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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마가의 만남

사도 바울은 늘 지중해 연안의 모든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세계의 수도 로마에 가고 싶어 했고 로마를 거쳐 서바나까지 진출하려 했다.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롬 15:23)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그가 2년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할 때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선언하여 우상 장사에 타격을 입게 된 금속 세공업자들의 폭동이 일어났다. 에베소 서기장의 설득으로 소요는 겨우 진정되었으나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에 간 것으로 보인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냈던 디도를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고후 2:12∼13)

바울은 어떤 곳에 직접 갈 형편이 못 되면 늘 자기 대신 디도를 보내곤 했다. 그는 항상 바울의 밀명을 수행하는 유능한 동역자였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가 빌립보에 이르렀을 때 디도가 도착했다.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후 7:6∼7)

AD 57년쯤 빌립보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고린도 후서에서 바울은 다시 이번 순회의 또 한 가지 목적이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형편을 돕기 위한 ‘연보’를 거두어 전달하는 데 있음을 강조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1∼2)

바울은 디도를 통해 이 취지를 고린도 교회에 알렸다.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고후 8:6)

당시 마가는 이미 AD 40년 알렉산드리아에서 돌아온 이후로 부친의 사업을 복구하는 데 힘썼고, 특히 아가보 선지자가 예언한 큰 기근이 AD 45년 닥치기 전부터 예루살렘과 인근 지역에 곡물을 수입하는 데 힘썼다. 그 기근이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되기는 했으나 왜 AD 57년까지 예루살렘을 돕기 위해 애썼던 것일까. 그러나 만일 마가가 AD 50년쯤 마가복음을 기록한 이후 예루살렘 성도들의 집단 이주를 위해 베네치아 건설을 추진했다면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을 것이고 수만 명이나 되는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생계를 감당하는 일이 힘겨웠을 수도 있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계속 매달려야 했을 것이다.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고후 13:1∼2)

바울의 두 번째 고린도 방문이 언제였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고린도 후서의 문맥으로 보아 필자의 소견으로는 에베소를 떠난 바울이 곧장 드로아로 간 것이 아니라 먼저 고린도로 건너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뭔가 봉변을 당했고 드로아로 가면서 디도를 고린도에 보내 사태를 수습하도록 부탁했을 것이다.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고후 2:1)

바울은 자신이 봉변을 당한 고린도 교회에 조정과 절충에 유능한 디도를 보냈다. 빌립보에서 디도를 만나 사태가 잘 수습됐다는 보고를 받고 그를 고린도 교회로 다시 보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를 부탁하게 했다. 그리고 그 연보를 거둬 가기 위해 세 번째 방문을 하는 것이다.

젊어서부터 명성을 날렸던 학자이며 가말리엘 문하의 제자로 기세등등했던 바울이 자신을 망신 준 고린도 교회에 연보를 부탁하고 또 그것을 받기 위해 갔다는 것은 그가 자존심을 다 버리고 주께 순종하며 일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루살렘에 연보를 전달하기 위해 로마에 가고 싶은 마음을 접고 그는 겐그레아에서 로마서를 쓴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롬 16:1∼2)

그는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그를 바다에서 죽이기로 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육로를 거쳐 드로아로 우회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빌립보 교회의 누가를 비롯해 베뢰아, 데살로니가, 더베 등 각 교회의 대표들과 만나 함께 사모스 섬을 거쳐 밀레도에서 에베소 성도들을 만나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고스, 로도, 바다라를 지나 두로에 상륙했다.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는 두로의 제자들과 작별하고 다시 돌레마이를 거쳐 가이사랴에 도착했을 때 유대에서 내려온 선지자 아가보가 그를 만나 또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만류했다.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행 21:11)

그러나 바울은 굽히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강행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AD 58년이었다. 그는 예수의 아우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책임자인 야고보를 만나 그가 거둔 연보를 전달하고 그동안 아시아와 마게도냐 그리고 아가야에서 주님이 하신 일을 다 보고했다.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을 때 이를 알게 된 유대인들이 군중을 선동하여 그를 끌어냈다. 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하므로 로마군 천부장은 일단 그를 연행했다. 바울이 그에게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히자 천부장 루시아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가이사랴로 호송했다.

아그립바 2세의 누이 드루실라와 결혼한 벨릭스 총독 앞에서 바울은 심문을 받았다. 벨릭스가 아무런 조치 없이 바울을 2년 동안 구류했다가 AD 60년 후임자로 부임한 보르기오 베스도 총독에게 이 사건을 인계하자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내세워 황제에게 상소할 뜻을 밝혔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행 25:11)

후일 다시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2세 앞에서 진술할 때 바울은 어디서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났다고 증언했다. 그의 진술을 다 들은 베스도 총독이 탄식하며 말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

베스도 총독은 마침내 바울을 로마에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호송 책임자인 아구스도 부대의 백부장 루기오는 그를 다른 죄수들과 함께 아드라뭇데노 배에 태웠고 무라 시에서 이달리야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로 갈아탔다. 크레타 섬의 뵈닉스에를 향해 가던 배는 태풍 유로굴라를 만나 풍랑과 싸우던 중 열닷새째 되는 날 육지를 발견하고 접근하다가 파선했다. 그러나 배에 탔던 군인과 죄수 그리고 승객과 선원 276명은 모두 구조됐다. 멜리데 섬에서 석 달을 보낸 그들은 디오스구로 호를 타고 AD 61년 보디올을 거쳐 로마에 도착한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행 28:16)

필자의 추정대로 마가가 베네치아 건설을 경영했다면 AD 61년쯤에는 1단계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것이고 예루살렘 공동체의 집단 이주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베네치아에 자주 들르던 마가는 사업 관계로 로마에 자주 드나들었을 것이고 로마에 연금되어 있던 바울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결국 죄수의 몸으로 그가 오고 싶어 했던 로마에 입성했고 마가는 사업의 목적으로 로마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AD 62년 마침내 바울과 재회한 마가는 그의 은밀한 지시를 받고 골로새 교회로 가게 되는 것이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6306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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