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계명. 옆으로 비켜서라!… 당신을 보러 오지 않았다.
찬양 사역의 본질은 ‘그 자리’에 참석한 회중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모나리자’를 보려고 프랑스 르부르 박물관에 갔는데, 덩치 큰 안내원이 그림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그림을 가린 채로 설명을 하고 있다는 상상을 해 보자. 얼마나 당황스러운가? 안내원은 옆으로 비켜 서야 한다. 그 자리가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실제로 우리의 찬양과 예배 안에 일어날 때가 있다. 특별히 찬양 인도자들은 회중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 안으로 나가야 할 회중들 앞에 가로막아 서지 말자. 하나님의 영광을 단 한 줌이라도 가로채지 말자. 예배자들의 관심과 마음을 자신에게로 가져오지 말자. 회중들은 당신을 보러 오지 않았다. 회중들은 당신의 멋진 연주와 노래와 말을 들으면서 감동받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옆으로 비켜 서자. 공간적인 ‘자리’는 어쩔 수 없이 중앙에 위치한다고 해도, 끊임없이 옆으로 비켜 서는 태도를 통해서 경배 받으실 하나님만 드러나게 하라!
2계명. 항상 기억하라!… 당신의 등 위에 타고 계신 분이 누구신가?
<어느 날, 어린 나귀 한 마리가 허겁지겁 어미에게 달려왔다. 엄마! 엄마! 오늘 엄청난 일이 있었어! 글쎄 내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데 말이야… 사람들이 내 발 밑에 자기들의 겉옷을 막 깔아주는 거야… 날 보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대면서 소리치며 좋아하는 거야… 호산나? 라고 하던가? 여하튼 이렇게 즐겁고 흥분된 날은 처음이야. 엄마, 오늘 너무 기분이 좋아! 최고야! 최고!>“오늘 너무 은혜 많이 받았어요. 어쩜 그렇게 목소리가 좋으세요? 연주가 너무 훌륭했어요. 정말 좋은 곡이예요. 표정만 봐도 은혜가 넘쳐요…” 이런 말을 들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내 등 위에 타고 계신 분을 잊을 때가 있다. 그 분 때문에, 그 분에게 드리는 칭찬과 영광인데 마치 내 것 인양 넙죽 받아 넣을 때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한다.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라고 말하지 말자. 찬양인도자의 자리는 가장 눈에 띄고 박수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자리기 때문에, 늘 겸손과 섬김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절대로 잊지 말자. 당신의 등 뒤에 타고 계신 분 때문에 당신에게 가치가 부여된 것이다.
3계명. 말씀 안에 거하라!… 뿌리 없는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쓰러진다.
다윗의 찬양대는 지휘자 3명, 찬양대원 4000명, 그리고 중간 리더인 레위인 288명으로 구성이 되었다. 역대상 25장에 나오는 다윗의 찬양대 지휘자는 아삽, 여두둔, 헤만이다. 이들 모두는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라고 소개되었지만, 동시에 세 명 모두 성경 안에서는 ‘왕의 선견자’로 소개가 되었다(헤만:대상25:5, 아삽:대하29:30, 여두둔:대하35:15). 선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는 사람으로 ‘항상 왕의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권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전문적으로 찬양인도를 담당하던 아삽과 여두둔, 헤만…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했던 자들이다.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며 그 안에 뿌리를 두는 훈련은 찬양인도자들이 균형과 깊이 있는 찬양사역을 위해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된다. 성경이 말하는 예배와 찬양을 정확하게 배우고, 우리가 예배하는 분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예배하는(요4:22), 그런 안정감 있는 인도자가 되자. 나무의 뿌리는 세찬 비바람을 통해서 그 깊이와 안정감이 증명된다. ‘사람들의 평가, 시선, 의견, 섭섭함, 갈등…’이라는 크고 작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어느 날 뿌리 채 뽑혀나가지 않도록 ‘말씀’으로 ‘보이지 않는 찬양사역’을 세워가자.
