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고 긴 방황의 늪을 지나
창세기 45장 7-8절
세상은 원인을 붙들고 사람을 심판한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그 책임의 무게를 저울질한다. 그러나 성경은 원인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결말을 하나님께 둔다. 창세기 45장 7-8절에서 요셉은 형들의 죄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그 사건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해석한다. 원인은 인간의 죄였다. 그러나 결말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인간의 악이 마지막 문장이 되지 못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창 45:7).
1. 죄는 사건을 만들고, 하나님은 결말을 쓰신다
요셉의 입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팔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죄는 실제였고, 그래서 그의 삶은 무너졌다. 한 사람의 청춘을 망가뜨리고, 가족을 해체시키고, 그를 낯선 땅에서 고아로 만든 죄였다. 그럼에도 요셉은 말한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다.”
이 말은 죄를 미화하는 면죄부가 아니다. 오히려 죄에게 내 삶의 최종 권한을 주지 않겠다는 삶의 해석학이다. 형들의 죄는 분명히 사건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죄악이 결말까지 소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요셉의 고백은 이렇게 들린다. “악이 결코 내 삶을 규정하지 못한다!”
2. 남겨두심의 은혜: 집요한 하나님의 사랑
요셉은 하나님의 목적을 단순히 개인의 성공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그는 더 큰 목적을 본다. 하나님은 큰 구원으로 생명을 보존하시고, 후손을 세상에 남겨두신다. 이것은 ‘후손을 남겨 두시는 은혜’, 곧 ‘남은 자’(the remnant)를 끊기지 않게 하시는 약속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이 역사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신다. 섭리는 생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이다.
그래서 요셉의 삶은 파송의 삶이 된다. 그는 자원한 선교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요셉을 먼저 보내셔서 공동체를 살리신다.
3. 우리 삶의 편집권을 하나님께!
요셉은 말한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8절). 이 말은 가해자의 면죄부가 아니라, 피해자의 해방 선언이다. 복수는 가해자를 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종 피해자를 과거에 묶어 둔다. ‘그 날’을 계속 현재로 끌어온다. 요셉은 그 시간표를 찢는다. 그리고 하나님께 마지막 판결을 맡긴다.
여기서 용서는 내 삶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용기이다. “내 인생의 편집권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이 고백이 가능해질 때 피해자는 더 이상 과거의 포로가 아니다. 요셉은 권력을 쥐었지만, 그 권력을 보복에 쓰지 않는다. 권력이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보존의 도구가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는 사람을 눌러 이기는 힘이 아니라, 생명을 들어 올리는 힘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본다. 요셉은 형제들의 죄로 버림받았지만, 그 버림의 자리가 형제들을 살리는 길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죄로 십자가에 내어주심을 당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 많은 사람을 살리시는 큰 구원을 이루셨다. 십자가는 악의 승리가 아니라, 섭리의 반전이다. 인간의 죄가 끝을 쓰려 했으나, 하나님이 결말을 다시 쓰셨다.
마무리하며
인간의 죄가 원인이다. 그러나 결말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죄악은 우리를 무너뜨리지만 하나님은 무너진 자리에서 생명을 보존하신다. 구원은 과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새롭게 여는 은혜이다. 그래서 믿음은 내 죄와 상처가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최종 해석권을 드리는 용기이다.
그럼에도 한가지 질문이 남는다. 요셉처럼 역사의 반전을 보지 못한 채 고난을 견디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더 먼 결말로 이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하나님이 어떤 결말을 준비하시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21:4),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21:5). 마지막을 붙드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도문
역사를 붙드시는 하나님
우리도 때로는 잔인한 형들이었고, 때로는 상처 입은 요셉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인간의 죄가 원인이었으나, 하나님의 섭리가 결말임을 믿습니다.
이제 원한과 보복의 시간표를 찢고,
우리 삶의 편집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분노를 주께 맡기며, 용서하기 힘든 그 이름을 축복하며,
상처받은 이들을 살리는 파송자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By JiChul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