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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감리교회의 유래와 특징(The Origin and Characters of UMC)

* 연합감리교회의 유래(The Origin of UMC)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 6 28일 영국의 동북쪽 링컨 주의 엡워스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사무엘 웨슬리와 그의 부인 수산나 아네슬리 사이에서 열아홉명의 자녀중 열다섯번째로 태어났다. 특별히 그는 영국과 미국에서 수많은 변화가 있었던 18세기를 두루 걸쳐 산 인물이었다. 18세기 초 영국의 인구는 5백만 정도였으나 18세기 말엽에는 8백만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인구의 약 10%가 런던에 살았는데 대다수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질병이 만연했고 규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도 확실치 않아 불안정한 생활에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진 사람들은 일종의 해소책으로 술과 폭력, 매춘과 도박에 빠져 있었다. 반면에 토지소유자, 귀족, 부유한 상인들은 가난한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사치스럽고 평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즐겼다. 18세기의 영국은 경제력에 따라서 백성들의 계층이 심히 양극화되어 있었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농업과 제조업의 새로운 기술이 증가하고 직물업, 철 제련업과 같은 사업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며 산업 혁명의 초기 단계에 있었다. 백성의 대부분은 국가에서 공인된 영국교회에 속해 있었고 소수지만 영국교회가 아닌 캐톨릭, 장로교, 회중교, 침례교, 퀘이커교에 속한 사람들도 있었다. 영국교회는 정치적인 세계와 아주 긴밀한 연관을 맺고 기존 체제를 바꾸기보다는 백성들이 처한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인도하였다. 그렇기에 영국교회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영적이고 도덕적인 지침이 주어졌다. 영국이 이러한 상황에서 존 웨슬리는 태어났던 것이다.

존 웨슬리의 부모는 분리파라고 불리던 청교도 목사의 자녀들이었으며 후에 사무엘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 시절에 영국교회로 개종하였고 영국교회의 목사로 안수받은 후 엡워스 교구를 맡아 거의 40년간 봉직하였다. 존 웨슬리는 엡워스 목사관에서 성경과 영국교회에서 사용하는 기도서에 대한 사랑을 배웠고 부모의 영향을 받으면서 학문과 교회의 가르침, 기독교인으로서의 필요한 훈련,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최상의 교육을 받았다. 1714년 상류층의 자녀들이 다니는 차터하우스에 입학하였고 1720년에는 옥스퍼드 대학의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 입학을 하였다. 1724년 졸업할때에는 고전과 현대문학, 신학, 역사, 과학을 두루 섭렵하고 부모의 권위로 종교적인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존 웨슬리는 1726 3월 링컨 칼리지의 연구원으로 뽑히게 되었고 17299월 링컨 칼리지로부터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에 그의 동생인 챨스 웨슬리(Charles Wesley)는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의 학생이 되어 영적 성장을 목표로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들과 소그룹으로 규칙적인 만남을 갖고 있었다. 존 웨슬리는 그들의 초청으로 이 그룹의 일원이 되었고 곧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기도와 성경공부, 금식, 성만찬, 사회봉사 특히 옥스퍼드의 감옥을 방문하는 일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규칙적으로 행하였다.

