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옳은 말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을 한 당사자가 그런 옳은 말을 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때에만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입발린 소리나 공허한 말로 치부될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옛 선비들이 남긴 말들은 그분들이 한결같이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온 것을 알기에 다소 따라하기 어렵더라도 애써 귀담아들으려고 하게 마련입니다.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중요한 고전을 번역간행하고 있는 한국고전번역원의 권경열님 등이 펴낸 [생각, 세 번]에는 단 하나도 버리기 아까운 금쪽같은 글들이 가득합니다. 그 중 옛 선비들의 지혜가 담긴 인생명언 10가지를 올려봅니다. 삶의 어려움 앞에서 선인들은 어떤 자세로 난관을 극복해 나왔는지 알면 지금의 자신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전명언 10선..옛 선비들의 지혜가 담긴 인생명언
1 어리석은 자는 묻지 않는다
의심이 나면 어찌하여 묻지 않을 수 있나.
어찌하여 정밀히 하지 않을 수 있나.
-김낙행 <질의잠(質疑箴)>, [구사당집(九思堂集)]
‘질의잠’(質疑箴)은 ‘의심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글’이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김낙행(金樂行)은 의문이 나도 물을 생각을 안 하는 게 배우는 자의 병폐라 하고, 묻더라도 정밀하게 묻지 않는다면 묻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묻기를 좋아하면 여유가 생기고 자세히 물으면 분명히 알게 되지만, 모르는 것을 쌓아두거나 그냥 넘어가면 학문에 방해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묻기를 좋아해서 누구에게라도 묻기에 점점 지혜로워진다. 반면에 어리석은 자는 묻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모르면서도 아는 척한다.
2 차라리 입을 다물어라
일침을 가하기 어렵다면
입을 꽉 다물어라.
-조관빈 <신구잠(愼懼箴)>, [회헌집(悔軒集)]
‘신구'(愼懼)는 ‘삼가고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조관빈(趙觀彬)은 삼가고 두려워할 일로 말실수를 꼽았다. 옳은 말이라 해도 듣는 이가 불쾌하게 생각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고, 진심을 전해도 듣는 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쓸데없는 말만 많아진 꼴이 되고 만다. 꼭 해야 할 말일지라도 듣는 이가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전달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입을 꽉 다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3 말이 그 사람을 말한다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한다면 이는 말이 품격을 잃은 것이요,
행해서는 안 될 것을 행한다면 이는 행동이 품격을 잃은 것이다.
-유만주 <청언소품(淸言小品)>, [흠영(欽英)]
조선 후기의 학자 유만주(兪晩柱)의 말이다. “이거 해도 될 말인지 모르겠는데..”라며 비밀스럽게 꺼내는 말은 대부분 하지 않는 게 더 좋은 말들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만 “혀 아래 도끼가 들었다”는 속담도 있듯이 언제 어디서나 말을 조심해야 한다. 말도 말이지만 행동도 그렇다. 남몰래 편법을 써서 이득을 취한 것이 들통나는 바람에 높은 자리에 임명되려다가 오히려 감옥에 가는 경우도 있다. 이는 유명인에게만 해당되는 일만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자신의 언행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말만 하고, 해도 괜찮은 행동만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4 남의 말 듣기
다른 사람의 말이 나의 뜻에 거슬리면 시비를 가리지 않고 그 말을 버리기 쉽고
다른 사람의 말이 나의 뜻에 알맞으면 시비를 가리지 않고 그 말을 취하기 쉽다.
-이소응 <찰인언(察人言)>, [습재집(習齋集)]
대한제국 말의 의병장 이소응(李昭應)의 말이다. 중국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신하들과 술을 마시다가 문득 “임금이 되어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무슨 말을 해도 거역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장님 악사 사광(師曠)이 거문고를 번쩍 들어 왕을 내리치려고 했다. 왕이라면 신하들의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말을 잘 안 들으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귀에 거슬리는 말은 안 들으려고 한다. 상대의 말이 옳건 그르건 자기 기분에 안 맞으면 받아들이기는커녕 화부터 내는 것이다. 물론 남의 말을 비판 없이 다 받아들이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잘 가려서 들을 말은 듣고 버릴 말은 버려야 할 것이다.
5. 행할 때와 말할 때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면 행동해도 허물이 없고
말해야 할 때 말하면 말해도 후회가 없다
-유도원 <사당잠(四當箴)>, [노애집(蘆厓集)]
조선 후기의 학자 유도원(柳道源)의 말이다. 사당잠(四當箴), 즉 ‘해야 할 일 네 가지’에는 위의 두 구절 외에도 ‘해야 할 일을 하면 해서 이룸이 있다’와 ‘구해야 할 일을 구해야 하니 내 안에 있는 것을 구해야 한다’라는 두 구절이 더 있다. 이 글 바로 앞에는 사막잠(四莫箴), 즉 하지 말아야 할 일 네 가지를 적은 재미있는 글도 있다.
움직였다 하면 허물을 불러들이니 움직이지 않는게 상책
말했다 하면 후회스러워지니 말하지 않는 게 상책
했다 하면 되는 게 없으니 안 하는 게 상책
구했다 하면 비굴해지니 구하지 않는 게 상책
세상살이에서 상처받거나 지쳤을 때 ‘사막잠’처럼 푸념을 하다가도 다시 ‘사당잠’을 외며 마음을 가다듬던 모습을 떠올리며, 삶 속에서 수행의 끈을 놓지 않고 부단히 노력한 선비들의 생활태도를 기려보자.
