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9장 1절은 짧은 명령문이지만, 출애굽 신학의 중심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로에게로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
이 구절은 단지 재앙의 서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왜 애굽을 치시는지, 해방의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는 선언입니다. 출애굽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해방의 목표는 자유 자체가 아니라 예배(섬김)입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는 명령은 출애굽기 전체에서 반복됩니다(출 5:1; 7:16; 8:1, 20; 9:1, 13; 10:3). 이 반복은 지루한 중복이 아닙니다. 바로의 완고함이 반복될수록, 하나님의 말씀도 반복됩니다. 인간의 거절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더 오래 갑니다. 성경의 반복은 하나님의 인내이며, 은혜의 멈추지 않는 끈질김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거절의 역사 속에서도 말씀의 문은 닫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밝히십니다. ‘히브리 사람’은 애굽의 관점에서 붙여진 비천한 이름(암하레츠)입니다. 하나님은 제국이 업신여기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십니다. 동시에 본문은 “여호와”라는 언약의 이름을 붙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민족의 지역신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며 역사를 움직이는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호칭은 출애굽의 복음을 압축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내 백성”이라는 말도 분명해진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제국의 자원으로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언약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이라는 권력 체제의 부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내 백성’입니다.” 출애굽은 억압의 탈출만이 아니라, 존재의 회복입니다.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에서 “섬기다”(abad)는 예배하다의 뜻을 지닙니다. 출애굽은 섬김의 전환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를 섬기던 백성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성경적 자유는 아무도 섬기지 않는 자율이 아니라, 참 주인을 섬기는 질서의 회복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의 목적은 ‘애굽에서 탈출’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을 섬김’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특히 출애굽기 9장에서 이 명령은 두 번 반복됩니다(9:1, 9:13). 바로는 잠시 무릎을 꿇지만, 하나님 경외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집니다. 이 땅에 해방자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단지 죄와 죽음의 고통에서 건져내시는 분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섬기는) 새 삶으로 부르시는 분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예배하는 존재로 다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9장 1절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질문합니다.
“너는 무엇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너는 지금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
언약의 하나님,
“내 백성을 보내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듣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얽매는 죄악과 거짓의 우상의 손에서 건져 주소서.
자유와 해방을 경험한 우리들을 거룩한 예배의 삶으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의 입술만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새로운 백성으로 살기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가 주님을 섬기는 거룩한 자리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