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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Thessalonica)

데살로니가전서(1 Thessalonians)기록 장소, 연대, 배경 및 목적: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초기에 쓴 서신(다수 학자들은 데살로니가전서를 바울의 첫 번째 저작이라고 본다)으로, AD 51-52년경 고린도에서 썼다. 제2차 전도여행 중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던 바울과 실라는 그들을 시기한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 데살로니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행 17:1-9).

그 후 고린도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전하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들었다.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진 박해를 잘 견디고 있으며 다른 지방에까지 그 믿음이 본이 되고 있고(살전 1:2-10; 2:14-16), 바울을 보고 싶어한다는 기쁜 내용이었다(살전 3:6).

아울러 바울은 자신의 지도가 필요한 몇 가지 문제가 있음도 발견했다. 즉 회심한 성도들 중 그릇된 종말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살전 4:11-12), 일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죽은 사랑하는 성도들의 영원한 장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살전 4:13-18). 또 성도덕의 문제를 지닌 성도들도 있었다(살전 4:1-6).

바울은 반대자들이 자신의 사역과 인격을 비방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행 2:1-12). 따라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감사하며,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지도하고 해답을 주고자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했다.

데살로니가전서의 특징: 첫째, 교회를 향한 극진한 사랑과 감사가 드러난 편지이다(살전 1:2-3:13).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염려를 표현한 듯한 구절들을 보면 알 수 있다(살전 2:17-20). 둘째, 특별한 논쟁은 없다. 바울은 자신의 반대자들에 대해서도 구약을 인용하여 온화한 논조로 서술했다. 셋째,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권고하며 위로했다. 특별히 재림에 대해서는 각 장마다 언급되어 있다(살전 1:10; 2:19-20; 3:13; 4:13-18; 5:1-3, 23). 넷째, 후기에 쓰여진 바울의 다른 저작들(로마서, 에베소서 등)에 비해 사상을 전개함에 있어서 덜 교리적이다.

데살로니가(Thessalonica)데살로니가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더마익 만(Thermaic Gulf)의 동북 끝에 위치한 원형극장 모양으로 생긴 항구도시이다.

로마와 동방제국을 연결하는 에그나티아로(路)(Via Egnatia)를 따라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던 이 도시는 번창하는 상업 중심지였으며, 또한 살로니가(Saloniga)만(灣)의 유리한 지형으로 인해 배가 드나들거나 정박하기에 좋은 항구도시였다. 이런 지리적 이점을 살려 일찍부터 번창한 도시로 발전했고, AD 150년경에는 인구 20만을 헤아려 ‘전 마게도냐의 어머니’라 불리기도 했다.
바울이 도착했을 당시의 주민 대부분은 마게도냐인과 헬라인이었고, 회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상당수의 유대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행 17:1).
이 도시의 이름은 BC 315년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 헬라를 다스리던 카산더(Cassander, BC 388경-297)가 인접한 도시들을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그의 아내였던 데살로니가(Thessalonica;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누이)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피드나의 전투(Battle of Pydna; BC 168년 로마가 마게도냐를 결정적으로 격파한 전투) 이후 처음으로 로마의 속령이 되었으며, 로마는 통치상 마게도냐를 4개 주(州)의 행정구역으로 분할했다. 데살로니가는 그 한 주의 수도였다가 BC 146년에 전체가 통합되면서 마게도냐의 수도가 되었다. 시이저(Caesar)가 암살되고 로마가 내란 상태에 빠졌을 때 데살로니가는 시이저의 양자 옥타비우스(Octavius) 편에 가담한 공으로 BC 42년에 자유도시(독립 국가를 이룬 도시)가 되었다. AD 904년에는 사라센에 의해, 1184년에는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1430년에 터어키의 영토가 되었다. 그때에는 ‘살로니키’(Saloniki)로 불렸으나 1913년 그리스의 영토로 된 이래 다시 옛 이름을 되찾아 공식명은 데살로니키(Thessaloniki)로 쓰이고 있다. 지금은 아테네에 이어 그리스 제2의 도시가 되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시작에 대한 기록은 사도행전 17장에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그의 제 2차 전도여행에서 빌립보를 떠나 실라와 디모데를 동반하고,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했다(행 17:1; 살전 1:1). 그리고 곧바로 그의 규례대로 회당으로 들어가 3주 동안 유대인을 대상으로 전도하기 시작했다(행 17:2).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한 실제 기간은 3주가 넘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바울의 전도로 시작된 데살로니가 교회는 야손의 집에서 모이게 되었고(행 17:5),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방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행 17:4). 교인 중에는 야손을 위시하여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가 된 아리스다고(행 27:2; 골 4:10), 세군도(행 20:4) 등이 있었다.

바울의 전도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바울을 잡으러 왔고, 그가 없었으므로 집 주인 야손을 끌고 갔다. 야손은 바울 일행을 그의 집에 머물게 했기 때문에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했고, 그들이 자신의 가족인 것처럼 그들을 위해 보(保)를 물어야 했다(행 17:9). 로마 법정에서 벌금은 관대한 벌에 속했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풀어 주기 위해 보를 내는 일 또한 드문 일은 아니었다. 제자들은 바울의 신변을 우려하여 밤에 바울을 베뢰아로 보냈다(행 17:10). 그러나 그곳에서도 유대인들의 끈질긴 추격으로 다시 아덴으로 떠나게 되었다(행 17: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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