다른 학생들은 이 적은 그룹에 속한 사람들을 성경벌레, 규칙주의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결국 웨슬리와 동료들이 그리스도께 헌신하면서 지키려고 했던 엄격한 규율은 그들로 하여금 “규칙주의자(Methodist)”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고 이것이 그대로 나중에 감리교단의 이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미 감리교회의 역사는 영국에서 웨슬리와 찰스 형제와 함께 일해 왔던 열심있는 남녀 그룹들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1768년 존 웨슬리는 뉴욕의 감리교 평신도인 토마스 테일러로부터 뉴욕에서 성장하는 감리교 운동을 위하여 유능하고 경험이 있는 전도자를 보내달라는 요청의 편지를 받고 2명의 설교자 리차드 라이트와 프랜시스 애즈버리를 파송하게 되었다. 프랜시스 애즈버리는 미국에 새롭게 조직되는 감리교회의 감리사의 역할을 위임받고 보내진 것이었다. 훗날 프랜시스 애즈베리는 1771년 미국 감리교회 역사의 첫 장을 연 인물이 되었다. 1774 9월 웨슬리는 토마스 코크 목사와 자신이 직접 안수하여 세운 2명의 목사, 곧 리차드 윗코트와 토마스 베이시를 미국으로 보내었다. 코크 일행은 미 감리교회를 조직하고 몇 명의 평신도 전도자를 안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보내졌다. 그들이 미국에 올 때 웨슬리가 미국의 감리교인들을 위해 만든 책을 가지고 왔다. 이 책에는 영국교회의 공중기도서를 요약해서 웨슬리가 만든 ‘북미 감리교 주일예배서’(The Sunday Service of the Methodists in North America)라는 제목의 기도서와 주일용 찬송 시편집(A Collection of Psalms and Hymns for the Lords Day)라는 제목의 작은 찬송집이 들어 있었다.

1784 12월 크리스마스 총회라고 불리우는 감리교 전도자들의 모임이 메릴랜드의 볼티모어에 있는 러브리 레인 채플(Lovely Lane Chapel)에서 모였다. 이 곳에서 감리교 전도자들은 미 감리교회라는 이름을 채택하게 되었고 토마스 코크를 감리사로 만장일치 추대하고 또한 프랜시스 애즈버리를 초대 감독으로 선출하여 그 조직체의 명칭을 감리교 감독회(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라고 하였다. 이들이 새롭게 세운 미감리교회의 목적은 ‘미 대륙을 개혁하고 이 땅에 성서적인 성결을 전파한다’임을 채택하고 이를 장정에 수록하였다. 영국교회의 ‘삼십구개강령’을 수정하여 웨슬리가 만든 ‘종교강령’과 ‘총칙’도 채택하였다. 아울러 1785년에 ‘미감리교회의 교리와 장정’이 최초로 나오게 되었다.

1784년 크리스마스 총회이후 수십년동안 미감리교회는 인종차별과 노예제도, 감독의 권한과 권위, 교회 지도력에 있어서의 평신도 역할과 같은 문제들로 인해서 심각한 분열을 겪게 되었다. 그러다가 1939 3개의 감리교회들 곧 미감리교회, 감리교 개신교회, 남감리교회가 통합하여 감리교회를 만들게 되었다. 1968년 감리교회 (The Methodist Church)는 펜실바니아주 죤스타운에서 복음교회와 연합형제교회가 통합하여 만든 복음연합형제교회와(Evangelical United Brethren Church)통합하여 마침내 텍사스주의 달라스에서 미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 연합감리교회 교리의 특징(The Characters of UMC) 

1. 연합감리교회는 선행적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다.

웨슬리는 인간이란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선행적인 은총과 자유의지를 주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셨다고 믿었다.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죄인에게 유일한 희망은 이 세상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요 아무런 공로없이 받을 만한 값어치가 없는데도 그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것을 웨슬리는 선행적 은총이라고 불렀다. 그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선행적 은총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다고 믿었다. 이것은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유롭게 역사하는 은혜라고 불렀다. (설교, Free Grace 1739)

이러한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신 선행적인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악된 상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며 새 생명의 길을 보여주고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와 화해를 자유롭게 받아들이게 하며 회개와 변화를 할 수 있게 한다. 선행적 은혜없이는 죄로부터 자유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와 새로운 삶으로의 응답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의 선행적인 은혜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는 자유를 회복한다.

2. 연합감리교회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믿는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다른 신학적인 용어가 칭의(Justification by faith)이다.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가 새로운 삶을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웨슬리는 개신교 종교개혁의 중요한 사상인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계승하였다. 웨슬리는 구원을 받기 위한 우리의 자세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응답하는 길이고 그의 용서를 받아들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신뢰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의지, 확신을 뜻한다.

3. 연합감리교회는 믿음으로 거룩해지는 것을 믿는다.

