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행 20:37-38)
바울이 에베소 교회 교인들과 눈물의 마지막 이별을 하고 배로 팔레스타인 땅 두로에 도착해서 일주일동안 머물게 되었을 때입니다. 이번에는 성령께서 두로의 제자들을 통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멈출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행 21:4)
하지만 바울의 마음은 흔들림 없었습니다. 두로의 제자들도 밀레도 해변의 에베소교회 장로들처럼 바울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였습니다.
“그 때 모든 신도들은 부인들과 아이들과 함께 동네밖까지 우리를 따라 나왔다. 우리는 모두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공동번역/행 21:5)
이어 가이사랴에 도착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선지자 아가보가 바울을 일행을 찾아옵니다. 그는 성령이 보여주신 계시를 좇아 바울의 허리띠를 달라고 하더니 그 허리띠로 자신을 묶으며 그 계시의 환상을 퍼포먼스로 보입니다.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행 21:11)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염려였습니다. “위험하다”는 사인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던 사람들은 모두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 것을 사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뜻은 확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
바울은 자신은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위해서 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