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개척의 길을 나선 사람들
에스라 2 :1-70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는 아무리 되돌아 봐도, ‘히딩크 매직’이란 표현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는 한국 축구만 살린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운을 일으켰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2002년 월드컵은 IMF를 간신히 벗어난 한국에 고용 창출 효과만 43만 명, 직접적인 부가가치 창출 효과 6.3조 원이나 되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한국이 일본과 월드컵 공동 개최 결정을 받은 것은 1996년이었습니다. 그때는 기쁨의 환호성을 터뜨렸지만, 곧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듬해인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터진 것입니다.
한국이 월드컵을 치를 수 있을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한국 축구는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에 5-0으로 패해, 부끄러운 성적을 기록합니다.
다급해진 축구협회는 히딩크 감독에게 한국이 월드컵 16강에 가게 해 달라고 누가 봐도 불가능한 부탁을 합니다. 어림없는 소리라고 생각한 히딩크는 감독직을 점잖게(?) 거절하기 위해 조건을 내세웁니다.
외환 위기를 겪고 있던 한국에 두 가지의 ‘수용 불가능한’ 제안입니다. “조건 1. 해외 원정 훈련을 계속하면서 강팀들과 평가전을 할 예산이 필요하다.” 약 120억 원 지원이 필요한 조건이었습니다.
”조건 2. 대표팀 선수들을 아무 때나 데려와서 훈련할 수 있게 해 달라.” 이것도 역시 도저히 무리였습니다. 각 소속팀이 있는 선수들입니다. 그런데 불과 열흘 만에 축구협회에서 O.K.를 합니다.
이때 히딩크 감독의 반응은 “어라?”였습니다. ‘아니 이걸 열흘 만에 결정할 수 있는 거야? 이 사람들은 뭐지?’ 이렇게 자신에게 순종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감독직을 수락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도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거치게 됩니다. 한국의 ’축구 문화와 체질’을 바꾸는 혹독한 과정을 치룹니다. 일각에서는 감독 경질 요구도 빗발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한 철저한 맡김과 순종이 ’히딩크 매직‘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축구협회와 선수들이 히딩크 감독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히딩크가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맡김과 순종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해서 월드컵에서 4강이라는 신화를 이루어낸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에게 전혀 뜻밖의 ‘고레스 칙령’이 발효됩니다.민족 대이동의 귀환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이스라엘은 철저한 맡김과 순종으로 ‘고레스 매직’을 가능케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부터 세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하게 되었는데, 제1차 귀환은 에스라 1장과 2장에 기록된 ‘스룹바벨이 이끌었던 귀환’ 입니다.
제2차 귀환은 7장에 기록된 에스라가 이끌었던 귀환입니다. 마지막 제3차 귀환은 느헤미야가 이끌게 됩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는 물꼬를 터줍니다.
과거 성전에 있던 모든 기구들을 돌려주었으며,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자원하는 헌물로 그들을 돕고 지원하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파격적인 제안입니다.
1차 귀환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발대와도 같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70년 동안 나름대로 꾸려온 삶의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개척의 길을 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벨론 땅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대략 1,400km(875mile)입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걸어도 한 달 보름 이상의 머나먼 여정이었습니다. 두번째 출애굽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을 재건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한 평생, 어쩌면 그 다음 세대, 그 다음 다음 세대까지 이어받아 재건을 해야만 하는, 길고 긴 여정이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도시와 성전의 재건이라는 부르심 앞에 아멘으로 응답하였고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는 부르심에 철저한 맡김과 순종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바벨론 포로 귀환자들에게는 성전 재건의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 일에는 지도자와 제사장과 레위인 뿐만 아니라 노비처럼 비천한 자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신분과 상관없는, 믿음을 가진 거룩한 자들의 모임임을 보여줍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되 실제로 나아오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하나님 아버지,
부르심을 받고 주저하지 않게 하소서 택함을 입은 자의 축복을 알게 하소서
철저한 맡김과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