믿음으로 거룩해진다는 신학적인 용어는 성화(Sanctification)이다.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것이 하나님의 죄의 용서로 인하여 새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면 믿음으로 거룩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안에서 영적으로 계속 성장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뜻한다. 그는 기독교인의 신앙의 구조를 집에 비교함으로써 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도로 입구는 회개에 비유할 수 있다. 그 통로를 지나지 않으면 집으로 갈 수가 없다. 그리고 집의 대문은 믿음으로 의롭다 받음으로 용서, 죄사함,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집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도로 입구와 대문은 집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이며 집 그 자체는 마음과 삶의 성결이다(The Principals of Methodism Farther Explained, 1746).

성결에는 2가지 중요한 면이 있다. 개인적 성결과 사회적 성결이다. 개인적 성결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헌신, 의도의 단순성, 하나님 중심의 온전한 삶을 뜻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사랑하며 예배하며 닮으려 하고 순종함이 포함된다. 내적 성결은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의지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쓰시게 한다. 외적 성결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는 방법을 뜻한다. 성결한 삶의 목표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온전이다. 그가 생각했던 온전은 무지와 실수, 유혹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다. 웨슬리가 말하는 온전이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령의 가장 큰 선물인 마음의 순수함을 기독교인들이 지녀서 이를 통하여 사랑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며 예수의 행하심을 우리도 따라감을 뜻하는 것이다. (설교, On Love, 1737; ;Christian Perfection,1741) 이것은 챨스 웨슬리의 찬송(‘하나님의 크신 사랑’ 55)가사가운데 분명히 나타난다.

“우리들이 거듭나서 흠이 없게 하시고 주의 크신 구원받아 온전하게 합소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천국까지 이르러 크신 사랑 감격하여 경배하게 하소서”

4. 연합감리교회는 연대적인 체제를 믿는다

연합감리교회는 연대적인 체제를 통하여 약한 교회를 도우며 함께 교인을 육성하고 선교사업에 힘쓴다.

5. 연합감리교회는 4가지 신학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연합감리교의 헌법서라고 할 수 있는 “The Book of Discipline”에는 웨슬리의 신념을 아래와 같이 약술하고 있다. “웨슬리는 기독교 신앙의 살아있는 핵심은 성서 안에 계시되었고, 전통에 의해 조명되었고, 개인적 경험에서 생기를 얻었고, 이성에 의하여 확고해졌다고 믿었다.

웨슬리는 기독교 신앙을 해석함에 있어서 자신의 해석방법이 새롭거나 혁신적인 해석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는 18세기 영국교회에 이미 기존한 신학적인 접근방식과 방법을 받아들여 사용하였다. 그 중에서 기독교인과 기독교 공동체가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는데 있어서 성경, 전통, 이성, 체험, 4가지가 웨슬리에게 주요한 지침이 되었던 것이다.

1) 성경

웨슬리는 성경이 기독교인의 믿음과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789년 그의 설교 ‘Causes of the Inefficacy of Christianity’에서 “나는 대소에 상관없이 성경에서 벗어나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감히 그렇게 하지 않겠다. 나는 성경에 포함된 어떤 적은 것도 내 마음대로 할 권한이 없다. 나는 반 성경적이 아니라 완전히 성경적인 기독교인이 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을 “한 권의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한권의 책이란 성경을 말한다(설교’On Gods Vineyard,1787). 그가 스스로 “한 책의 사람”이라고 한 것은 성경만 읽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성경 이외에 다양한 종류의 서적들을 광범위하게 섭렵하였다.

웨슬리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쓰여진 책이므로 자신을 비롯하여 신앙을 신중히 받아들이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굳게 믿었다. 다른 3가지 근원인 전통, 이성, 체험은 성경을 해석하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그 성경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데 필요한 지침이라고 본 것이다. 이 말은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헌법서에 잘 요약되어 있다. 즉 “성경은 기독교 교리를 위한 제일차적인 출처요 기준이다.” 여기서 일차적이라는 말은 그의 교리와 신학 형성에 있어서 성서가 전통, 이성, 경험 보다 우선하는 표준이라는 것이다.