4계명. 권위 있는 리더가 되라!… 지배할 것인가, 인도할 것인가?
믿음과 신앙고백이 분명하고, 노래도 잘하고, 악기도 다룰 줄 알고, 인상 좋고, 성격도 좋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찬양인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조건을 가진 사람이 좋은 예배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찬양인도자는 이름 그대로 ‘인도자’이다. 리더쉽이 필요한 사역이라는 것이다. 리더쉽은 타고난 은사와 달리 배움과 경험을 통해 충분히 계발되고 발전될 수 있다. 크리스챤 리더쉽은 ‘권위 있는 섬김, 함부로 할 수 없는 겸손, 무례하지 않는 강권“이 세 가지 말로 대표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의 리더쉽이다. 철저하게 섬기셨지만 그 하늘의 권위를 잃지 않으셨고, 죽기까지 낮아지셨지만 어느 누구도 함부로 주님을 대할 수 없었고, 타협 불가능한 진리는 강권하시며 가르치셨지만 결코 무례히 대하지 않으셨던 그 주님의 리더쉽이 찬양인도자에게도 필요하다. 이 리더쉽을 한 단어로 모으면 ’권위‘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팀원은 인도자보다 음악적인 경험, 지식, 은사가 많을 수 있다. 어떤 팀원은 인도자보다 더 찬양 인도를 잘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떤 팀원은 노래도 더 잘하고, 외모도 낫고, 악보도 잘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리더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권위가 있다. 이 권위를 통해 사역하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지침을 소개한다. ①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여기서 권위가 나온다. ② 섬김과 모범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처럼… ③ 성실함과 준비함으로… 팀원들 앞에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 말라 ④ 인격과 성품으로… 쉽게 흥분하고, 쉽게 상처받지 말라.
5계명. 콘티의 완성도를 높이라!… 준비하라! 고려하라! 지키라! 연결하라!
모든 찬양인도자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고, 또 마땅히 부담스러워야 할 작업이 바로 콘티 작성이다. 선곡을 하고, 연결을 하고, 다듬고 또 다듬는 이 콘티작성에 특별한 왕도는 없다.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은 한 분 이시지만, 그 하나님을 높이는 언어와 곡조, 상황과 회중, 인도자와 찬양팀은 전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티 작성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몇 가지 참고할 만한 내용들을 함께 나누기 원한다. ① 준비하라! : 바닷물 위에 올라와 있는 빙산의 일각은 그 아래 감추어진 90%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듯 찬양인도자도 콘티를 작성할 때, 찬양을 인도할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개인적인 준비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정보와 배움의 창을 열어놓고 있어야 하고, 개인영성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콘티작성이 ‘인기 찬양 모음’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도록 다양한 차원에서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② 고려하라! : 세 가지는 반드시 고려하자. 내가 속한 교회의 담임 목회자와 리더쉽 그룹들이 결정한 교회의 예배철학, 예배방향과 목회방침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찬양을 인도해야 할 성도들의 특징과 필요를 고려할 수 있어야 하고, 함께 동역하는 찬양팀원들의 수준과 능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③ 지키라! : 정해진 시간에 대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지역교회의 예배 세팅 안에서 할당된 찬양 시간은 찬양인도자들에게는 늘 충분치 않아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효과적인 찬양사역이 항상 시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집중력 없는 1시간 찬양보다는 잘 준비되고 정리된 15분이 훨씬 효과적이다. ④ 연결하라! : 똑같은 가죽 원단에서 잘라서 만든 두 개의 지갑이 있다. 하나는 명품이 되고 다른 하나는 가품이 된다. 차이는 마감질, 즉 끝 다듬기에 있다. 누가 만들었는가도 중요하지만 외면과 내면,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철저하게 다듬어지고 완성도를 높였는가가 가치있는 명품을 만든다. 곡과 곡의 연결고리를 결정하고 연습하는 것이 끝 다듬기이다. 연결고리의 안정감은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가장 큰 도구가 된다. 탄탄한 연결고리를 위한 연구과 연습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
6계명. 그만 말하라! 차라리 하고 싶은 말이 담긴 곡을 고르라!
