난 헌신자의 모범입니다.
마가의 모습은 신약성경 여러곳에서 발견됩니다. 마가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이 체포되어 갈 때,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쫓아가다가 잡히게 되니까 그것을 벗어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갔던 사람입니다. 예수를 배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가는 선교여행을 갔다가 힘들다고 갑자기 떠난 사람이었입니다. 1차 전도여행 때, 사도바울과 자기 외삼촌인 바나바와 함께 전도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노숙의 고통을 못 견뎌서 그만 중도에 포기하고 집으로돌아가 버린 겁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이 마가 때문에 위대한 두 선교사인 바나바와 바울이 언쟁을 벌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이 일로 싸우고 완전히 갈라섭니다. 어떻게 보면 마가는 헌신자로서 자격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을 합니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마가는 실패와 역경을딛고 진정한 헌신자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실패와 실수는 있습니다. 마가는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헌신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후에 마가는 다락방을 드려 교회가 되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후에 약속을 기다리면 120명의 성도가 기도해서 성령을 받은 곳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선가 다시 바울을 만나 1차 투옥 때 바울의 옥중수발까지 들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마가는 사도 베드로의 수행자가 되어 베드로로부터 예수님의 복음을 생생하게 듣고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만약 마가복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 두 복음서는 최초의 원복음인 마가복음을 기초로 했기 때문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마가는 후에 소아시아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째, 누가(초지일관형)입니다.
누가의 이름은 ‘빛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름의 뜻과는 반대로 누가는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헌신한 가장 아름다운 소명자였습니다.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의사는 배운 게 많고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직업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통해 예수를 발견하게 되고부터 누가는 더 이상 옛날의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직업과 지식, 재산, 젊음, 생애 전부를 다 바울이 전하는복음을 위해 바쳤습니다. 즉 바울이 전했던 예수를 위해 바쳤던 것입니다.
누가 복음, 사도행전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결혼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젊어서부터 선교하러 다니다 보니 혼기를 놓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울의 동역자로서, 주치의로서 바울 곁에 끝까지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누가의 모습은 처음과 끝이 똑같은 아름다운 헌신자였습니다. 그에겐 선교하는 일 외에 예수님에 대한 연구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자비로 여기저기 여행을 하면서 예수님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바울의 선교현장을 기록해서 후대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는데 그것이 사도행전이었습니다. 누가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헌신의 모습은 시종일관 변치않는 헌신인 것입니다.
한 번 마음을 먹은 후로는 데마처럼 중도에 포기하지도 않고 마가처럼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끝까지 갔습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그 구원하심에 감격하면서 그리고 상 주실이심을 믿으면서 헌신을 각오하고는 그 마음이 요지부동이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가면서 퇴색되거나 변질되기는 커녕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헌신자로서 더 빛을 발하며 고귀한 생애를 마쳤던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세상의 인심이 변하고 시대가 변해도 바울곁의 누가와 같이 초지일관 헌신할수 있는 변치않는 신실한 마음과 충성된 믿음을 주시옵소서! 환난으로 좌절되거나 죄로 미혹됨이 없이 사랑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가정과 교회, 일터가 평안가운데 든든히 서가는 하늘의 비전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환난과 핍박중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