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정한 인생
계 Revelation 3:15-16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분이 이순신 장군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조선의 임금 선조는 수군을 폐지하라는 어명을 내립니다.
해전이 불가능할 경우 육지에 올라 도원수 권율을 돕도록 하라는 명이었습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이 장계(狀啓)를 올립니다. 장계는 신하가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거나 청하는 문서였습니다.
우리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편지입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전선의 수가 절대 부족하지만 보잘 것 없는 신이 살아 있는 한 감히 적은 조선의 바다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피끓는 듯한 이순신 장군의 우국충정을 담은 편지입니다. 이런 편지를 쓸만큼 감성적인 이순신이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냉정하리만치 엄격한 분이었습니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아버지처럼 자상하다가도 탈영한 자에 대해서는 무섭게 엄격합니다. 탈영한 자의 목을 사정없이 쳤습니다. 단 한번의 예외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족이 있고 나이 든 부모가 있다고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해도 단호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엄격했을까? 어차피 전쟁에서 지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이 모두에게 닥쳐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호함은 영적전쟁에도 요구됩니다. 기독교가 약화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딘호함을 잃었기에 선교 현장에서 ‘단호함을 앞세운’ 이슬람에게 조차 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흔히 포스트 모던의 세가지 트랜드를 1) 모호성(ambiguity) 2)혼합주의(syncretism) 3)깊이가 없는 얄팍함(shallowness)이라고 정의합니다.
애매 모호하게, 적당히 받아들이고, 깊은 사고가 뒷받침이 되지 못하기에 쉽게 타협해버리는 것이 포스트 모던의 특징입니다. 확고하게 뜻을 정한 인생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러한 애매모호함이 현대 기독교 영성에 도 나타나, 쉽게 다원주의나 혼합주의로 빠져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게됩니다. 기독교가 ‘내부의 적’에 의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전세대 지도자 중 한 분인 옥한흠 목사님이 생전에 인도하던 제자 훈련 세미나에서 열변을 토하며 전했던 첫 강의가 있습니다. 바로 ‘광인론(狂人論)’입니다. 한 마디로 ‘미쳐야한다’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에 미쳐야만 훈련에 성공할 수 있다는 논지입니다. 미치기 위해 제자훈련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차갑거나 뜨거운 것은 삼키시지만, 미지근한 것은 참아내지 못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는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것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 북쪽 10 km 쯤 떨어진 곳에 히에라볼리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지금도 유명한 야외 온천이 있는데, 이 온천수는 평평한 고원 지대를 지나 라오디게아 맞은 편으로 흐릅니다.
그런데 처음 히에라볼리에서는 뜨겁고 미네랄 성분이 많던 물이 수로를 타고 흐르는 사이에 식어서 라오디게아에 도착했을 때에는 미지근한 물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 때에 이 사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바램은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 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 치리라”
(계 3:15-16)
주님의 명령은 단호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5)
전도나 선교는 전쟁입니다. 싸워서 쟁취하지 않으면 빼앗깁니다. 한 영혼을 빼앗기는 것은 전쟁에서 한 민간인이 죽는 것보다 무서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전도와 선교에 열정을 쏟기를 바라십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인생을 살기 때문에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만있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강물 위에 가만히 있으면 바다로 흘러가 영원한 미아가 됩니다.
적어도 방향을 잡으려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으로는 안됩니다. 다시 뜨거움을 회복하십시오. 뜨거운 집회에 참여하십시오. 선교에도 나서십시오. 뜻을 정하십시오. 그것이 오직 한길 예수의 길입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생의 나침판이 되시어
뜻을 정한 인생, 뜨거움을 회복한
인생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Rev. Ke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