많은 지역교회 담임 목회자들을 만나보았지만, 단 한 명도 “우리 교회의 찬양인도자는 멘트가 너무 짧아서 걱정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는 참 많이 들었다. ‘지나친 것은 오히려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라는 뜻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1~2시간 동안 홀로 찬양과 경배를 인도해야 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지역 교회의 찬양사역 안에는, 찬양 인도자들이 멘트를 통해 무언가 대단한 메시지를 나눌 만한 시간과 공간이 거의 없다. 이번 주 찬양인도 시간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메시지가 담긴 곡을 선곡해서 회중들이 스스로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깨닫고 고백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에 들어가는 소량의 소금처럼 ‘맛과 균형’을 위해서 멘트가 필요할 때도 당연히 있는데, 그럴 때는 다음의 몇 가지 원칙을 꼭 기억해 보자. ① 주제와 흐름에 맞는 짧은 성경구절의 힘 있는 선포는 회중들을 격려하고 집중하도록 도울 수 있다. 단, 서정적, 서사적인 시낭송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② 시작과 끝부분에 짧은 기도가 필요할 때도 있다. 단, 길이와 포인트를 늘 염두해 두어야 한다. ③ 찬양 중간에 가사를 불러주거나 노래로 다음 가사를 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단, 회중들이 정확하게 가사를 볼 수 있을 때는 굳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인도자가 뭘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책임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음악적인 빈 공간들을 굳이 그렇게 가사나 노래로 채우지 않아도 된다. 그대로 충분히 성령께서 일하실 것을 믿으라. ④ 열심히 준비한 멘트(성경구절, 기도, 가사인도…)는 어떤 경우에도 소리의 빈 공간 안에서 분명하고 정확하게 들려야 한다. 회중들에게 들리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⑤ 내용 못지 않게 목소리의 표정도 중요하다. 자신감 없고, 성의도 없고, 준비도 없는 멘트는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다. ⑥ 어떤 경우에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여러분 분위기가 왜 이렇게 무겁죠? 그런 표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설사 정말 그렇다고 해도 밝은 격려와 초대를 통해서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부르시는 빛 되신 하나님 앞에 함께 감사로 나갑시다! 생명과 구원이신 주님 앞에 기쁨으로 찬양하며 나갑시다!…”
7계명. 인도하라! 가본 길, 아는 길을 인도하는 ‘안정감’이 있는가?
우리는 ‘인도자’라는 말 속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목적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 이미 그 목적지에 여러 번 갔던 사람… 그렇기 때문에 주저하거나 조급해 하거나 서두를 필요 없이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등산을 생각해 보자. 인도자는 때로는 앞에 서서 ‘이렇게 오시면 됩니다…’라며 본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위험한 포인트 옆에 서서 ‘여기는 조심하셔야 합니다…’하며 설명을 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제일 뒤에 서서 뒤쳐지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부축해서 산을 오르기도 한다. 같은 원리가 찬양인도자에게도 적용된다. 찬양인도자는 회중들을 인도하는 ‘인도자’이다. 이 찬양 시간을 통해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찬양시간의 목적지가 어디인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있는 은혜의 보좌 앞이다(히 4:16). 찬양과 경배를 통해 그 보좌 앞에 나가본 경험이 있어야 회중들을 인도할 수 있다. 정확한 목적지와 방향, 길과 방법을 지식과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으면 억지로 다그치거나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안정감’은 찬양인도자가 가져야 할 아주 중요한 태도중 하나인데, 그 안정감은 단순히 성격과 성품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을 통한 ‘자유함’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찬양인도자는 ‘인도’를 할 때 때로는 ‘앞에서’ 비전과 도전을 통해 강하게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옆에서’ 회중들과 함께 예배자의 자리에 서서 안내하기도 하고, 때로는 ‘뒤에서’ 미처 남은 한 사람의 예배자까지 섬김과 격려로 붙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8계명. 돌발 상황에 대처하라! 정확한 판단, 신속한 대처, 안정적인 재출발!
