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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기억”(Gefährliche Erinnerung) by한상훈박사

사순절(Lent)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며, 그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는 교회의 절기이다. 이 시기에 독일 정치신학자 Johann Baptist Metz가 제시한 “위험한 기억(dangerous memory)”이라는 개념은 특별한 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처음 이 표현을 접할 때, 기억이 왜 ‘위험’한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그러나 메츠에게 있어 기억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현재를 비판하고 변혁하는 실천적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츠는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사건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을 망각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현재화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고 보았다. 특히 고난에 대한 기억은 개인적 차원의 경건을 넘어 사회적·정치적 현실을 비판하는 힘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기억을 “자유를 향한 위험한 기억”이라 규정하였다. 왜냐하면 이 기억은 기존 질서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흔들고, 고통받는 이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사회적 구조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메츠에게 기억은 실천적(practical)이며, 비판적(critical)이고, 변혁적(transformative)이다. 과거의 구원 사건은 단지 지나간 사건으로 남지 않고, 현재의 역사적 상황 속으로 소환된다. 그리하여 과거의 고난 사건은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부조리와 억압의 현실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신학적 동력이 된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과거의 종교적 사실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겪고 있는 고통의 현장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기억으로 작동한다. 이는 곧 예수가 지금도 다양한 이유와 모습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신다는 신앙 고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의 고난은 단순한 회상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화되는 사건이다. 고난의 기억은 신앙 공동체로 하여금 타자의 아픔에 참여하도록 요청한다. 예수의 삶이 철저히 타자를 위한 삶이었듯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 또한 자기 보존을 넘어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삶으로 부름받는다.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는 바로 이 “위험한 기억”을 살아내는 실천적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마태복음 25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는 말씀은, 타자의 고통에 참여하는 구체적 행위가 곧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마태는 예수가 자신을 고통받는 자들과 동일시함으로써, 기억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위험한 기억”(Gefährliche Erinnerung)은 교회를 종교적 공간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신앙 공동체를 역사 속으로, 고통의 현장 속으로 파송한다. 십자가의 기억은 세상을 향한 비판이자 동시에 희망의 선언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변혁적 동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순절은 단순한 절제와 경건의 기간을 넘어, 예수의 기억을 현재화하며 그분의 삶을 실천적으로 재현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한상훈박사(시카고 신학교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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