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사도행전(Acts)
24:24-27
바울은 지금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설교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의 말씀입니다. 벨릭스가 계속 듣기가 거북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중단시키고 나중에 다시 부르겠다고 합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행 24-27)
바울의 설교는 정의가 죽어가는 순간에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공모(共謀)라는 무서운 진실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4:17)는 말씀을 풀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빌라도와 로마 군인들 그리고 유대의 율법주의자들 뿐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 대신 바라바를 풀어달라 외쳤던 군중들은 예수님을 ‘살릴’ 기회가 있었지만 악에 동조했습니다.
두려워 도망쳤던 제자들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침묵했던 것입니다. 공범자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예수를 죽인 흉악한 ‘죄인 중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공의’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이 벨릭스가 듣고 두려워한 ‘불편한 진실’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랑과 정의의 문제 앞에서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살리려 하지 않는 자는, 소극적으로 죽이는 일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우리 신앙은 결코 ‘방관자의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불의 앞에서, ‘나는 어느 쪽에 가담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선택해야 합니다. 무엇이 ‘선’인지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작정하는 모든 것도 ‘죄’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선인 줄 알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 죄입니다.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인 줄 알면서,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하지 못하는 것— 죄입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선을 행하는 것을 방해할까?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선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은 우울함만 남깁니다. 이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바울은 ‘절제’라고 합니다.
절제가 진정 기쁨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한 가지씩이라도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끊어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참 기쁨은 세상 기쁨을 끊어갈 때 옵니다. 세상 기쁨을 하나 끊을 때마다 천국의 기쁨이 하나 더 채워집니다.
대강절이 시작되어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우리 주변을 바라봅시다. 무엇이 선을 행하는 것인가 찾아보십시다.
그리고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의 불편한 진실을 가슴에 새깁시다.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가 마음 가운데 다가오지 않으십니까? 그것을 주저없이 하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길이고 주님 주시는 평강속에서 험악한 세상을 이기는 길입니다. 그것이 사랑과 정의의 회색 중간지대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성령의.인도하심을 받는 길입니다. 샬롬 !
하나님 아버지,
선을 알면서 행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사랑과 정의의 중간지대에 서지 않게 하시고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담대히 행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