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와 순례로서의 독서를 실천한 옛사람의 숨결
1.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시편>의 한두 편을 외우거나 아니면 몇 구절이라도 암송하는 구절이 있을 듯합니다. 저도 어린 시절 교회에서 시편 1편과 23편을 외우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편은 제게 어떤 불편함과 곤혹감을 안겨주는 책이 되었고, 그래서 멀리한 적도 있습니다. 까닭은 시인의 탄식과 원망 속에 선인/악인,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타인을 향한 분노와 상대방을 적대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기 때문입니다.(<시편>의 표층만을 본 사람의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2.
그러나 어느 날, <시편>을 한 편 한 편 다시 읽어나갔습니다. 무겁고 지친 마음 때문일까, 시편이 제 마음을 그대로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시편>에 이끌리어 책을 찾다 C.S. 루이스의 시편사색과 김기석 목사님의 시편묵상이 담긴 <<행복하십니까, 아니오 감사합니다>>를 만났습니다. 김기석 목사님의 시편묵상을 읽어가는 동안 <시편>은 제 마음의 강으로 점점 흘러 들어왔고, 인간의 정직한 아픔과 호소,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자, 바닥으로 내려간 자의 절절한 탄식이자 기도로 다가왔습니다.
3.
이렇게 <시편>과의 만남이 이어지는 동안, 무더위가 찾아오는 계절, 귀한 손님을 만났습니다. 다름 아닌 송대선 목사님의 옮김과 풀이가 담긴 오경웅(吳經熊) 선생의 <<시편사색>>입니다. 출간 소식을 듣자 먼저 기쁨과 반가움이 겹쳤습니다. 학부시절, 목사로서 동양철학을 가르치셨던 현재(鉉齋) 김흥호(金興浩) 선생님의 ‘선(禪)과 현대철학’이란 과목에서 읽은 책이 오경웅 선생의 선(禪)의 황금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선생의 자서전 동서의 피안도 졸업을 앞두고 읽으면서 그분 영혼 속에 스며든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향기가 어떻게 고백되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4.
오경웅 선생은 스스로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아이”(<<동서의 피안>>)라고 고백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백이 있기까지 겉으로 드러난 삶과 달리 그의 이면의 삶은 가파른 고개들을 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겉사람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의 속사람이 썩어 감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5.
시는 마음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오경웅 선생이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시편>속에서 들은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공자는 ‘시(詩)'(<<시경>>) 삼백 편을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思無邪)는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인간의 솔직한 속내를 담은 노래에 도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귀하게 여긴 그였기에 그런 말이 나온 것이라 봅니다. 전통시대 동양의 문인과 철학자들이 모두 시를 쓰고, 현실의 세계에 이루지 못한 꿈과 열망, 한과 고통, 속절없는 삶의 허망을 시를 통해 드러낸 까닭도 이러한 공자의 마음에 잇닿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6.
<<시편사색>>을 펼치면, 동양의 전통학문과 서학(西學)의 세례를 고루 받은 오경웅 선생의 정신에 동양고전의 세계가 얼마나 깊게 배어있는가, 그 온축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는 동양고전의 세계, 유불도 삼교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리스도교는 ‘동서(東西)와 신구(新舊)를 초월’하고, 그리스도께서 “내 생활의 통일을 이루어주시는 본질”이라고 고백합니다.(<<동서의 피안>>) 그런 그가 신의 은총을 입은 자만이 옮길 수 있는 언어로 <시편>을 한 자 한 자 한문으로 옮기고 새겨 넣었습니다. 하여 선생의 학문과 신앙의 깊이가 오롯한 <<시편사색>>에는 동양의 방대한 고전들이 녹아있습니다. 그것을 풀어놓지 않으면 시편사색의 의미가 드러나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사색>>의 출전과 관련 고전들을 역자 송대선 목사님이 빠짐없이 찾아내어 제시하였고, 아울러 당신의 사색의 고갱이를 곳곳에 실어놓았습니다. 목사님의 해설을 읽는 동안, 오래 묵히고 삭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글임을 책의 어느 쪽을 펼쳐보아도 쉬이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7.