한국에서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 장내 기능시험을 치를 때, 반드시 ‘돌발 상황 구간’를 통과해야 한다. 신호음이 들리면 2초 이내에 정지를 해야 하고, 3초 이내에 비상등을 켜야 한다. 운전 중 ‘돌발 상황’은 곧바로 큰 피해와 생명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대처 그리고 안정적인 재출발’을 늘 숙달하고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찬양을 인도할 때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이 늘 발생할 수 있고, 또 발생하기도 한다. “찬양을 인도하기 5분전에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긴다. 찬양이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모니터 스피커가 나오지 않는다. 땀이 눈을 찌르는 데 손수건을 두고 올라왔다. 목이 타들어 가는데 물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기타줄이 갑자기 끊어지고 나머지 줄의 튜닝도 틀어져 버렸다. 연습 때는 작게 부르던 싱어 한 명이 찬양이 시작되니 갑자기 크게 부르기 시작한다. 멀쩡하던 모니터 스크린에 자막이 사라져 버렸다. 자신 있게 불러준 가사가 자막과 전혀 맞지 않아서 회중들과 싱어들이 당황을 하고 있다. Eb key의 곡들로 찬양해야 하는데 Capo를 가지고 올라오지 않았다. 예고 없는 정전으로 찬양 중에 모든 전원이 끊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악기 연주자 한 명이 연주를 멈추고 인상을 쓰고 서있다…” 이런 종류의 ‘돌발 상황’이 무수히 일어날 수 있는데, 찬양인도자는 전체를 조율하고 인도하는 핸들을 잡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거나 시동을 꺼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분명히 예상치 못한 일과 돌발 상황들은 있다. 그러나 찬양인도자는 그럴 때마다 핸들을 놓쳐서 자동차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급제동을 할 때 마다 시동을 꺼뜨리는 ‘운전 미숙’을 넘어서서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핸들을 놓치지 않으며, 정확한 상황 판단과 신속한 순간 대처를 통해서 안정적인 재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항상 연습과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9계명. 성장하라! 지속적인 배움, 연습, 소통을 통하여 굳어지지 말라!
지속적인 배움, 연습, 소통을 통한 성장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인식이 되어 있다. ① 무엇을 배워야 할까? 무엇보다 말씀의 묵상과 연구, 적용과 나눔을 통한 배움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다양한 관점과 경험으로 쓰인 서적들을 탐독하고 공부해야 한다. 기회와 여건이 허락하는 데로 세미나와 컨퍼런스 등에도 적극 참석해서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들어올 공간도 늘 남겨 두어야 한다. ② 무엇을 연습해야 할까? ‘배움을 통한 내면의 채움과 성숙’은 자연스럽게 ‘연습을 통한 외면의 탁월함’으로 이어져야 한다. 가장 먼저 기본이 되는 노래를 연습해야 한다. ‘탁월하지는 못해도 방해가 되지는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부정확한 음정과 리듬, 발음을 수정하고 교정하는 연습과 자신의 음계와 음색을 정확히 파악하는 훈련을 통해 좋은 싱어가 되자. 무엇보다도 간단하게라도 녹음을 해서 객관적으로 자신의 노래를 들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또한 악기를 들고 찬양을 인도한다면 당연히 그 악기를 연습해야 한다. 이 역시 ‘탁월하지는 못해도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찬양사역은 ‘인도자가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한계선’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도자가 여러 가지 악기를 기본적인 수준이라도 다룰 줄 알고 이해하며, 음악 자체에 대한 용량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➂ 무엇을 소통해야 할까? ‘영성’은 ‘소통’이다. 삼위 하나님과의 소통, 그리고 그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들과의 소통… 그 안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사역이 세워진다. 홈페이지, 블로그, 이메일, 페이스북, 블로그… 수 많은 소통의 도구들을 분별 있고 균형 있게 사용하되, ‘온라인 소통이 오프라인 소통보다 더 앞서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이고, 무엇보다도 ‘온라인은 오프라인이 불가능한 상황과 여건 안에서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이렇듯 배우고, 연습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찬양인도자는 성장을 한다. 성장을 위한 배움과 연습, 소통을 멈추는 바로 그 순간부터 굳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자신의 오랜 틀 안에 딱딱하게 갇혀 있는 찬양인도자와 함께 동역하는 것만큼 찬양팀들과 회중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10계명. 새 노래로 찬양하라! 시편 151편,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찬양…
