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계산법
Calculus of the LORD
고전 (1 Corinthians) 15:1-11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무엇일까? 1등부터 5등까지 빈도수로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발견합니다. 5등은 ‘믿음과 구원’으로 350번 정도 등장합니다.
4등은 ‘사랑’으로 약 700번 정도 나옵니다. 3등은 ‘죄’라는 단어로 1,000번 정도 나옵니다. 그런데 2등은 놀랍게도 ‘돈(재물)’입니다. 사랑이나 죄보다도 더 많이 무려 3,200번 이상 나옵니다.
우리 삶에 돈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1등은 물론 ‘하나님’에 관한 호칭으로15,000번 정도 등장합니다. 이는 주님, 여호와, 예수님, 성령님, 인자 등의 단어를 모두 포함한 것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어는 ‘하나님(Бог보그)’과 ‘재물’ 혹은 ‘부(богатство)’라는 단어의 어원이 같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두 단어를 같은 ‘어근(語根)‘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도 돈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은혜는 ‘영원히 다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사도바울이느꼈던 은혜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아마 그 마음 가운데 항상 큰 빚을 지고 살아갔을 겁니다.
갚아도 갚아도 채워지지 않는 빚인데, 그것이 짐이 아니라, 도리어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종이 된 자’ 로 은혜가 ‘헛되지 않게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오래 전 보스턴에 ‘스트로사’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꿈이 있었지만 자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거부였던 바턴 씨에게 2천불을 빌리러 찾아갔습니다.
담보는 없지만 일에 대한 꿈과 용기가 있으니 믿고 빌려주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노라 말했습니다. 바턴 씨의 스탭들은 경력이나 담보, 후원자도 없는 사람에게 대출해 주는 것은 위험하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바턴 씨는 왠지 그 청년의 용기가 마음에 들어 모험을 한다는 생각으로 2천불을 빌려주었습니다. 스트로사는 얼마 되지 않아 정말 빌린 돈을 모두 갚았습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갑작스레 닥친 대공황에 바턴 씨는 대비를 못해 파산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스트로사는 바턴 씨를 찾아가 그의 빚 7만 5천불을 갚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바턴씨는 깜짝 놀라 내가 모르는 돈을 꾸어준 적이 있나 의아해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자네가 꾸어갔던 돈은 10년 전에 다 갚았는데 자네가 왜 내 빚을 갚는단 말인가?”
그때 스트로사가 대답합니다. “분명히 제가 빚진 돈 2천불은 옛날에 갚았지만 회장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는 평생 갚지를 못합니다. 그때 2천불로 장사를 해서 오늘날 이렇게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돈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신뢰를 저에게 주셨지요. 회장님이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은영원히 갚을 수 없는 큰 빚입니다. 그러니 그 빚을 갚으려 합니다.”
담보도 없이 돈을 꾸어준 바턴이란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일까? 아니면 돈을 다 갚았음에도 큰 액수의 돈을 더 갚아주려 하는 스트로사가 어리석은 사람일까?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 둘 모두가 어리석어 보이지 않을까? 은혜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볼 때 한없이 어리석은 계산법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십자가의 도’는 우리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계산법‘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계산법을 깨닫고 ’감읍’ 한 사람들은 세상사람들이 볼 때 어리석고 미련한 방법으로살기로 작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로 사는 삶‘입니다.
목이 터져라 찬양을 하고, 목이 쉬도록 기도를 드려도 늘 부족한 것 뿐이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 ‘은혜 안의 삶’입니다. 주님의 계산법이 들어온 삶입니다.
그런 사람의 고백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그런 사람이 부르는 찬양이 바로 찬송가 141장 ‘웬말인가 날 위하여’입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산법을 심령에 깨닫고 회복하는 것을 ‘부흥’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평생의삶속에 이러한 부흥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
주님의 계산법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부흥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와 찬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