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교회>
한국에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다. 물론 이것은 과장된 구분이지만, 과장 속에 진실이 있다.
한쪽에는 변하지 않으려는 교회가 있다. 이 교회에서 세상은 언제나 위험하고, 문화는 의심의 대상이며,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는 말할 것도 없이 어둠의 영역이다. 교회의 울타리 안에 진리가 있고, 울타리 밖에는 미혹이 있을 뿐이다. 이런 교회의 강단에서는 “세상과 구별되라”는 말이 반복되고, 교인들은 그 말을 들으며 점점 더 단단한 성벽 안으로 들어간다.
다른 한쪽에는 변하기만 하려는 교회가 있다. 이 교회에서 전통은 족쇄이고, 교리는 화석이며, 시대와 사회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다. 복음의 고유한 메시지를 묻기 전에 시대의 요구부터 물으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포섭할까”가 “무엇을 전할 것인가”보다 앞선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교회가 서로를 가장 경멸하면서도 닮은꼴이라는 점이다. 변하지 않으려는 교회는 세상의 질문을 외면하면서 결국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못하는 독백에 빠지고, 변하기만 하려는 교회는 세상의 질문에 파묻히면서 정작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엇을 말해야만 하는지를 잊어버린다.
이 이중의 위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위르겐 몰트만은 이 문제를 간명하게 포착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신학과 교회가 현재의 문제들 속에서 적실하게 되려고 할수록 자신의 기독교적 정체성의 위기에 더 깊이 빠져들며, 반대로 전통적 교리와 의례와 도덕 관념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려고 할수록 현실과 더 괴리되고 신뢰를 잃게 된다. (Jürgen Moltmann, Der gekreuzigte Gott, 6. Aufl., München: Kaiser, 1972, 12.)
정체성의 위기와 현실성의 위기. 이것은 단지 신학자들의 학문적 고민이 아니다. 명절에 절에 가는 어머니와 교회에 가는 딸 사이에서 침묵이 흐를 때, 직장 동료의 종교를 존중해야 할지 복음을 전해야 할지 갈등할 때, 우리는 이미 이 두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면 세상과의 거리를 넓혀야 하는 것 같고, 세상과 소통하려면 정체성의 일부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은 이 딜레마는 한국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가 세상 속에 존재하는 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구조적 긴장이다.
필연적으로 신학의 과제는 이런 실질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목회자와 교인 모두의 공동 숙제이다.
By 최주훈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