부족하나 저는 10여 년 째 신학대학에서 동양철학과 고전을 강의해오면서 어떻게 하면 동양의 언어로 하느님의 뜻과 말씀, 은총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모색해왔습니다. 동양철학자로서 목회자가 될 제자들, 목회자, 넓게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책들을 구상해왔습니다. 동양고전의 세계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다리를 놓아 제자들 중 깊이 있는 목회자들이 나오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런 바람에서 제자들에게 성경 옆에 논어나 <<노자>>, <<주역>> 등 동양고전을 늘 곁에 두고 반복낭독, 음미하길 권유하곤 했습니다. 언젠가 <<논어>>를 성경 곁에 두고 읽으며 묵상한다는 제자들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편사색>>을 읽어가는 동안 미력이나 쓰고 싶었던 책의 한 모습을 미리 보는 듯해 신기하고, 저자와 역자에게 부러움과 존경의 염도 교차했습니다.
8.
그리스도인이자 동양철학자인 제가 받는 물음 중 하나는 그리스도교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란 것이었습니다. 대체로 그러한 질문을 주신 분들은 동양, 특히 유학에서는 수신과 수양을 강조하지 않는가, 자기의 변화를 자신 밖에서 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니 기도가 강조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답을 하곤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제게 인간의 유한함을 깊이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9.
<<시편사색>>은 인간의 유한함, 하느님의 무한함이 드러납니다. 이 간극을 어떠한 언어로 채워 넣을 수 있을까.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존재. <<시편사색>>의 책장을 넘기면서 하느님 없는 인간의 비참을 토로하면서도 ‘생각하는 갈대’로서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준 파스칼. 과학의 천재이자 압도적인 지성의 소유자였으나 하느님을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회심한 파스칼이 떠올랐습니다.
10.
성서의 뜻을 밝히고자 동양고전을 맥락 없이 끌어와 현학을 면치 못한 책을 더러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사색>>은 저의 염려가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해주었습니다. 오경웅의 시편 번역이 방대한 동양고전의 세계에 출전과 전고를 두고 있음을 또렷하게 보여주면서, 앞에서도 비쳤듯이, 무엇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송 목사님이 동양고전의 알짬을 깊이 풀어낸 대목들을 만나며 놀랐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다보니 책장을 넘기다 밑줄을 그은 대목들도 여럿입니다. 오경웅 선생의 고심을 드러내면서 송대선 목사님의 사색을 겹쳐놓은 대목들에도 공명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시편사색>>을 오경웅 선생과 송대선 목사님의 공저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저의 경우 송대선 목사님이 동양적 사유와 그리스도교를 비교하신 부분을 특히 주목하게 되었는데요, 다소 길지만 직접 음미해보시면 좋을 듯하여 아래에 옮겨보았습니다.(저로서는 이러한 동양적 사유와의 비교가 단순한 비교로 그치지 않고, 송 목사님의 안목 속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깊이를 더욱 드러내었다고 생각합니다. 관견이나, 이 점이 시편사색이 가진 여러 미덕들 중 가장 귀한 점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그것을 되새기며 온전히 주의 뜻대로 행하게 되는 것! 이것이 믿음의 길이고 성장이다. 유학의 공부론과 비교해보자. 유학의 공부는 널리 배우고, 의심이 가는 부분을 자세히 물으며, 배워서 아는 것을 반성해서 그 생각에 신실하려 하며, 잘 분별하여 더 이상 의혹이 없게 되고, 독실히 힘써 실천하는 것, 즉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독행(篤行) 이 다섯을 공부라 한다.”(227쪽)
“7절에서 오경웅은 하느님을 지성(至誠)이라 읊었다… 동양적 사유의 장점은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면서 사람이 능히 그려볼 수 있고 닮아갈 수 있는 언어를 찾고자 힘쓴 것인데 그 가운데 소중한 언어가 성(誠)이라 하겠다. 성(誠)은 충(忠, 이때의 충은 충성스러움보다 그 마음의 중심의 마음을 뜻하는 정직과 가깝다)과 정직이기에 그 근본에 거짓이 전혀 없음이다.”(290쪽)
“히브리 시 80편은 유독 ‘만군(萬軍)의 주님’이라는 호칭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오경웅은 이 호칭을 피하고 있다. 고대 히브리적인 호칭이어서일까” 그가 믿고 의뢰하는 하느님을 전쟁의 신이라 부르는 것에 거리낌이 있어서인가? 그가 체험한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든, 그의 토양이 된 동양적 사유 안에서든 만군의 주님이라는 호칭이 자리 잡기 어려워 보인다. 하늘과 땅의 자연스런 이치로 모든 만물을 생하게 하고 잘 기르며, 인생을 잘 교화하여 바르지 못한 것들을 버리고 참된 이치에 따라 살도록 돕는 것이 성인의 길이요 하늘의 길이라 여기는 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목민족의 사유와 농경민족의 사유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살아온 역사적 경험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425쪽)
