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 샘곁에 심겨진 복(창 49:22-26)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로인사입니다. 문간이나 집안 벽지나 그릇에 복자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집안에 복이 들어올 것에 대한 간절한 소원이 담겨 있다 할 것입니다
인간의 5복을 수(壽). 부(富). 강령(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顧終命)의 다섯 가지로 말합니다. 인생살이에서 너무 일찍 죽지말고 어느 정도의 수는 누려야 한다고 해서 수복(壽福)을 앞에 둡니다. 살아가는데 너무 가난해서는 안되고 일정 한 부가 필요하니 부(富福)을 듭니다. 사는동안 건강히 살아야 하니 강녕(康寧)이요. 위 3가지를 다 갖추고도 널리 덕을 베풀지 않으면 인생의 가치가 없으니 유호덕(攸好德). 마지막으로, 제명대로 살다가 많은 사람이 아쉬워할때 바르게 죽는 고종명(考=顧終命)을 합해 오복(五福)이고 합니다.
세상 어떤 민족도 복을 싫어하는 민족은 없습니다. 미국도 대화나 연설말미에 헤어질때 God bless you 이렇게 축복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도 구원받은이후 복을 받기 위함이라고 할정도로 성경은 신구약을 통털어 복에 관한 말씀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 복은 물질, 건강, 자녀의 복, 명예의 복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안에 거하는 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의 복, 영생의 복 등 포괄적으로 복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기대는 인간 창조과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이 복을 누렸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야곱이 하란 외삼촌의 집에서 살고 있을 때,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야곱의 12 아들 중 11번째 아들이 요셉입니다. 라헬은 결혼 후에 오래도록 자녀를 출산하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녀를 생각하시고 태를 여셔서 요셉을 낳습니다. 라헬은 이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하고, 또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하면서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습니다. ‘요셉’은 히브리말로, ‘씻다(없애다)’라는 뜻과 ‘더하다’는 뜻의 단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 짧은 본문에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며 ‘복’이라는 단어를 무려 7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5절과 26절의 복을 제외하고도 22-24절의 담을 넘는 확장과 보호의 축복, 26절 말미의 존귀함, 뛰어남의 복을 합치면 12번 복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25절에서는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고 말씀합니다. 하늘에서 비와 이슬이 적당히 내리는 복입니다. 땅 아래에서는 원천 곧 지하수가 끊임없이 솟아나는 복입니다. 물이 귀한 중동지방에서는 농사를 위해서는 비와 샘이 필수적입니다. 요셉의 곡간에는 곡식이 가득합니다. 젖 먹이는 복도 있습니다. 이는 풀이 많고 비옥하여 짐승들의 젖이 마르지 않은 복입니다. 태의 복은 자녀의 복입니다. 대가 끊어지지 않고 자녀들이 많습니다. 요셉의 자녀들은 애굽 땅까지 이르러 충만한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또한 정복하고 다스리는 복을 받았습니다. 23절입니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에게는 적들이 많았습니다. 자기 형제들이 적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적이었고, 주변에 그를 시기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운명이 적이 되어 이별과 모함의 모진 화살들을 쏘아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활보다 요셉의 활이 더 강했습니다.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24). 그들의 화살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요셉의 활로 그들을 쓰러뜨렸습니다. 운명을 정복했던 것입니다.
해와 달과 열한별이 절을 하는 꿈이 그대로 실현이 되어 형제들로부터 절을 받는 높고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만인의 으뜸이 되었습니다. 다스림의 복입니다. 흔히 3대 부자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주어진 축복은 그렇치 않습니다. 야곱이 받은 축복과 야곱의 부여조의 축복 그러니까 야곱의 아버지 이삭이 받은 축복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보다 더 뛰어난 복을 받았습니다. 그 축복은 영원한 복이었습니다.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26) 산은 마치 영원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견고하며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처럼 요셉이 받은 복은 오래 지속되는 복입니다.
요셉은 무엇보다 생육과 번성의 복을 받았습니다. 22절에서.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샘 곁에 있는 나무는 물이 많기에 무성합니다. 그 무성함이 극성하여 그 가지와 잎이 담장을 덮고 넘을 정도입니다. 담이란 것은 한계와 경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인생은 자기 한계를 뛰어 넘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경계를 넘어서 멀리까지 뻗어 갑니다.
요셉은 감정의 담, 환경의 담을 넘어 복을 받았습니다. 자신을 시기하고 죽이고자 했던 형제들과 감옥에 들어가게 한 보디발의 아내에게 대한 원한과 미움, 보복의 감정의 담을 넘어 용서와 사랑으로 관용으로 그들을 품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스라엘 감옥안이라는 환경의 담을 뛰어넘어 이국땅 애굽에서 국무총리가 되어 흉년이 들었을때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내는 복의 통로가 됩니다. 본인이 애굽 총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요셉의 자손들이 혈육의 담을 넘어 뻗어져 갑니다. 요셉으로부터 두 지파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나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그들이 차지했던 땅은 실상 다른 지파의 세 배에 달했습니다. 요단강 동편 쪽에 므낫세 절반 지파가 땅을 차지했고 서편 쪽에도 나머지 절반 지파가 차지했기 때문입니다.(수17:17-18) 요셉 지파는 두 몫 이상을 차지한 큰 민족이었고, 산지를 개척하고 철병거를 물리칠 정도의 큰 권능이 있는 지파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 출신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된 이유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늘 샘곁에 거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비가 오지 않는 여름철에는 모든 것이 다 말라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오아시스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오아시스 주변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키도 크게 자랍니다.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아시스는 지하수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언급한 원천의 복이라 할 것입니다. 사막 밑에는 지하수가 흐르고 있는데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곳이 바로 오아시스입니다. 사막 같이 볕이 뜨겁고 비가 없는 환경일지라도 오아시스 곁에서는 나무가 무성하게 자랍니다.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가에 심긴 나무는 사시사철 푸르고 싱싱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축복받은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곧잘 비유합니다. 이런 나무는 잎이 마르지 않고 시절을 따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잎이 무성하여 담장 너머로까지 뻗어갑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이라는 담을 넘어 애굽까지 이르러 무성한 존재가 된 것은 그가 늘 하나님, 말씀, 이스라엘(야곱)이라는 샘곁에 거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