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짖은 자의 감사(2026 추수감사절 설교)
시편 107편에는 네 사람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107편입니다. 107편에는 매우 중요한 사람들의 이야기 4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감사 선언으로 시작을 알립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시편 107:1~2 중)”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이 시편은 이어 네 종류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구체적인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사람: 시편 107:4-7절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
에서 피곤하였도다”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거할 성읍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길을 찾지도 못합니다. 방향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어디가 길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지점으로 가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 광야의 길, 사막의 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목이 마릅니다. 모든 기력이 빠졌습니다. 그의 영혼은 피곤하며 곤핍합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절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의 지경에서 건져 주십니다.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시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 그가 거할만한 장소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것이 첫 번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두번째 사람: 시편 107:10-16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려져도 돕 는 자가 없었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 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이어 두 번째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의 발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습니다. 아픔을 참고 어두컴컴한 곳에 갇혀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은 고생의 질곡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쓰러져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홀로 갇혔습니다. 외롭습니다. 일으켜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도와달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외로움에 지친 하소연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죽음의 지경에서 그를 건져 주십니다. 그를 묶고 있던 사슬을 끊어 주시고,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그를 나오게 하십니다. 쇠 빗장을 부러뜨리시고 놋 대문을 부서뜨리십니다.
세번째 사람: 시편 107:17-20
세 번째 사람의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스스로를 방탕한 곳에 두었던 사람입니다. 쾌락을 찾던 사람입니다. 죄악에 거하다 그만 큰 병에 걸려 죽을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입맛도 떨어졌습니다. 먹는 것조차 지겨워졌습니다.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강한 영혼의 절규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그를 고쳐 주시고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편 107:20)
이렇게 세 번째 사람의 이야기도 마무리됩니다.
네번째 사람: 시편 107: 23-30
네 번째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대양을 헤치며 고기를 잡아 장사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바다에 돌풍이 입니다. 물결이 치솟기 시작합니다. 그 배는 큰 바다에 나뭇잎만도 못한 존재가 됩니다. 큰 물결에 휩쓸려 조그만 배가 하늘 높이 올랐다 다시 바다 깊숙이 빠지곤 합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곤 넋을 잃었습니다. 배는 술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그때, 그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고통 속에서 그를 건져 내십니다. 광풍과 물결을 잠재우심으로, 죽음의 지경에서 그를 구원해 내십니다. 사방이 고요해졌고, 평온한 바다로 변화됩니다. 이내 그는 기뻐하며 바라던 항구에 도착합니다.
< 부르짖는 자에게 시인은 감사와 찬송을 올릴 것을 선포합니다. >
시편 107편은 네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편 107:31)”
“감사하라.” 그리고 “찬송하라.”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우리는 어떨 때 감사합니까? 어떤 사람이 감사를 드립니까? 어떤 모습이 진정한 감사의 모습입니까?
시편 107편을 읽다 보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문에 나오는 네 사람은 도저히 감사할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감사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모두가 고통과 고난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모두 한결같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광야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기진하던 사람입니다. 향방을 잃은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어둡고 캄캄한 곳에 갇혔던 사람입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외로움에 갇혔던 사람입니다. 또 한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 이르도록 병에 걸려 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살아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배를 타고 가다 풍랑에 빠진 사람입니다. 이중 어느 누가 하나님께 감사할 만한 조건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시편 107편은 감사할 조건이 없에 보이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서두에서부터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선포를 앞세웁니다.
동시에 이처럼 감사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환란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라는 구절입니다. 본문에서 이 말씀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6절은 이렇습니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6) 그는 광야에서 헤매던 사람입니다. 길을 찾지 못하고, 먹을 것을 얻지 못하고, 기진해 목말라하며 향방을 잃은 사람입니다. 이어 감옥에 갇힌 사람도 여호와께 부르짖었음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13절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13) 병에 걸렸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19) 마지막으로 풍랑 속에 있던 자도 똑같습니다. 28절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107:28)
1.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자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누가 감사한 사람입니까? 부자 아버지가 있어서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을까요? 부자라고 감사할 수 있습니까? 좋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 감사할까요? 좋은 이력을 가지고 나이들 때까지 모든 것을 누리는 사람이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오늘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말 가장 감사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여러분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사람일까요? 진정한 감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은 사람’입니다. 부르짖어본 사람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 본 사람만이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부르짖지 않은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닌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누리겠지요. 그러나 간절히 기도한 사람은 내게 허락된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압니다. 간절히 부르짖어 본 사람만이 자기 삶에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기도해 본 사람이 오늘 이 시간에도 가장 감사할 것입니다.
한편 오늘 본문에 흥미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말씀은 25절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시편 107:25)”
참 이상한 말씀입니다. 107편은 전반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는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네 가지 사례도 알려줍니다. 광야에 있던 사람, 감옥에 갇혔던 사람, 병이 들었던 사람, 풍랑 속에 있던 사람.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만 이어져도 될 것 같은데, 그 중간에 이해할 수 없는 본문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시편 107:25)”
풍랑의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 정말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바다에서 열심히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오셔서 큰 물결을 만드시고 어려움을 만들어 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물결을 잠잠하게 해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하라고요? 이것이 과연 맞는 이야기입니까?
우리를 골탕 먹이시는 하나님? 짓궂으신 하나님? 이렇게 이해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종종 어려움을 만날 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나를 광야로 몰고 가신 분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왜 내게 그 길을 잃도록 만드신 것입니까? 왜 나를 병마에 사로잡히도록 하신 것입니까? 내가 감옥에 갇히도록 놔두신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아닙니까?”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와 같은 말씀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이 굳이 시편 107편에 나타나는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얼마든지 빼놓아도 보기 좋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풍을 명령하셨다는 말을 빼도 이야기의 흐름은 아주 잘 이어집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훨씬 더 잘, 더 많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광풍을 일으키셨다’라는 구절을 삽입해야 합니까?
주석학자들에 의하면, 시편 107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사건을 기념하며 부른 감사의 노래라고 합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바벨론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응답 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을 포로로 보내신 분이 누구셨습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는 해방의 순간에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돌아오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시편 107편입니다. 포로의 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부른 감사의 노래입니다.
그들의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은 마치 광야에서 길을 잃었던 시간과 같았습니다. 또 갇혀 있던 시간과도 같았습니다.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 있던 시간은 풍랑을 마주한 배의 경험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나님께 감사하라.”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시간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감옥에 있던 시간이 감사하고, 포로의 시간이 감사하며, 병에 걸렸던 시간조차 감사하고, 풍랑 속에 있던 시간도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께 드린 기도를 주님께서 응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온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을 때, 긴 안목을 가지고 있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섭리를 바라볼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8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2~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경험을 하게 하신 이유는, 그들을 주리고 배고프게 하심으로 그들이 진정 먹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와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순간만 바라본다면 결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 생활을 했으나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지 않고, 먼 미래의 모든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게 될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6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 주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 주기를 원하시며 기다리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라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라도, 광야를 헤매고 있을 때라도, 폭풍과 풍랑 속에 정신을 잃고 있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시며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상 주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마지막은 해피엔딩입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안다면, 우리는 풍랑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말 감사합니까? 감사하지 않았다면, 기도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말 애절하게 기도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울부짖고 부르짖음으로 감사를 성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