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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만나 Early Morning QT

하나님의 침묵(렘 12:1-17)

예레미야는 이름의 뜻처럼 “여호와께서 세운”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태에 있기 전부터 아셨고, 태아로 있을 때 이미 구별하여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로 세우시면서 뭇 사람들로부터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허리를 동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백성들에게 전한”(렘1:17) 예레미야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두려워했습니까? 아닙니다.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멸시하고 핍박했습니다.

게다가 고향인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선포한다면, 너는 물론 일족까지도 멸하겠다”(렘 11:21)고 공공연하게 협박하기까지 했습니다.

1-4: 예레미야의 좌절

하나님께서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렘1:18-19) 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고향 사람들의 살해의 위협 속에 살아가는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두려움에 깊은 좌절의 나락에 떨어졌습니다.

오늘 1절 말씀을 통해 그가 얼마나 좌절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그는 주님이 의로우신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하나님의 공의는 온데간데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악의 세력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악이 선을 짓밟고 우뚝 서서, 하나님의 의를 비웃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절에 의하면 가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위선자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서 그는 하나님께 항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진 현실 앞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불의한 이들을 징계해줄 것을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3b)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옵소서

그는 하나님께서 두 번째 항의를 합니다.
(4a)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하나님, 언제까지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렵니까? 그들로 말미암아 땅은 물론 짐승과 새들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왜 악인인 그들로 인해 아무런 죄가 없는 의인과 자연과 짐승들이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라고 항변합니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알려진 C.S. 루이스는 고통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첫 번째 책인 “고통의 문제”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능하다면 왜 피조물들이 고통당하도록 허락하시는가?“라는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신학적으로 접근한 책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는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즉 고통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20년 후에 고통에 관한 두 번째 책 “헤아려 본 슬픔”을 집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책을 루이스의 심장을 담은 슬픔의 일기라고 부르곤 합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59세에 결혼했던 루이스가 결혼 3년 만에 사랑하는 아내 조이 그래셤을 암으로 떠나보낸 후, 그 슬픔을 진솔하게 적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그의 어조는 매우 격앙되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도 전능하신 분도 아니며, 가학적인 신이고, 음식을 주고 다시 빼앗아 가는 광대, 멍청한 바보, 심지어는 나쁜 신으로 언급했습니다.

5-6: 하나님의 답변
예레미야의 항의에 대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하나님을 원망하는 예레미야의 항의에 대해 하나님은 그의 노고에 대해 수고한다고 하거나, 실의에 빠져있는 그를 위로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처한 현재의 어려움을 보행자와 함께 달리는 것으로, 평안한 땅에 있는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말과 경주한다는 것은 앞으로 그가 처할 어려움이 지금보다 훨씬 크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 닥칠 어려움은 마치 우기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흐르는 범람하는 요단 강물과도 같다고 하십니다. “지금 고향 사람들이 너를 죽이려고 위협한다고 벌써 코가 석자나 빠졌느냐, 앞으로 네 형제나 아버지 집이 너를 속이며 너를 죽이라고 소리 지를 것인데(6) 벌써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면서 앞으로의 사역에 대해 각오를 새롭게 다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범람한 요단강을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요단강은 갈라졌고 이스라엘은 마른 땅을 밟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정복했습니다.

새롭게 각오를 다진 예레미야는 이후 40년 동안 말과 경주하는 삶을 살면서도 결코 지쳐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그는 매를 맞고 착고에 채워 물 없는 웅덩이에 던져지는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바벨론의 침입으로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같은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장군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완수했습니다.

7-13 : 사랑의 분노
예레미야에게 각오를 새롭게 다짐시키신 하나님은 앞으로 이스라엘에게 닥칠 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은 어떤 존재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이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존재,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하나님이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가 하나님을 향해 숲속의 사자와 같이 맹렬하게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 넘기고, 온 땅을 황폐하게 만들겠다고 하실 정도로 분노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육체의 고통도 크셨겠지만, 제자들의 배신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하는 것만큼 큰 고통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부터 당한 배신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11)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하신 분노는 미움의 분노가 아니라, 사랑의 분노입니다. 미움의 분노는 상대방을 파멸시키지만, 사랑의 분노를 상대방을 다시 세워줍니다.

14-17 : 다시 세워주심
자신을 배신한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 넘기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약속의 땅에서 쫓아낼 것이고, 그들 손에서 유다(이스라엘)를 다시 세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14b-15)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 버리겠고 유다 집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내리라 내가 그들을 뽑아 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들의 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 세워주시는 이유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긍휼하심이 아니라면 오늘의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본문에서 그들은 이스라엘을 의미하기도 하고, 예레미야가 항의했던 형통한 악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바알을 신봉했던 그들이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도를 배우고, 하나님의 이름을 경배하는 삶을 산다면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예레미야가 분통해했던 형통한 악인을 하나님께서 묵과하고 계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올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구원받고 참 생명의 빛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정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17)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어느 시점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그 나라를 뽑아 심판하여 멸하시겠다고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의 형통함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에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에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 있느냐면서 항의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공의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우리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내 뜻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이 나를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별로 인해 낙심해서 하나님을 원망했던 루이스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이나 사랑의 자질을 알아보시려고 시험을 하시는 게 아니다. 그분은 이미 알고 계시니까. 모르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이 시험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피고석과 증인석 그리고 재판석에 모두 한꺼번에 앉아 볼 수 있도록 만드신다. 그분은 언제나 나의 성채가 카드로 만든 집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쳐서 무너뜨리는 것뿐이었다.”

루이스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의 우매함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과 분노속에서도 하나님은 회복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속에서도 기도하며 갈망하며 인내하며 마음의 고통과 아픔, 분노와 상처, 나의 뜻을 내려놓고 오늘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우리의 일상이 영원에 잇대어지는 시간들로 가득 채워져가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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