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8월 러시아의 스탈린은 독일의 히틀러와 비밀조약을 맺습니다. 조약의 핵심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 러시아는 폴란드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핀란드 침략 실패로 심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독일과 협력한다면, 싸울 필요없이 어부지리로 소득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 믿은 것입니다.
히틀러로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할 힘을 얻는 조약이라 좋고, 또 전쟁을 시작하면서 동쪽과 서쪽의 두 개 전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지기에 스탈린과 비밀 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조약을 맺은 2년 뒤 히틀러는 조약을 깨고 러시아를 침공했고 수천만 러시아인들이 목숨을 잃고 맙니다.
러시아 국민 중 절반은 나치 점령에 고통 당했고, 러시아 제조업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스탈린이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거래하면서 치르게 된 끔찍한 대가였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은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렘11:4)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지않고 믿고 따르고 순종할 때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11:5절)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눈으로 보는 상황은 언약과는 달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기에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은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고 그들이 듣기 싫어 하는 말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나돗 사람들은 언약의 말씀을 상기시킨 예레미야를 죽이려 합니다. 이미 세상 속에서 세상적 가치가 그들의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언약의 말씀은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양심을 아프게 할 뿐이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 11장의 핵심 키워드는 ‘언약’입니다. (11:3-4)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린 자리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언약의 관계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 관계 속에 영원한 운명을 걸어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명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눈 앞에 보이는 환경만을 보고 자꾸 언약 밖으로 뛰쳐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말씀안에 머물 것을 안타까움 가운데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라는 말씀같이 눈 앞에 보이는 것에 휘둘려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주 안에 ‘머물면‘ 보게 되리라고 약속합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예수 안에 머무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다”(요15:4). ‘거한다’는 것은 ‘머무는’ 것을 의미하고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말씀을 접하는 시간을 꾸준히 갖는다면, 어느 순간에 저절로 주님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의 음성을 세상의 음성과 구별하게 되고 주의 음성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룩한 기도의 손을 다시 드는 것입니다. (딤전 2:8)
오 주여
오늘도 주 안에 머물게 하소서
주님의 숨소리와 그 음성에 민감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