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메릴랜드에서 새로 병원을 개원한 ‘맥칼리스터 박사’는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의사로서 손도 써보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아내를 보내야 했던 자책감과 우울증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중풍을 앓게 되었고 휠체어를 타며 먹고 입고 눕는 것조차 자기 손으로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자살할 생각만 했습니다. 세 명의 간호사가 항상 붙어있어 그는 죽지도 못하게 되었고, 자신을 비참하게 하는 그 간호사들을 싫어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해변가 높은 곳에서 바다를 보았으면 좋겠다고 간호사에게 말했습니다. 간호사들은 별생각 없이 그를 바닷가로 데려갔습니다. 맥칼리스터는 간호사들에게 자기 걱정은 말고 수영을 즐기라고 했습니다.
간호사들이 수영을 즐길 때 자신은 벼랑에서 뛰어내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간호사 하나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녀가 파도에 휩쓸려 바다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맥칼리스터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맥칼리스터를 구조원이라 여겼습니다. 맥칼리스터가 간호사를 늦지 않게 구해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중풍으로 인한 후유증과 우울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맥칼리스터가 중풍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본능적으로 ‘사랑의 섬김’을 실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크리스천 의사로서 정체성을 회복하고, ’사랑의 섬김‘을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섬김이 한 사람을 구원하고 또한 자신의 중풍과 우울증을 극복하게 한 것입니다.
고난주간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행하셨던 예식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중에 성찬은 제자들과 나눈 ‘유월절 만찬’으로 3년 반의 훈련 과정을 closing하신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찬에 대한 해석을 떡과 잔을 먹고 마심으로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의 몸과 피에 ‘참여’함(고전10:16)으로 주님과 연합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참여(participation)와 연합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라(remember)고 하십니다. 이것을 ‘기념하라’고 번역을 해서 오해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신학적인 논쟁으로 이어져 성찬의 의미가 축소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찬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리마인더’ 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의 피가 흐르고 있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성찬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이러한 성찬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대신 ‘세족식’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요한은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을 성찬을 대신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고난주간 마지막 가르침인 ‘다락방 강화’를 세족식으로 시작해서 성찬으로 마친 것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을까? 당시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한 손님들의 발을 노예들이 씻어주며 섬겼던 것을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온 ’파격’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고 말씀하십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때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진정한 섬김은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말씀하며 이렇게 마무리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이러한 ‘사랑의 섬김’이 세족식에 담긴 스피릿이며 주님이 남기신 교훈입니다. 진정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으로 말미암은 섬김’입니다. 큰 자가 작은 자에게 ‘본능적‘으로 베푸는 사랑의 섬김입니다.
요한은 성찬에 관한 내용이 공관복음에 이미 기록되어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빠져있던 세족식을 소개하고, 세족에서 성찬으로 이어진 주님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소개합니다.
세족식은 ’사랑의 섬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형제들을 서로 섬기도록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됨을 알게하고 함께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도록 한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된 우리가 이러한 ’사랑의 섬김‘으로 세상과 이웃을 섬길 때 ’물이 바다 덮음 같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덮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의 섬김’을 삶 가운데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의 작은 섬김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고난주간을 지나는 우리의 기도와 찬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