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헤미야 프로젝트(14)
느헤미야의 기도문 – 기도의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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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릴레이 기도
(Nehemiah Relay Prayer) 진행원리
1. 한 사람, 느헤미야의 순종입니다.
느헤미야 한 사람이 순종하여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쌓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에 사로잡힌 ‘오늘의 느헤미야’ 한 사람의 순종과 결단으로 시작됩니다. 먼저 선교회와 속회에서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 전체를 주관하는 사람이 ‘느헤미야’입니다.
2. ‘연합’이 힘입니다.
함께 연합(마18:19,20)하여 하루 3번 아래의 느헤미야 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선교회와 속회가 연합하여 1년 52주의 릴레이 기도를 이어가게 됩니다. 섬기는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사56:6,7), 기도와 선교의 센터, 지역사회 중심에 서는 영성으로 세워지기를 목표로 합니다.
🙏 느헤미야 기도문 https://mdkumc.org/ministry/?cat=10
📖 느 1:1-11, 13:31
느헤미야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위로’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대로 느헤미야는 한 시대 하나님의 위로를 보여주었던 귀한 인물입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행동은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우리의 비전을 분명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비전을 잉태하고 기도를 먹고 자랍니다.
우리 삶에 비전이 뚜렷하지 않는 것은 기도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할수록 하나님의 비전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는 깊은 말씀묵상중 기도 속에서 잉태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합니다. 기도 없는 행동은 방향을 잃어버린 행동이 됩니다. 많은 노력을 하지만 열매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만이 우리를 기다리게 하고, 하나님의 때와 방법으로 우리를 살아가게 합니다.
기도는 믿음이 역사하도록 만듭니다. 기도는 믿음의 길을 걷게 합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합니다. 사람의 판단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도전하게 합니다. 그것이 기도 속에 잉태된 비전이요, 믿음의 길을 걷게 하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기도의 능력과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기도를 가장 소중한 행동으로 여겼습니다. 생각 속에 머무는 차원이 아니라 삶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이 기도였습니다. 느헤미야서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강조점은 기도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짓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로 쓰임 받은 이면에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느헤미야서 1장에 기도가 나오고, 마지막 13장에도 기도가 나옵니다. 느헤미야 13장 31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느 13:31)
느헤미야서의 시작과 끝이 기도요, 느헤미야의 일의 시작과 마지막이 기도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형통할 때나 장벽을 만나 어려울 때 기도로 돌파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했으며 기도가 습관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있을때 그곳에서 자라난 유대인 후예입니다. 주전 464년부터 423년까지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의 술 관원이었습니다. 술을 따라주는 직업을 천박한 직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왕은 언제든지 정적들에 의하여 암살 또는 독살당할 수 있는 위험이있었기 때문에 이 직책에 있는 사람은 왕의 신임을 받고 왕과 친밀한 위치에 있는 사람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포로귀환이 시작되었는데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 남아 있었습니다. 수산 궁에 술 관원으로 있었습니다.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고국에 대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고, 다니엘을 바벨론의 총리로 세우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느헤미야를 페르시아의 수산 궁에 술 관원으로 세우신 뜻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왕의 신임을 받아야 하고 성실해야 하고.실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세상 속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세상 속에서 자신의 부귀영화와 명예를 위해 높은 자리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역사에 쓰임 받기 위하여 성실과 실력과 믿음을 줄 수 있는 일꾼으로 그 위치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별 생각 없이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달랐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행렬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의 마음에 조상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예루살렘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가슴침의 기도
5만여 명의 유대인들이 돌아갔지만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기초만 놓은 채 16년 동안 방치되었습니다. 성벽은 재건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방인들에게 시달렸습니다. 예루살렘은 수치와 조롱을 당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모욕을 받는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과 수치스러운 모습에 대한 형편을 들은 이후 느헤미야의 반응과 기도가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1:4)
느헤미야의 첫 기도의 말에 깨어진 마음,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랑하고 묵상하고 기도해오던 마음의 슬픔이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터져 나온 것입니다. 내재되어 있던 깊은 슬픔의 샘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통곡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존재합니다. 동정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마음으로 일어나는 슬픔, 깨어진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의 샘물이 느헤미야의 영혼을 적시는 것입니다.
2. 언약과 돌이킴의 기도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 1:5)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 1:6-7)
진정한 회개에는 2가지 고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죄를 미워하시고 진노하시며 반드시 징벌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그 언약가운데 들어오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죄를 고백할 때 놀라운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느헤미야는 조상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고 회개합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과 동족이 처한 위기는 느헤미야가 아니라 조상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조상들의 죄라고 하지 않고 ‘우리 죄’ ‘자신의 죄’ 라고 했습니다.
3. 한계(지역, 시대, 민족)를 넘는 기도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 1:8-10)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관료로 자라기까지 그는 예루살렘의 성전과 율법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레미야가 예언한 서책의 필사본이 돌아다녔고 그것을 다니엘이 읽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회복을 위해 기도한 것이 다니엘 9장입니다. 느헤미야에게 모세의 율법 내용들이 필사된 서책들이 전해졌고, 그는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그 말씀을 묵상했을 때 시대와 민족과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때 시대와 문화와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사도들의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정확하게 현실의 문제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반역과 죄로 심판에 처해있지만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리라’는 회복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Ref: Onnuri news)
4. 섬김의 기도
“주여, 이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주의 종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오늘 주의 종이 이 사람 앞에서 은총을 입고 잘되게 하소서.” 그때 나는 왕에게 술을 따라 올리는 사람이었습니다”(느 1: 11)
느헤미야가 기도하면서 점점 더 자원하고, 적극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기도 가운데‘종’이라는 단어를 8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자요, 말씀대로 행하려는자입니다.
모세를 종이라고 했고, 유다 백성들을 종이라고 했고, 자신을 종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은 종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전능하신 손으로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느헤미야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간구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합니다. 느헤미야는 “오늘 주의 종이 이 사람 앞에서 은총을 입고 잘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닥사스다 왕입니다. 이 구절만 보면 자신의 신분이 높아지고 세상적으로 더 형통하게 해달라는 기도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닙니다. 느헤미야가 슬픔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백성의 회복을 위한 기도를 한 다음에 이 기도를 한 것은 자신을 하나님나라 부흥과 회복의 역사에 사용해 달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기도를 표본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가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의 모범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내일도 주님 나라에 다다르는 그날까지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