2) 전통

웨슬리가 전통에 충실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로 50권으로 된 기독교 문고(A Christian Library)를 편집해서 출판한 일을 들 수 있다. 이 기독교 문고는 2세기부터 웨슬리 당시까지 기독교 저자들의 글을 선택해서 모은 것이다. 그는 이외에도 기독교 전통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고 200여권의 고전을 번역 출판하기도 하였다. 웨슬리는 기독교 전통가운데 초대교회 연구에 심취하였고 초기 기독교 학자들의 글을 많이 참고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성경을 신실하게 해석한 사람들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16세기에 만들어진 공동기도서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였는데 여기에는 영국교회에서 사용되는 기도와 예배의식, 그리고 시편과 다른 성경구절들로 이루어진 매일 아침과 저녁 기도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왜 전통이 신학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아니될 요소인가? 전통이란 북음의 진리를 각 시대를 위해서 해석하는 노력인데, 복음은 하나이지만 해석의 관점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것이다. 이 다양한 전통은 복음을 충실히 해석하려는 노력이었다는 의미에서 가치있는 것이다. 지난 2000년의 교회역사는 성서 해석의 역사라고 말해서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는 그 성서 해석의 토대 위에 서 있어야 하고 또한 우리 시대를 위한 해석을 일삼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전통을 무시하면 우리 스스로 기독교 전통에서 소외되고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3) 이성

웨슬리가 활동하던 18세기 서구사회는 이성의 지배 아래 있었다. 특히 기독교 이신론(理神論, Deism-인간이 이성으로 절대적 진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신의 계시가 필요 없다는 학설, 일명 자연신론)이 풍미했던 시대에 이성을 종교의 적으로 거부하는 전통주의도 있었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성을 동반자로 보고 적극적으로 받아드렸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참된 종교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건을 발굴하려 할 때, 하느님이 주신 이성을 유감없이 활용하라고 주장할 뿐 아니라 권고하는 바이다” 고 하였다. 그는 종교에 있어서 이성과 감성, 이 두가지를 모두 수용하고 있음을 자신의 입장으로 분명히 하였다. 성숙한 신앙이란 언제나 건전한 이성과 이해에 근거를 두어야 하고 이성과 신앙은 적대 관계에 있지 않고 적절한 동반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

4) 체험

웨슬리는 기독교 신학에서 체험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서 끊임없는 관심을 가졌다. 그는 1786년 ‘Thoughts Upon Methodism’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감리교인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감리교가 영력없이 종교의 형태만을 갖춘 죽은 종파의 모습으로 남을까 두렵다”

웨슬리는 자신의 목회사역을 통하여 종교의 극단적인 형태에 치우친 사람, 바른 신학적인 이해, 예배와 성찬의 참여, 자선을 함으로써 하나님이 미쁘심을 얻을 수 있다는 편파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하였다. 그는 이런 사람들에게 참된 종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생생하게 느낄때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신시켰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깊은 내면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알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도 그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시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올더스케잇 회심사건을 통해 직접 체험하였다. 그는 올더스게잇의 회심을 통해 비로서 구원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 경험의 빛에서 성서, 전통, 이성을 재조명할 때 새로운 생명이 솟아난 것이다.

‘웨슬리의 사변형’이라고 불리우는 이 4가지 신학을 위한 지침, 즉 성경, 전통, 이성, 체험은 웨슬리 신학의 중요한 근간이 된 것이다.

 

* 미연합감리교회 조직과 현황(The Organization of UMC) 

