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길(17) Lent QT
‘한적한 곳(Distant Place)’
“Jesus often withdrew to lonely places and prayed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Luke 눅5:16)
하나님의 사람들은 광야든, 들판이든 언제나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삭은 저녁이 되었을 때 한적한 들에 나가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창24:63). 모세는 광야 한가운데 하나님의 산에 이르러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출3:1). 엘리야는 브엘세바에서 광야로 하루를 나아가 거기 로뎀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왕상19:4).
성경에서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 광야에서 인생의 분주함과 복잡한 현실을 벗어나 오직 하나님만 만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당신의 사람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흥미롭게도 구약의 하나님 만남 장소인 ‘광야’는 신약에 와서 ‘한적한 곳’이라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한적한 곳의 헬라어는 ‘에레모스( eremos)’인데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의 ‘광야(midbar)’와 같은 말입니다. 사실 갈릴리 일대에는 이스라엘 남쪽에 펼쳐진 황량한 ‘광야’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분들은 구약성경 ‘광야’의 의미를 단어 그대로 가져와 ‘한적한 곳’으로 사용했습니다. 결국 신약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한적한 곳’은 결국 사역과 분주함으로부터 물러나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사역하시는 내내 ‘한적한 곳’을 활용하셨습니다. 갈릴리를 포함한 모든 곳에서 천국복음을 전하시고(Preaching)회당에서 가르치시고(Teaching)각종 병자들을 고치시는(Healing)사역하시는 중간마다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고 만나셨습니다. 하나님에게 ‘창조’만큼이나 물러나 쉬시는 ‘안식’이 중요했던 것처럼 예수님 역시 사역만큼이나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는 일은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즉 영적인 독서(Spiritual Reading)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경건의 시간(Quiet Time)이라고도 바꾸어 불러왔습니다. 묵상이란 한마디로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시편77:12).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 광대하심, 위대하심, 선하심, 동행과 인도하심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약(Medicine)과 묵상(Meditation)이란 단어는 어원이 같습니다. 약이 몸속으로 녹아들어 병을 치료하듯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도 약과 같아서 우리 미음속의 두려움과 죄, 염려와 근심의 병들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드와이트 무디(Dwight Lyman Moody)라고 불리우는 리랜드 왕(Leland Wang)은 1920년 예수님을 믿자마자 “영의 양식을 먼저 먹기 전에는 육의 양식을 먹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지 않고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다. “No (B)read, No (b)read” “No Bible, No Breakfast”는 구호를 만들어 신앙적인 성장과 성숙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하루 30분 말씀묵상 QT가 30시간을 좌우한다는 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삶은 ‘가난’해도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게 합니다.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게 합니다. 마른 지팡이에 싹이 나듯이 삶의 환경이 비록 척박한 황무지와 같을지라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바꿉니다.
🎼찬양)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길위의 기도) 사순절기간동안 각자의 기도의 골방 ‘한적한 곳’에서 주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