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홀이라고 하는 분은
그 부모님이 한국에 와서
선교사로 일생을 보내고
세상을 떠나시고,
그 아들이
또 한국에 와서 일생을 바치고,
마지막 그 무덤이
부모님과 함께 이 땅에 묻혔는데.
19세기말
그 아버지 닥터 홀이
한국으로 들어올 때,
“왜 당신 그 나라 갑니까?
외국인들을 그렇게 미워하고,
그 박해가 심해서
많은 선교사님들이 죽고
서양 사람들을 핍박을 하고
그러는 데를 왜 가려고 합니까?”
그 때 닥터홀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희생시켜
이 도시의 문을 여실 생각이라면
나는 그 희생자가 되는 것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그 아버지가
감동적인 고백을 했는지 몰라요.
만약에
한 사람이 가서 순교해서
복음의 문을 연다면
내가 희생되어지겠습니다.
원래 캐나다 출신인데요.
뉴욕에 와서 병원에서 일하면서
부인되는 로제타 셔우드라는
여의사를 만나서,
같이 선교의 열정이 불타올라서
한국에 와서 사역을 하는데,
그 딸이
한국에 와서 병으로 죽고,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우리 한국 사람 돌보다가
전염병이 옮아서
남편과 딸이 먼저 죽었어요.
그런데 부인은
한국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내가 죽으면
내 남편이 내 딸이 묻힌
양화진에 묻어주세요.”
여기 양화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남편,
또 그 아내,
그 딸 선교사 가정이
거기 묻혔어요.
근데 그 아들이
미국 가서 의학공부를 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을 돌보는데
이런 고백을 했어요.
“내가 조선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댈 때
언제나 나의 마음도
그들의 심장 소리와
함께 두근거렸다.
나는 아직도 조선을 사랑한다.”
얼마나 우리
한국 사람을 사랑했는지.
그 아버지가, 그 엄마가
조선 사람을 사랑하여서
사랑을 베풀다 죽었으므로
나도 나의 뼈를
한국에 묻기 원합니다.
그가 91세가 됐을 때
한국에 초청을 받아 와서
그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나를
나의 고향인 캐나다에,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 묻지 말고
내 아버지, 어머니,
내 누이가 묻힌
양화진에 묻어주세요.”
그래서 그가 91년
세상을 떠난 후에
양화진에 부모님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들의 순교와
그들의 헌신과
그들의 주님을 향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출처:닥터 셔우드 홀의
“조선 회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