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2장1-17절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 평가받은 욥에게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그 고난은 욥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의 고난의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온 친구들조차도 위로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정죄하고 비난했습니다. 몰아닥친 고난이라는 광풍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욥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38장 1절에서 폭풍우 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나셨는데, 그 폭풍우는 비를 동반하지 않은 회오리바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이라는 광풍에 의해 요동치고 있던 욥에게 그 모든 광풍을 잠재우는 회오리 바람으로 욥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창조세계의 신비와 하나님의 창조 주권에 대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욥은 너무나 놀라워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38-41장). 이제 자신의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라고(40:3-5) 대답하였던 욥은 이제 오늘 본문 1-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주를 뵈옵고 회개하는 욥
귀로 듣기만 하였던 하나님을 대면한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발언을 거둬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때로 고난, 어려움, 질병을 겪게 될 때 우리는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묻습니다. 왜 나여야 합니까?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우리가 묻고 싶고 때로 따지고 싶은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아갑니다. ‘왜 지금이어야 합니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라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욥이라고 왜 하나님께 묻고 싶은게 없겠습니까? 왜 따지고 싶은 게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자 그의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질문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신의 질문, 자신의 발언을 모두 거둬들이고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5-6절).
질문을 가지고, 때로 원망과 불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어렴풋이 듣던 그 하나님을 한 발짝 더 가까이서 대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하나님 앞에서 더 뚜렷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한 발자국 더 주께로 나아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존을 인식하는 순간 “왜?”라는 질문이 사라져 버립니다. 오히려 주님 앞에 선 자신의 실존을 인식하게 되며, 가슴을 치며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주께 고백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설 수 없는 죄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합니다. 멀리서만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실존이 어떤 모습인지 모른 채 하나님께 따지려 들지만, 하나님께 한 발자국만 가까이 나가도 인간은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지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숙연해지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욥을 변호해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욥에게뿐만 아니라 욥의 세 친구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7-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7-8절, 이 두 절 안에 하나님은 욥을 네 번이나 “내 종 욥”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욥을 변호해주셨고, 그가 옳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욥을 정죄하던 그의 친구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사를 통해서 그들을 향한 욥의 기도를 기뻐 받으신 후에야 그들의 제사를 받으셔서 용서해주심으로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들과 욥과의 관계를 모두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욥에게 대한 잘못이면서 동시에 욥을 의롭게 여기시는 하나님에 대한 죄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회복된 욥의 삶
이어지는 10-17절은 욥기의 마지막 부분으로 그 이후의 욥의 삶의 회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15절을 보면,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 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를 다 회복시켜주셨을 뿐 아니라, 전에 가지고 있던 소유의 2배로 갚아주셨습니다. 욥의 말년에 불어난 양, 낙타, 소, 암나귀의 숫자가 처음 1장에 언급된 짐승의 숫자에서 정확하게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12절).
모든 소유를 두 배로 회복시켜주셨지만, 이 모든 소유속에 그의 자녀들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자녀가 욥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난 이후에 하나님은 고난 받기 이전과 똑같은 10명의 자녀를 욥에게 다시 주셨습니다. 한 때 욥에게 저주를 퍼붓기도했지만 고난을 욥과 함께 견뎌냈던 아내를 통해 하나님은 다시 이전과 같은 7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허락하시고 가정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주신 세 명의 딸들은 땅 위의 어느 여인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추었습니다. 딸들의 아름다움은 부모의 자랑이고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Happily ever after
16-17절입니다.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아이들이 즐겨보는 동심의 세계를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화면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다음과 같은 자막의 글귀로 마무리 됩니다. Happily ever after 그 이후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마치 애니메이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자막의 내용처럼, 욥기는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하게 마무리됩니다. 욥은 분복을 누리며 자손의 자손을 보며 이 땅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였습니다.
우리가 욥기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1. 내가 가진 잣대로 함부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욥에 대한 욥의 친구들의 평가는 구구절절 옳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좋아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잣대로, 자신들의 기준으로 욥을 재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을 옳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 욥에 대한 정죄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판단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의 판단은 너무도 자주 우리의 기준에 근거하고 우리의 편견에 근거하고 우리의 잘못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근거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 삶에는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욥이 겪었던 고난은 욥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통제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겪게되는 삶의 많은 부분이 때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곧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요 우리의 삶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우리 스스로 구원할 수 없고, 우리 스스로 죽음의 한계를 넘을 수 없고, 우리 스스로 우리 인생을 주관할 수 없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 믿음의 출발점이요 하나님을 소망하게 되는 첫걸음입니다.
3. 우리 인생의 문제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비로소 해결됩니다.
욥의 고난의 문제는 회오리바람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해결되었습니다. 욥의 문제는 하나님이 개입해주시지 않으면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개입하시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이 개입해주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욥에게 찾아가셨던 것처럼, 우리를 향해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 바로 우리 가운데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입니다.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자 우리를 향해 찾아오신 사건,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 속으로 전격적으로 진격해 들어오신 하나님의 개입, 이것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입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바로 성부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땅도 그가 지으셨기에 그의 소유이고, 인간도 그가 만드셨기에 그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자기가 창조하시고 소유하신 땅에 오셨지만 아무도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죄로 뒤범벅이 되어져 있는 세상속으로 진격해 찾아오셨고, 그 예수님을 도마의 고백처럼 주와 하나님으로 모셔 들이는 사람들을 주의 자녀로 받아주시고, 그들을 주의 백성으로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0-12)
우리를 대면하시려고 찾아오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지금 휘몰아치는 광풍속에서 이리 저리 흔들려 갈길을 알지 못하는 상황속에 처해 있다면, 인생을 흔드는 그 모든 광풍을 잠재우시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인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회오리바람가운데 진격해오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우리 인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회오리바람가운데 찾아오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인생의 광풍이 잠잠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야, 휘몰아치는 광풍 속에서야 비로소 주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평안할 때, 잔잔할 때, 그곳에서 자발적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입니다. 매일마다 자발적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는 광풍이 잘 몰아치지도 않을뿐더러, 광풍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회오리바람 가운데 대면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어떠한 광풍에도 동요 없는 견고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회오리바람 한 가운데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거대한 회오리바람인 태풍의 그 한가운데, 태풍의 핵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가장 잔잔한 곳인 것처럼, 회오리 바람 한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 그곳이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그곳이 우리를 품어주시는 예수님의 품입니다. 그곳이 가장 안전합니다. 그곳이 가장 안전하고 평안한 곳입니다. 다른 광풍은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를 흔들 수도 없습니다. 회오리바람이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을 나의 주로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십시다. 그렇게 될 때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을 이끌어가시는 동력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 방향을 이끌어가시는 유일한 동인(動因)이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날마다 대면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삶으로 역설의 진리를 구현해내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욥의 인생처럼, 우리 인생을 마지막 자막 한줄로 마무리하게 될 것입니다. Happily ever after in Jesus Christ
기도
하나님, 고난의 광풍이 우리를 흔들어도 회오리바람으로 우리에게 진격해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삶의 자리까지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나의 주로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그분을 날마다 대면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여전히 불어대는 광풍 앞에서도 견실히 주님 안에 거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참된 제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