6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라
비단옷 입는다고 영광될 게 무엇이며
문지기 노릇을 한다고 비천할 게 무엇인가
-성현 <십잠(十箴)>, [허백당집(虛白堂集)]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성현(成俔)의 ‘열 가지 일로 경계하는 글(十箴)’ 중 ‘부끄러움에 대한 글’에 실린 내용이다. 성현은 의(義)를 기준으로 해서 남만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행동을 바르게 할 수 있다고 하고, 악인과 함께하는 것을 항상 부끄러워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 것에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음을 말하고, 부끄러워할 일에 부끄러워할 줄 앎으로써 허물을 고쳐 훌륭한 인격을 갖출 수 있다고 말한다.
7 두 가지 잣대
남에게 흠이 있으면 끄집어내려고 하고
나에게 흠이 있으면 덮어버리려고 한다.
-이재 [청구객일(蒼拘客日)]
당쟁이 한창이던 조선 후기 숙종 때 반대 당파에게 말꼬리를 잡혀 먼 변방으로 유배되어 가는 늙으신 아버지를 수행하던 조선 후기의 학자 이재(李栽)가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한 말이다. 남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한 것은 그 시대에도 어쩔 수 없는 병폐였나 보다. 그나마 옛날에는 도덕과 염치라는 것이 있어서 자신이 한 말을 수시로 번복하지는 않았다. 그에 비해 요즘은 행태가 더욱 경박하다.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어버리고, 또 내일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 그저 정치판의 문화일 뿐이라고 치부하며 희화하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사회현상이 되고 말았다.
8 보리밥 뻣뻣하다 말하지 마라
보리밥 뻣뻣하다 말하지 마라, 앞마을에서는 불도 못 때고 있으니.
삼베옷 거칠가 말하지 마라, 헐벗은 저들으 그마저도 없으니
정약용 <사잠(奢箴)>,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사잠’(奢箴)은 사치를 경계하는 글이다. 모든 사람은 즐거울 권리가 있고 누구나 복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정약용(丁若鏞)은 이에 대해 즐거움은 누구나 누리는 것이고 복은 누구나 받는 것인데, 왜 누구는 추위에 떨고 굶주리며 누구는 비단옷에 맛있는 음식을 먹느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더구나 직접 짜지도 않으면서 오색영롱한 비단옷을 입고, 사냥하지도 않으면서 살진 고기를 실컷 먹어서야 되겠느냐고, 아무 하는 일도 없이 밥만 축내며 사치하는 일들을 꾸짖는다. 가난구제는 나랏님도 못하는 것이라며 모른 척하고 살 것이 아니라, 남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처지를 다행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쉽고도 귀한 일들에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다. 돈이란 것은 비천하게도 고귀하게도 쓰일 수 있다.
9 시련이 가르쳐주는 것
가난은 네가 검소함을 빛내 청렴을 떨치라는 것
병은 네가 섭생을 잘해 생명을 잘 지키라는 것-곽종석 <처곤잠(處困箴)>, [면우집(俛宇集)]
‘처곤잠’(處困箴)은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마음을 다잡는 글’이라는 뜻이다. 어려움에 처하면 편안함을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유학자 곽종석(郭鍾錫)은 편안히 처하는 데 독이 있으며, 슬픈 일도 복되고 경사스러운 데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 손가락질하며 욕하고 업신여겨도 그것은 언행을 다듬으라는 것이며, 어려운 일이 닥쳐와 마구 뒤흔들어도 그것은 덕성을 튼튼히 하라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물론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을 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단련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시련을 겪으며 언행을 다듬고. 덕성을 기르고, 청렴을 떨치고, 생명을 지키는 능력을 기를 수만 있다면 고통도 의미있는 인생을 일구는 소중한 거름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10 선과 악의 원리
선을 행하면 당장 복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결국에는 반드시 복을 받으며
악을 행하면 당장 화를 당하지는 않더라도 결국에는 반드시 화를 당한다.
-심대윤 [복리전서(福利全書)]
“참 이상하다. 저 사람은 저렇게 착하게 사는데 왜 저리도 못 살까?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안 도와주는 거야? 그런데 반대로 저 인간은 저렇게 나쁘게 사는데 도대체 왜 벌을 받지 않는 거지? 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잘 살고만 있잖아. 귀신들은 뭐하나 몰라.”
선행은 반드시 보답을 받고 악행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오히려 당당하게 행세하는 모습을 보며 ‘이 세상에 과연 정의가 있는가? 인과응보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라며 의심하고 분노하는 순수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조선 후기의 유학자 심대윤(沈大允)은 우리를 위로하며 세상 이치에 대한 확신을 주고 있다. 복리전서는 천하의 백성이 모두 복을 누리고 재앙을 면할 수 있게 하고자 만든 책이다. 심대윤이 위의 글과 같이 말하는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행이나 악행은 그 기운이 쌓여 어느 정도 형체를 이룬 뒤에야 그에 대한 복과 재앙에 이르는 법,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선행에 대한 보답과 악행에 대한 대가가 반드시 이를 것이다. 그것이 혹 나의 대가 아니라면 후대의 자손에게라도 이루어질 것이니 사람들이여, 이 원리를 안다면 그 어찌 ‘착하게’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Source: 한국고전번역원 권경열 [생각, 세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