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32) Bethany
🗒 길위의 묵상(Meditation on the road) 요 John 11:1-44
베다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의 끝 무렵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말하자면 감람산 동쪽 기슭 바로 아래에 위치한 동네입니다. 베다니( Bethany)는 히브리어로 집을 의미하는 ‘베트’(beth)와 ‘가난한”을 의미하는 ‘아니’(ani)가 함께해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래서 베다니는 ‘가난한 자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후 4세기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유세비우스라는 고대 기독교 역사가도 이곳을 ‘가난한자의 마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은 보기에도 다소 슬프고 연약해 보입니다. 베다니가 유명해진 것은 나사로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그를 살리신 사건이 바로 이 마을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지 지명은 아랍어로 ‘엘 나자리아(베다니)’ 즉‘나사로의 마을’로 불리웁니다. 이곳은 나사로의 실제 무덤을 보존해오고 있습니다.(사진)
오늘 본문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루살렘 길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이윽고 마을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마주하셨습니다. 나사로의 여자 형제 마르다는 “예수님이 계셨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요 11:21)”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족과 사람들은 그가 이미 죽었다고 확인하고 그의 장례절차마저 끝내 버렸습니다. 그들은 무덤의 돌문을 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시신이 이미 썩기 시작해서 냄새가 날 것이라고 응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이들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상황속에서 희망과 가능성, 새로운 시작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돌무덤을 옮기라고 말씀하시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신 후(요 11: 41-42)돌무덤을 향하여 큰소리로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Jesus called in a loud voice, “Lazarus, come out!” (요 11:43)”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 11:44)”
주님은 한 말씀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입니다. 베다니는 이제 슬픈 가난한자의 마을이 아니라 되살아난 나사로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끝이라고 여기는 곳을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시는 예수님의 선언을 삶의 진정한 기반으로 여깁니다.
부활하신 주님안에 거하면(In Christ) ‘자살’이 역전되어 ‘살자’가 됩니다. ‘Evil’이 ‘역전되어’live’가 됩니다. 주안에서 절망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 것’ 삶의 위기가 하나님의 기회가 됩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기는 그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여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나사로입니다. 주님은 삶의 고통의 무덤에 갇힌 오늘의 나사로를 향해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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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는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1:25-27)”
길 위의 기도) 오늘도 슬픔을 기쁨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역전시키시는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겸손히 따라 걷게하소서 ! 삶의 고통의 무덤에 갇혀 있는 오늘날의 나사로, 우리들을 향해 ’나사로야 ! 나오라‘ 예수부활생명 말씀을 선포하여 주옵소서 !
(말씀 : 장재웅목사님)
찬양) Karen Peck & New River(나흘후에) He is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