“히브리 시인이 하느님의 의(義)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오경웅은 그러하신 하느님을 따르는 인생의 길을 안내한다. 유학의 사유에서 인(仁)은 언제나 거할 집(宅)으로 비유되고 의(義)는 걸어야 할 길(路)로 비유되곤 해서 안택정로(安宅正路)라고 하기도 한다… 히브리 시인은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청하는데 오경웅은 이를 방택(芳澤)과 춘풍(春風)으로 번역하여 동양적 정서의 맛을 더한다.”(445쪽)
“시인은 하느님 앞에서 그의 마음속 슬픔과 분노를 토해놓는다. 그는 이 모든 시련을 다 견뎌내면서도 남을 미워하지 않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그는 나약한 인간이다. 그 나약한 인생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속을 다 꺼내놓으면서 그는 점차 미워할 사람에게서 자비를 베푸시고 신원(伸冤)하시는 하느님께로 옮겨간다. 자신이 겪은 시련과 고난의 감정에서 자비하신 하느님의 손길로 눈길이 옮겨가는 것이 기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가장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시간이 되고 은혜의 공간이 된다. 그에 반해 동양적 전통에서는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진술이기도 하다. 오히려 도리에 맞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끊을 때 그 사람의 허물을 꺼내지 않고 덮는 것을 마땅히 여겼다. 시편의 기도가 하느님께 드리는 고발과 탄원이라면 동양적 기저에는 침묵 가운데 스스로 소화함이 있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 할 수 없으니 잘 새길 일이다.”(578쪽)
“오경웅은 5절과 7절에서 먼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위가 하나(知行合一)이신 분임을 역설하고 있다. …송대 신유학에서 지식인이 배우고 아는 바대로 행하거나 살아내지 못하는 괴리와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큰 논쟁거리였다… 유학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논의된 주제를 오경웅은 신앙 안에서 풀어간다. 그는 이 시편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함으로 즉 행하고서야 비로소 앎이 있다고 말한다.(能行始有知)”(585쪽)
“도덕경적 사유가 유한한 것을 절대화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유혹에 깨어있고자 한다면 성서적 사유는 그분의 거룩한 이름과 말씀에 오롯이 뛰어들어 그분의 은혜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전자가 유한한 인간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런 인간이기에 오롯이 투신할 영원을 사모할 수밖에 없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둘은 서로 멀리 있지 않다. 그렇게 오경웅은 이 시편의 제목을 그분의 이름과 말씀이라고 제목을 붙여 머뭇거리는 인생을 초대하였다.”(737쪽)
“동양적 사유에서는 마땅한 결과로서 인과(因果)를 말하지만 오경웅은 이 시편의 이야기를 통해 인과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에 다름 아니다. 눈앞의 왜곡된 현실이나 시인이 겪는 아픔에 휘둘리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끝내 바로잡으시는 하느님을 향한 신뢰를 인과로 표현하고 있다.”(748쪽)
“동양적 사유에서 숙명에 대한 사유는 인생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오경웅은 이 숙명을 그러한 수동적 사유보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뜻과 장차 이루실 역사로 풀고자 한다. 하느님의 계획이며 섭리이시다.”(786쪽)
12.
마지막으로 시편사색을 읽어가는 동안, 동양의 전통적인 독서법이 체득된 책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경웅 선생님과 송대선 목사님의 음미(吟味), 우유(優游), 함영(涵泳), 저작(咀嚼), 잠심(潛心), 숙독(熟讀), 완색(玩索)… 책을 읽는 내내 성현의 마음을 읽기 위한 구도와 순례로서의 독서를 실천한 옛사람의 숨결을 경험했습니다. 책장을 덮고, 읽고 난 후의 소회를 정리하며, 책을 책상머리에 놓아두었습니다. <<시편사색>>이 그리스도의 향기이자 편지로서 살아가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귀한 신앙의 선물이 되길 바라며, 향기와 깊이를 잃어버린 오늘 한국 그리스도교에 오래도록 널리 읽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임종수/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철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동양철학과 고전, 종교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종교속의 철학 철학속의 종교>>(공저),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만든 역사 1>>(공저), <<21세기 보편영성으로서 誠과 孝>>(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 <<중국미학사中國美學史:선진시대에서 명청시대까지>>(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