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선 앞에 선 인간
시 130: 3-4
21세기 인간은 ‘감시의 사회’ 속에 산다. 감시 카메라가 거리를 주시하고, SNS와 데이터 알고리즘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추적한다. 20세기 철학자 M.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Panopticon) 사회‘가 이제 21세기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눈의 감시 아래, 인간은 스스로를 검열하며 살아간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시선 없이는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시편 130편의 시인은 그것보다 더 강렬한 시선을 느낀다. 그것은 인간의 감시 카메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응시’이다. 그분의 시선은 어떤 CCTV보다 정확하고, 어떤 알고리즘보다 깊다. 그분 시선 앞에 서는 순간, 인간은 자기 죄악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어 절규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시 130:3-4)
1. 엄정하게 지켜보시는 하나님
‘지켜본다”(shamar)’는 ‘살피다’, ‘간직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이다.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계속 주목하고 기억하며 살피는 행위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주목하심이 인간의 죄를 응시한다면, 아무도 그 앞에 바로 설 수 없다는 탄식이다: “주여, 누가 서리이까?”
시편 기자는 자신의 뿌리 깊은 무력함을 고백한다. 인간의 죄는 단지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결함이다. “누가 서리이까?”라는 물음은 하나님 앞에서 몸 전체로 깨닫는 실존적 침묵이다. 인간은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다.
2. 정죄가 아니라 치유
그런데 놀랍게도 시인은 절망의 끝에서 ‘그러나’라는 단어로 전환한다. 하나님의 시선은 단지 감시가 아니다. 그분은 죄를 지켜보시되, 용서하기 위해 지켜보신다. ‘사유하심’은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단어이다. 인간은 용서를 선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용서를 베풀 수는 없다. 용서는 하나님께만 속한 고유한 능력이다.
그리고 그 용서가 놀라운 결과를 낳는다.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이것은 역설이다. 용서받은 자만이 용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할 줄 안다. 왜냐하면 용서의 값이 얼마나 비싼지 알기 때문이다. ‘지켜보심’이 ‘사유하심’으로 바뀌는 순간에, 두려움에서 진정한 경외로 변한다.
3. 우리의 시선을 넘어…
오늘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가? 우리는 타인의 죄를 들춰내고, 상처를 확대한다. 사람을 정죄하며, 영원히 ‘기억’ 속에 남기며 복수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다르다. 그분은 죄를 끝까지 지켜보시되, 그것을 치유의 시작점으로 삼으신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바라보실 때가 그랬다(요 8:1-11). 군중들은 돌을 들었지만, 예수님은 따뜻한 시선을 주셨다. 그분은 죄를 부정하지 않으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것이 용서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것이 치유다. 하나님의 시선은 폭로가 아니라 회복이다. 그 죄를 새 출발의 기회로 삼으신다.
4. 하나님의 시선 아래 서신 분
“누가 서리이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은 인간의 죄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시선 아래서 유일하게 우뚝 서실 수 있는 분이었다. 그분은 우리 대신 하나님의 법정에 서셨다. 그분의 서 있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설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시선과 인간의 죄가 만난 자리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죄를 지켜보셨다. 동시에 용서를 선포하셨다.
시편 130편은 두 개의 시선을 보여준다. 하나는 죄를 꿰뚫어보는 시선, 다른 하나는 은혜로 품는 시선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선 죄인 인간이 있다. ‘하나님의 시선’은 심판의 눈이지만 동시에 치유의 빛이다. 그 빛이 우리를 투명하게 만들고, 그 투명함이 우리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든다. 그래서 진짜 경외는 심판의 공포가 아니라 은혜의 전율이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가?
“그분의 시선이 나를 꿰뚫을 때 나는 무너지고, 하지만 그 시선이 머물 때 나는 다시 선다.” (When His gaze pierces me, I fall; when His gaze abides, I rise)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 죄악을 지켜보시면,
누가 감히 주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시선은 정죄로 멈추지 않고,
용서하시는 은혜로 우리를 다시 세우십니다.
주님의 선하신 눈길 아래에서
진정한 경외로 피어나게 하시고,
무너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By KiChul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