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삼일(3.1)절 104주년이 되는 해이다.한국인의 봄은 “삼일절과 함께 온다”는 말이 있다. 3.1운동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후 일본에게 외교권,군사권을 박탈당하고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 의하여 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후 일어난 민족독립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1900년대 당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우리 민족의 앞날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암흑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시대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1903년 8월 24일 원산에서 사경회를 인도하던하디선교사(Robert A. Hardie,1865-1949)에게 회개와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시고 이 불길이1907년 길선주목사(1865-1935)의 평양 대부흥운동, 1910년 백만구령운동으로 이어지게 하셨다. 비록 나라의 주권은 상실했지만 하나님은 민족의 정신과 마음만은 빼앗기지 않도록 인도하셨다.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의 발원지인 장대현교회에 모인 초기 기독교인들
결국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해 서울의 파고다공원과 태화관, 그리고 전국 9개 지역에서 독립선언서를 선포하면서 3.1운동은 지역과 세대, 종교와 계층을 초월해서 남여노소, 빈부귀천을가리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 만주, 연해주 등 해외에까지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33인중 절반에 가까운 16명이 기독교인들이었고국내에서 3․1운동을 시작한 서울, 평양, 정주가 기독교 중심지였다.
기독교인의 참여가 광범위하였기 때문에 일제의 박해도 다른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컸다. 그 결과 가장 많이 희생을 당한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 특히 제암리교회에서는 한꺼번에 29명이나 희생되었다. 삼일운동 당시 기독교인들은 한국의 인구 1,600만명의 1.3%~1.5%인 20만 명정도에 불과했지만 2천만 민족의 독립운동을 가능케 한 동력이 되었다. 당시 조선 총독부가 남긴문건 속에는 ‘이 민족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의 교회다‘라고 기록했을 정도로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그 시대를 이끌어 간 중심이었다. 그래서 삼일절은 기독교의역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기억해야할 것은 1919년 3.1절운동은 1903년 원산에서 미남감리회 소속 하디선교사에서시작되어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목사로 이어지는 한국교회의 영적 부흥운동에서 기인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회개와 회심, 통성기도와 새벽기도, 용서와 화해, 보상과 배상, ‘양심전’으로 상징되는 신앙과 윤리적 갱신운동이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미국에서 귀국한 도산 안창호는 상동교회의 전덕기목사등함께 기독교중심의 신민회를 조직하고 교육과 문화, 산업분야에서다양한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나의 소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네 소원(所願)이 무엇이냐 “하고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大韓獨立)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自主獨立)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김구선생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조선 땅에 살았던 모든 백성의 소원이 대한독립이었을 것이다.
민족대표 33인 이름의 삼일절 독립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것이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독립은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임을 깨닫고 신앙의 양심에 따라 실천에 옮긴 자들이 당대의 신앙인들이었다. 결국 삼일(3.1)절 운동을 통해 새로운 나라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아니라 국민이 중심이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정신이 계승되어 독립운동이 지속되었고 1948년 새로운 국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민족의 영욕의 역사가운데에서 함께해왔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올해 2023년을 한국감리교회를 비롯한 주요교단들은 하디 영적각성 120주년 기념의 해로 정하고 ‘다시 근본으로(Re-Ad Fontes, back to the origin)’라는주제로 영적각성운동을 펼치고있다. 바라기는 이 운동이 침체된 교회와 민족을 변화시키는 희망의씨앗, 신앙의 유산이 되어 새 희망의 불길이 타오르길 간절히 소원한다.
http://dc.koreatimes.com/article/20230227/1454943. 워싱턴 미주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