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과 동행
(2021년 8월 15일 주일)
📖 고린도후서 1:12-22
교회는 무엇으로 거룩하고 진실할 수 있는가?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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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교회가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자비로 인해 어떤 문제와 고난 속에서도 넘치는 위로를 받고 서로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고후 1:1-11).
이제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가 바울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를 풀기 위해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과 상황을 설명합니다. 먼저 바울 사도는 특별히 고린도교회를 향해 거룩하고 진실하게 행했다고 고백합니다. 당시 학문과 수사학이 발달했던 고린도 지역에서는 수많은 교사들이 자신의 지식과 철학을 화려한 수사기법을 동원해서 뽐내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경제적인 후원도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육체의 지혜 곧 자기 자신의 지혜와 능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자랑할 것이 없지만, 양심에 비추어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고 거룩하고 진실하게 복음을 전한 것만은 자랑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고후 1:12).
바울 사도는 자신이 쓴 편지에는 고린도교회가 읽고 알 수 있는 내용 외에 다른 뜻이나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감추어진 것을 밝히 드러내시고 심판과 구원을 행하시는 날에, 고린도교회가 바울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알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완전히 알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그때에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고 함께 고난을 받은 고린도교회의 믿음이 진실한 것으로 드러나서 그들이 바울의 자랑이 되고, 바울의 사역이 거룩하고 진실한 사역이었음이 드러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자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고후 1:13-14).
이제 바울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교회에게 미리 약속했던 여행 일정이 변경된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처음에 바울 사도는 모금한 헌금을 전달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베소에서 마케도니아를 거쳐 고린도로 가서 겨울을 보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고린도로 향하기 전에 먼저 디모데를 보내 고린도전서를 전달하고 고린도교회를 살피도록 했습니다.
(고전 16:5-7, 10-11)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 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그러나 바울 사도는 디모데로부터 고린도교회가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로 인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계획을 수정해서 먼저 고린도교회를 방문해서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바울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은 뒤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유대로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고린도를 두 번째로 방문하여 그들의 믿음을 더 견고하게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로는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겠다.”고 “예.”라고 하면서 동시에 속으로는 “가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아니오.”의 마음을 동시에 품고 경솔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육체를 따라’ 곧 자신의 필요나 사정에 따라서 계획을 쉽게 변경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먼저 마케도니아로 가기 전에 먼저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고, 후에 재방문하기로 계획을 바꾼 것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이미 말한 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결정을 내린 것이며, 고린도교회에 더 큰 은혜를 끼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고후 1:15-17).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겉으로는 “예” 하고 속으로는 “아니라”고 하는 두 마음을 품은 것이 아니라는 근거로 그가 믿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계획하고 순종하는 바울 사도에게는 오직 “예”만 있고 결코 동시에 “아니라”는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고린도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예”하고 순종하시다가, “아니오.”하고 불순종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구원의 약속을 “예”가 되도록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에 “아멘”으로 믿고 신실하게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에 안에서 바울 사도와 고린도교회를 한 몸으로 굳건하게 세우셨고, 바울의 마음에 성령으로 기름을 부으셔서 그를 사도이자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치시고 확증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결코 고린도교회를 향해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고후 1:18-22).
도자기를 구워 만들 때 금이 가게 되면 폐기 대상입니다. 고대에 도자기를 만들어 팔던 사람이 금이 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밀랍으로 보수해서 팔곤 했습니다. 투명한 밀랍으로 보수한 도자기는 맨눈으로 식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자기가 온전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때 그것을 들어서 태양 빛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러면 밀랍으로 보수한 곳은 까맣게 나타났습니다. 그런 부도덕한 상인이 있었기 때문에 선량한 상인은 자기가 만든 도자기에 ‘밀랍 하지 않은’이란 뜻의 라틴어 ‘sine cera(시네 세라)’를 붙여서 팔았습니다. 여기에서 영어 단어 ‘sincere(진실한)’이 나왔습니다. 영어 편지 끝에 ‘Yours sincerely’라고 쓰는데, 그것은 ‘나의 삶과 마음은 밀랍으로 때우지 않은, 순결하게 당신의 것입니다’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살 소망을 잃은 것 같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예수 십자가 복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로 인해 넘치는 위로를 받는다고 고백했던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기에 자신이 결코 두 마음을 품을 수 없고, 신실하게 고린도교회를 향해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거룩한 교회라고 말하지만, 늘 우리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거룩함과 정직함보다 우리의 유익과 편안함을 선택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세상의 풍조와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준을 따라 살아가다보면, 교회 안에서조차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하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보다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가 불순종과 부정직함으로부터 벗어나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분위기나 우리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기준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신실하게 성취하셔서 “예”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예”로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내주하시는 존재입니다. 우리를 부정직하고 나태한 불순종의 자리로 끌어내리려는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결코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일성경)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12)
🎼 겸손히 주를 섬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