하나님께 드릴 나의 감사와 찬송이 있는가? 하나님께 올려드릴 내가 속한 공동체의 감사와 찬송이 있는가? 말씀을 묵상하거나, 공부하거나, 설교를 들으면서 오랫동안 간직하고 새겨두어야 할 말씀을 발견하곤 하는가? 찬양을 선곡하다가 원하는 메시지가 담긴 곡이 없어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는가? 같은 메시지라도, 담긴 곡의 틀과 색이 맞지 않아서 선곡에 고민을 한 적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들을 때 공감을 하고 있다면, 이제 ‘새 노래’를 향한 적극적인 걸음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새 노래’는 ‘(새롭게) 구원받은 백성이 (날마다)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며 (늘 새로운 마음으로) 부르는 하나님 찬양’이라는 기본적인 이해와 개념이 있지만, 여기서는 조금 더 실질적인 차원에서의 ‘새 노래’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새 노래’를 만들자. 새 노래를 부르자. 찬양 받으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그 분의 진리와 능력은 영원하시지만 시대, 민족, 상황, 언어, 문화, 민족에 따라 그 분을 찬양하는 다양한 ‘새 노래’는 영원히 계속 만들어지고 불려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➀ 먼저, ‘새 노래’는 음악을 전공한 사람만 만든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성도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불려지는 수 많은 찬양들은, 항상 음악을 전공한 작곡가와 문학을 전공한 작사가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누구나 모차르트와 바하의 음악을 만들 수는 없지만, 누구나 시인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➁ 또한 ‘유명한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버려야 한다. 누구에게 얼마만큼 나눠지고 불려질 것인지는 전적으로 받으시는 분의 몫이다. 진실하고 정직한 가사와 부르기 편한 멜로디와 박자로 꾸준하게 회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나아간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하나님은 ‘유명한 노래’가 아니라 ‘새 노래’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➂ 마지막으로, 충분한 검증과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가사를 썼다면 목회자나 리더들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메시지인지, 신학적으로 오류는 없는지, 교회와 목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가사인지…’등을 확인 받는 것이 좋고, 곡을 썼다면 전공자나 가까운 분들에게 ‘음악적으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회중 찬송이라면 따라 부르기가 어렵지는 않은지…’등을 점검 받는 것이 좋다. 시편은 150편으로 끝이 났고, 수 많은 다윗의 노래와 찬송이 지금까지도 온 열방 안에서 고백되고 불려진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 다양한 민족, 다양한 교회공동체, 특별하게 지음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쓰고 부르는 ‘시편 151편’을 듣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께 올릴 ‘새 노래’를 만들어 보자!
정유성 목사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의 북쪽지역에 위치한 ‘덴버한인북부장로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정유성 목사는, [전문성을 가진 찬양사역자]와 [지역교회 담임목회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결되고 다듬어져서 지역 교회를 세워 가는가를 뿌리 깊게 고민하면서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광림교회 유다지파와 부흥한국 사역을 통해서, 그리고 미국에서는 남가주 사랑의교회 화요찬양과 예배공동체 Worshippers, 북미주 코스타, 그리고 지난 2009년부터 시작한 프뉴마 워십 사역을 통해서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목회자, 예배인도자, 작사, 작곡가로 사역을 하다가 지난 2015년 가을에 ‘시편 151편 – 하나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트리니티)‘라는 개인음반과 서적을 출시하기도 했으며, 정혜승 사모와 노아, 지나,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jungys3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