870만 명에 달하는 연합감리교회는 스스로 교회의 나아갈 길을 결정하는 민주적인 방법에 따라 치리되고 있다. 가장 중요하고 최종적인 결정기구는 미 전역에서 선출된 총회 대표들이 모여 매4년 마다 한 번씩 개최하는 총회(General Conference)이다. 이 총회 아래 5개의 지역구(Jurisdictional Conference)가 있다. 이 지역구는 미국을 지리적 구도에 따라 지역별로 구분한 것으로 그 속에 몇개의 연회(Annual Conference)가 소속되어 있다. 이 지역구는 감독을 선출하며 각 연회의 목회와 행정을 돕는다. 연회는 몇 개의 지방(District)으로 구성되며 연회를 주관하는 감독(Bishop)이 상주하면서 치리하는 연합감리교회의 가장 기초적인 조직이다. 연회는 매년 그 연회가 담당하는 지역의 목회 계획을 세우고 되돌아본다. 아울러 각 지역은 감리사(Superintendent)에 의해 치리되며 여러 개의 개교회로 구성된다. 그리고 각 개 교회는 구역회(Charge Conference)를 구성한다. 구역회는 각 개교회의 중심 된 기관으로서 일 년 교회의 예산 및 목회의 방향과 제반 행정적인 사항을 의결하는 한편 교회의 임원등 인선작업도 병행한다.

연합감리교회는 교인 구성에 있어서 가장 많은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및 미본토인들로 구성된 교단이며 포괄적이며 복합주의적인 성격을 지향하고 있다. 미대륙의 최초의 종교출판사는 감리교출판사였고 또 현재 100개가 넘는 대학과 13개의 신학교, 15개의 초급대학, 400개의 병원, 고아원및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다. 연회에서 파송을 받아 일하는 목사의 숫자는 수만명에 이르며 특별파송을 받고 일하는 목사의 수도 수천명에 이른다. 연합감리교회는 세계의 7대륙중 6대륙에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으며 일곱째 대륙인 오스트라리아는 상당한 규모의 영국계 감리교회가 있다. 연합감리교회에 속한 교인들은 주로 중산층 65%에 속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합감리교회의 80%는 인구 1만명 이하의 시골지역이나 중소 도시에 세워졌고 그중에 4분의 3 200명이하의 교인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총 감리교인수의 60%는 도심지에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감리교의 첫 선교가 한국 개신교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1884 6 27일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매클레이(Maclay,R.S.)가 한양에서 당시 개화파 지도자인 김옥균(金玉均)을 통하여 대한제국 고종에게 감리교회의 선교사업에 대한 윤허를 요청하였고, 고종은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활동만을 허용하였다. 직접적인 선교는 1885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부부와 스크랜튼이 인천에 도착하며 시작되었다. 아펜젤러는 정동제일감리교회와 배재학당을 설립하였고 선교와 교육에 종사하였다. 스크랜튼은 의료사업에 종사함으로써 또 다른 선교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전신인 조선감리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전래 초기부터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 한국 내 관련 대학으로 감리교신학대학교, 협성대학교, 목원대학교, 연세대학교(장로교회와 공동 설립), 이화여자대학교, 배재대학교 등이 있고, 감리교회 목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감리교신학대학교, 협성대학교, 목원대학교 등의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이 있다.

미국 내의 감리교회는 ‘연합감리교회’ (The United Methodist Church)외에’자유감리교회’ (The Free Methodist Church) 및 ‘나사렛교회’ (Church of the Nazarene)가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아울러 인종차별로 인해 아프리카 감리교 감독교회와 아프리카 감리교시온교회등의 교파가 생기게 되었고 20세기 초에는 감리교회 내에서 개인의 성화를 중요시 하는 성결운동로 인해 성결교회가 발생하였고, 영적 체험과 은혜를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이 벌어지면서 오순절 교회, 즉 순복음 교회가 발전하게 된다.

연합감리교회의 조직은 미국 이외에도 캐나다와 유럽, 아프리카와 필리핀의 교회들을 포함한다. 그 외 감리교회들은 국가별로 독립된 교단을 형성하여 운영되고 있다. 세계 각지의 감리교회의 교류를 위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세계감리교협의회 본부가 있다. 보편교회의 감독제 교회 전통을 계승하여 감독을 중심으로 한 감독제 교회의 치리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글정리: 장재웅목사(MD  하늘비전교회)

참고도서(Reference)

Jack M.Tuell The Organization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Abington

원달준 역 ‘연합감리교회의 특징’

‘챨스 유리겐, Jr ‘존 웨슬리: 성결한 삶을 위하여’

연합감리교 출판사 ‘평신도 지침서(Guide Lines for Leading Your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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