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여인, 그러나 온전히 드러난 여인
마 26:1-13
마태복음 26장 6-13절에서 우리는 귀에 익은, 그러나 눈에 낯선 이름없는 한 여인을 만납니다.
입으로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마 16장)와 대조되는 몸으로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익명의 여인 앞에 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여정의 마지막 정점을 치닫는 순간에 등장한 한 여인의 행위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1. 1-4절에서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음모와 계략, 14-16절에는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 사이에 샌드위치 구조로 오늘 본문이 놓여 있습니다.
한편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의 고난으로 몰아붙이는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배반자 제자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예수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 한 여인의 희생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서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이 드러난 제자와 이름도 없는 그것도 당대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던 익명의 여인이 서로 대조되고 있습니다.
2. 당대 유대 사회에 공개된 식사 자리에서, 여성이 남성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행위는 파격적이다 못해 혁명적입니다. 어떤 여성도 그렇게 행한 적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는 가부장제적 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남성 중심의 리더십에 대한 저항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3. 엄청난 사랑의 낭비입니다. 이를 향해 ‘허비’(apoleia)라고 비난하며 효율성 제로라고 조롱하는 제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8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그러나 이 여인이 행한 것은 자기 전 실존을 드린 헌신의 행위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말(허비)은 가룟 유다를 ‘멸망의 자식’이라고 말할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요 17:12). 여기서 제자들이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가치의 전복이 일어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당대의 종교사회적인 규범을 깨고 예수님이 ‘기름부음 받은 이’(메시야)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일종의 예언자적 의미를 지닌 예배 행위라고 해도 무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12절: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4. 예수님은 ‘내 장례를 준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스스로 고난받는 메시야임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최고의 칭찬으로 응답하셨습니다.
1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예수님의 이야기와 이 여인의 ’거룩한 낭비‘ 이야기가 함께 어울려져 증거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인가?
5. 그럼에도 이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말 몰라서였을까요? 복음서 저자가 아직도 가부장적 가치관에 젖어들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름‘을 쓰는 것보다 ’마음‘이 더 중요했기 때문일까요?(삼상 16:7 참조)
무엇보다 이 사랑스런 여인의 이름이 없기에, ’나‘같은 사람도 예수님의 사건에 참여할 수 있는 자기 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한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에서 우리 모두 이야기로 승화됩니다. 익명으로 사랑의 헌신을 지금까지도 감당하고 있는 수많은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향기로운 보배와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주는 몇가지의 물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닌 값비싼 향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소중한 자존심, 시간, 재물, 재능 등입니다. 오늘도 그것이 허비될까 보아 우리는 전전긍긍하면서 두 손에 꽉 움켜쥐고 꼼짝달싹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요 ?
예수님 앞에서 아낌없이 깨드릴, 곧 ‘거룩한 낭비’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나 자신 누구에게도 익명성으로 남아도 괜찮은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매순간 다가오는 질문이요 도전인 것입니다. 샬롬!
하나님
사람의 비난, 때로는 칭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 이름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앞서게 하소서. 나의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낭비’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나를 용납하고 인정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기쁨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