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23)
손바닥에 새겨진 사랑
(이사야 49:1-23)
한 청년이 도자기를 배우고자 어느 도자기 명인을 찾아갔습니다. 그 명인은 젊은이를 잘 맞이해 주었고 공장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좋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더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가 거실에 있는 유리 상자 안에 든 꽃병을 보며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저 작품은 정말 귀한 것이네요. 선생님께서 만드신 것입니까? 저에게 파실 수 있으신가요? 얼마면 되겠습니까?” 도자기의 명인은 고개를 휘저으며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나에게 얼마를 준다 해도 저것은 팔 수 없는 물건이라네. 내가 자네와 같은 젊은 시절, 하는 일은 잘되지 않았고 술과 도박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우연히 다른 도자기 공장에서 쓰고 남아 쓰레기 더미에 버린 흙을 발견했지. 그래서 그 버려진 흙을 주워다가 저 꽃병을 만들고 구운 것일세.“
”나도 처음엔 저렇게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네. 그러나 버려진 흙으로도 저 정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나 스스로 놀랐고,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네.“
”그때부터 술과 도박을 끊고 열심히 정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네. 남이 버린 쓸모 없는 흙을 가지고 저 작품을 만들었지만, 저 작품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네. 그런데 어찌 돈을 받고 팔 수 있겠나.”
버려진 흙으로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작품을 만들 때 진짜 능력이 드러납니다. 버려진 흙으로 만든 그 꽃병은 도자기 명인의 손바닥에 새긴 작품과 같았을 겁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21:42)
세상에서 천대받고, 버려진 것을 들어서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새로운 기회를 주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손바닥에 새긴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가장 천대 받은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하나님은 그 버려진 돌을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머리돌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사야의 두번째 ‘종의 노래’(사49:1-7)는 이렇게 세상에서 거절 당하고 버려져 고난당하는 종의 모습을 예언하고 그 버려진 종을 손바닥에 새기시는 모습을 그림 그리듯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6)“ 손바닥에 새긴 사랑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이 구절의 깊은 의미에 대해 즐겨 설교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사야서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도 나타난 바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손에 못자국입니다. 스펄전은 말합니다.
“주님 손에 있는 그 상처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망치로 못을 쳐서 주님 손에 새겼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그분의 손바닥에 진정 새겨질 수 있도록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손바닥에 그의 백성들을 새기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손에 못자국을 받으신 것입니다. ‘손바닥 사랑’입니다.
때로 삶이 우리를 속여, 슬픔과 어려움을 주지만, 그 고난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 주님 손바닥에 난 못자국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와 함께 아파하신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손바닥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셨듯이,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겨야합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6)“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잊지도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 분의 손에 지울 수 없는 표시를 새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주만 바라보며 찬양합니다.
주만 바라볼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