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벙어리 귀신들린 한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아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I believe, help my unbelief)하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입니다.
막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어찌 보면 모순처럼 들리는 이 간구가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 아닐까? 분명히 믿는데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만 하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신앙 현 주소’가 아닐까?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인식하면서도 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지 않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우리의 삶에서 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소서’ 라는 고백은 ’믿음의 시작이자 지속적인 추구’입니다. 어느 누구도 완전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우리 스스로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도움을 청하는 것은 진실된 믿음의 모습입니다. ‘믿음이 없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다’는 표현은 그저 멋있는‘수사적 표현’이 아닙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여기지 않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순간, 비로소 기도를 통해 믿음이 작동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막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믿음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연이어 말씀하십니다.
막11:24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에서 ‘노련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악마 웜우드에게 ‘악마끼리’ 나누는 직접적인 충고가 있습니다.
“인간이 ‘원수‘에게 시선을 두면 우리는 패배를 면치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에게서 돌려 자기 자신만 바라보게 만들면, 쉽게 기도에서 멀어지도록 할 수 있다.”
마귀가 노리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 우리의 ‘믿음 없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괜찮다, ’이미 충분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막 9:22-24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누가 진정으로 기도합니까? 우리 스스로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기도합니다. 우리는 모두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경함한 사람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믿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우린 자주 넘어지고 자삐지고 쓰러지곤 합니다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믿음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의 믿음으로 채워 주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by Rev. Jae W. Cha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