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자유함과 복
시32:2-3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허물과 잘못, 약점을 가리고 싶어합니다. 숨기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처음 했던 일도 자신 스스로를 숨기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본성이 SNS 등 미디어 플랫폼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SNS상에서 우리는 가리고 싶은 것은 철저하게 가리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선택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치 선악과를 먹은 것을 인증하듯 인류는 SNS 뒤에 자신을 숨기고 가리며 적절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가리고 숨기고 덮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숨기면 상처가 됩니다. 결점을 가리면 열등감이 됩니다. 가리고 싶을 뿐, 사실은 가릴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압니다. 가릴 수 없고 또 잊어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고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4절).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우리는 작은 잘못이 있을 때 덮으려는 습관을 들이지 말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사람들 앞에서 털어놓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의 신앙의 위대함은 자복으로 나타납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부인할 수도 있었고, 왕권으로 벌을 줄 수도 있었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지적에 “그렇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내가 범죄한 사람입니다”라고 인정했습니다. 그 인정이 다윗을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복되지 않은 사람은 죄를 숨깁니다. 성경에 죄를 숨기다가 멸망의 길로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간이 그러했고, 사울왕이 그러했고, 가룟 유다가 그러했습니다.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죄를 자복하지 않아서 입니다.
우리 안의 작은 죄들이나 부끄러운 것들은 감추어두어도 될 것 같지만, 실제로 꺼내놓고 보면 다시는 다시 감추고 싶지 않은 비밀들인 것입니다. 모든 것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드러나게 마련인 것을 가지고 있으려니 얼마나 힘이 들까?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항상 두려움에 쌓여 자유롭지 못하고 경직되고 남들만 비판합니다. 내면의 복은 겸손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옵니다.
다윗은 사죄의 기쁨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6절).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적절한 때에’, ‘바로 그 순간에’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할 적절한 때와 주님을 만나야할 바로 그 순간에는 꼭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거울’입니다. 카지노에는 거울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가 죄에 빠져있을 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본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자아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본 모습이 드러나게 만드는 거울입니다. ‘모든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숨기고 있으면 그 부끄러운 것이 드러나게 될까봐 두려워지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보게 되었다면 더 이상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래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기도 파트너’를 만드십시오.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우리의 교만과 두려움의 죄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감추인 것이 있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숨기고 싶은 것이 있나이다
더 이상 두려워말고 자복하게 하소서
내면의 진정한 자유함과 복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