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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이 되어 (행 3:1-10)

HVCC 아침묵상

하나님의 손이 되어
(행 Acts 3:1-10)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행1:3).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사도들에게 사명을 주신 것과 앞으로 일어날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예고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한 두 가지 위임명령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말씀입니다. 그 핵심 내용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것이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고,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위임명령은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실 때에 권능을 받는다는 것과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권능을 받아 신비로운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 일은 오순절에 제자들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외국어를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초자연적인 일이 있은 다음, 성령님에 의해 말씀의 권능이 사도 베드로에게 임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사람 3천 명은 마음이 찔려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초대 교회에서 기적과 표적이 많이 나타나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구제하고, 모이기에 힘쓰고, 성찬과 애찬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함으로 구원 받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갔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3장은 초대 교회에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사도들이 권능을 받고 기적과 표적을 행하며 말씀의 열매를 맺으며 부흥하는 가운데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약 40세의 장애인이 걷게 되는 기적의 사건이 나옵니다. 이 기적은 초대 교회가 외부 공격을 받는 발단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성전에 올라갈새(1-3절)]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제 9시 오늘날 시간으로는 오후 3시에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갈새’는 원문에 미완료 시제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완료되지 않고 계속 진행되는 동작이나 습관적인 동작을 뜻합니다. 즉 사도들은 습관적으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성전에 올라갔던 이유는 당시 사람들처럼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도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다고 나옵니다. 성전은 제사드리는 곳이지만 기도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처럼 시간을 정해서 습관적으로 기도 생활을 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신앙생활입니다.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사도들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그 시간에 선천성 하반신 장애인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성전의 출입문 중 하나인 미문 앞 입구로 나왔습니다. 그가 성전 문 입구로 나갔던 이유는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날마다 성전에 나가서 구걸했던 이유는 먹고 살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로 육체노동을 통해 벌이했던 고대 사회 특성상 걷지 못한 사람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처럼 어려웠을 것입니다.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선천성 하반신 장애인이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게 구걸하였는데 때마침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구걸을 하였습니다. 걷지 못하는 장애인은 그날 하루 돈 몇 푼이라도 동냥을 받아야지만 먹고 살아갈 수 있었기에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을 볼 때마다 간절히 구걸하였을 것입니다. 이때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그 사람의 말소리를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4-6절)]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구걸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사람을 주목하였습니다. 구걸하는 사람은 양반다리의 자세로 허리를 세워 앉지 않고 몸을 엎드려 손을 벌려 동냥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형식적인 적선을 위해 그 사람에게 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며 그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려고 했습니다.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걷지 못하는 장애인은 적선해 줄 사람이 보라고 했으니 무엇을 얻을까 기대하며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 궁핍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었습니다.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사도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은과 금, 그리고 그를 도울 수 있는 돈이 없었습니다. 몇 푼의 돈이 있었을지라도 적은 돈을 그에게 적선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사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성령님이 임하실 때 임할 권능을 이미 경험했던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능력이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임하기를 원하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설령 은과 금이 있어서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었던들 그 사람이 그것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돈이 떨어지면 또다시 성전 문 앞으로 갔을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여 건강한 몸으로 자발적 경제 활동을 하게 만들어, 그가 다시는 성전 앞에서 동냥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그것보다 더 값진 것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치유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7-10절)]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사도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권능이 사도 베드로의 손을 통해 그 사람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손은 하나님의 손이 된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사도 베드로의 손을 잡고 일어났을 때 겨우 몸만 지탱한 것이 아니라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 걸을 수 있었고 발과 발목의 힘으로 뛰기까지 했습니다. 이사야 35장 6절의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당시 장애인을 부정하게 여겼기에 성전 안으로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던 그가 성전으로 들어갔을 때 얼마나 감개무량하였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은 육신의 치유와 비교할 수 없는 영적 치유를 받았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손이 되어 세상에서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되 그것보다 훨씬 더 큰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전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나눔 물품보다 더 값진 선물을 전달해 드리는 사람이 되십시다.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성전 미문 안팎에서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이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의 반응이 10절입니다.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성전에 정기적으로 기도하러 다닌 사람은 성전 미문을 통과할 때면 변함없이 구걸하는 그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구걸하는 사람이 약 40세 정도였고 꽤 오래전부터 구걸을 해왔다면 성전출입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얼굴과 차림새를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가 뛰는 모습을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랐다고 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 ‘놀라다’는 말이 두 번 나오지만 원문에서 서로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첫째 ‘놀랍게’는 놀라움으로 인해 마비가 될 정도라는 표현입니다. 둘째 ‘놀라니라’의 원형은 ‘엑스타시스’입니다. 잘 알려진 단어, 영어 ‘엑스터시’의 어원이며 ‘황홀경’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놀랐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약 40년 동안 선천성 하반신 장애로 살았던 사람이 걷고 뛰고 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극도의 놀라움으로 몸이 마비되거나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장애인이 치유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엑스터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이지 않겠습니까? 약 40년 동안 걷지 못한 사람이 육체의 치유와 비교할 수 없는 영혼의 치유를 받도록 하나님의 손이 임하셨습니다. 사도들이 하나님의 손이 될 것을 이미 예수님께서 예고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육체적 영적 치유가 예루살렘에서 그치지 않고 땅끝까지 이어가도록 제자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성전 미문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구걸했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은 금은으로 장식된 높이 약 23미터나 되는 웅장한 성전 문과 대조적이었습니다. 아무리 금은으로 장식된 성전 문을 통해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더라도 하나님의 원대로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영적 상태는 초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초라하고 영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도 예수님 안에서 영적 치유를 받게 되면 영적으로 찬란한 새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문제 해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함을 잊지 마십시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의 손이 되었듯이 오늘 하루 우리 주변에 영적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볼 때 그들이 주님을 영접하도록 하나님의 손이 되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영적으로 초라하고 참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저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복과 구원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밑바닥 인생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는 하나님의 손이 되게 하시옵소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도움보다 더 값진 구원의 손이 임하도록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손이 되게 하시옵소서.
“내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강건할지어다” “나음을 입을지어다” “평안할지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성전 미문 앞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이 구걸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사도 베드로가 구걸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4. 내 주변에 손을 내밀어 잡아줄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봅시다.
5. 그 사람에게 힘이신 하나님의 손이 되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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