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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대화하기20가지(Mark and Patti Virkler)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라앉히는 법 20가지

1. 하나님께서 내 안에 주시는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감지하기 위해,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2. 나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내 삶의 모든 분주한 활동들이 나를 따라 기도의 자리로 들어온다는 것을 너무나 자주 느낀다. 기도만 하려고 하면 일상의 모든 소음과 돌풍이 나의 주의를 끌려고 고함을 치고 안에서는 삶의 중압감과 책임이 나를 부른다. 나는 정말이지 기도하는 방의 문을 닫자마자 즉시 하나님과의 달콤한 교제에 들어가기를 갈망하지만, 그것은 억지로 되지도 않고 서두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늘 깨닫는다.

3. 단 10분이라도 기도하려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는데 잡다한 생각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감정이 심하게 요동쳐서 기도를 중단한 적이 있는가? 경주마처럼 어디론가 내달리는 생각들을 향해 “좋아! 3분을 줄 테니 실컷 떠들어봐. 하지만 그다음에는 진정해야 해! 그래야 내가 성령의 고요한 내적 감동과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을 감지할 수 있지 않겠니?”라고 말해본 적이 있는가?

4. 그런 적이 있다면 또한 제발 좀 조용하라고 당신 자신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지독하게 잠이 오지 않는 날 밤에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 애를 쓰는 것과 같다. 그럴 때는 제발 잠 좀 자라고 자신을 압박할수록 정신이 오히려 말짱해진다. 마찬가지로, 나의 바쁜 생각과 감정에게 “하나님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감지해야 하니 제발 내 머리와 마음에서 떠나라”고 요구할수록 그것들은 더 동요하며 소동을 부린다.

5. 극성스러운 자아의 소동을 진압하고 성령의 부드러운 내적 감동에 채널을 맞추는 데 실패해 완전히 낙심한 채로 기도의 자리를 떠난 적도 몇 차례나 된다. 어떤 때는 그렇게 분투하며 20분이 넘도록 시간을 보냈건만 단 1초도 하나님과 접촉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도하는 방을 나오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사람을 얼마나 깊은 좌절에 빠뜨리는지 모른다. 더욱이 기도할 시간이 많지 않을 때는 나 자신에게 화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는 사실에 벌컥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6.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면전에서 우리 자신을 신속하게 진정시킬 수 있도록 한 가지 빼어난 기법을 고안하여 성경에 계시하셨다. 물론 이것이 기도의 끝도 아니고 목표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나머지 기도 시간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되도록 도와주는 데 필요한 첫 단계이다.

7. “애쓰기를 중단하고 가만히 있어라.”
시편 46편 10절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be still. KJV)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 영혼 속에는 각자가 몸과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힐 때 체험할 수 있는 깊은 내면의 고요함이 있으며, 심지어 외적 혼란의 와중에서도 평화를 체험할 수 있다.

8. ‘신미국표준역성경’(NASB)은 이 시편 구절의 ‘가만히 있어’를 ‘애쓰기를 중단하라’(cease striving)로 번역하여 ‘가만히 있어’라는 어구에 대한 동의어구 혹 대체어구를 제공하고 있다. ‘애쓰기를 중단하라’는 어구는 ‘마음을 편히 가져라!’, ‘꽉 쥐고 있던 것을 놓아라!’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지 이러한 어구들은 내가 이 고요함의 자리에 나아갈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훌륭하게 묘사한다.

9. 고요함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매사에 여유로운 태도를 갖는 것이다. 과거의 내게 인생은 일 자체,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어려운 일 자체였다. 내게는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것조차도 일이었다. 나는 내가 시작한 모든 것에 대해 진지했고 열심을 냈다.

10.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하시는 이가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나의 모든 일을 이루시는 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다. 나의 역할은 주님의 움직임에 휘감겨 함께 흐르는 것이다. 나는 과도한 분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완전하신 능력 안에서 편히 쉬어야 한다.

11.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이러한 내적 고요함에 이를 수 있을까? 첫 단계는 외적으로 우리를 산만하게 하는 것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막 1:35).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했을 때 파수하는 곳에 올라갔다(합 2:1). 엘리야 선지자는 두렵고 낙심한 상태에서 깊은 산의 동굴에 혼자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왕상 19장).

12. 내적 고요함을 탐색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마침내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 일찍 일어나 이른 아침의 정적을 나의 영에 평화를 가져오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

13. 그렇게 내적 고요함을 탐색하는 처음 몇 주일 동안, 나는 오직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만 직관이 맞춰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분석적 성향이 매우 강한 사람이므로 기도하기 전에 분석적인 생각에 잠기지 않게 조심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분석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지낼 수밖에 없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하나님을 예배하고, 씻으면서도 찬송하고, 그런 마음을 유지하며 서재에 들어가면 기도하는 시간 내내 영적으로 조율된 상태에 머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일단 분석적인 추론을 시작하면 다시 직관으로 돌아가기가 무척 어려웠다.

14. 예수님께 마음과 생각을 집중하려고 애쓰면서 나는 이것을 산만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내 몸이다. 신체 부위 어떤 곳이 긴장했거나 불편하면 고요함을 구하는 동안 자꾸 신경이 쓰였다. 내 경우에는 무릎 꿇는 자세가 기도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기도하는 시간에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식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는데 무릎이 아프거나 발이 저리면 주의가 분산되어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5. 무릎 꿇는 자세나 다른 어떤 자세로 내 몸이 불편해지면 그것이 즉각 나의 주의를 끌었고 그러면 나의 기도는 여지없이 방해를 받았다. 물론 몸과 영혼이 완벽하게 편안해졌을 때 결국 잠들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내게 가장 알맞은 자세가 책상에 성경과 종이와 펜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는 것임을 발견했다. 다윗도 때로 앉아서 기도했다(대상 17:16).

16. 두 번째 단계는 내적 요인을 해결하는 것이다. 고요함에 이르려 할 때 외부의 방해물을 조용히 시키는 것은 차라리 더 쉽다. 고요함에 접근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머릿속이 나의 주의를 끄는 온갖 소음과 생각과 압박감과 긴장으로 걷잡을 수 없이 소란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7. 가장 크게 들리는 마음의 소음은 “자동차 엔진오일 교체하는 걸 잊고 있었어”, “아직 부모님께 전화를 안 드렸네” 같은 것들이었다. 내 마음이 고요해지자마자,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과 깜박하고 지나간 일들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나의 주의를 끌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그냥 무시했지만 그것들은 기회를 엿보다가 약간의 틈이라도 발견되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달려들었고, 뒤로 미루려고 하면 오히려 더 크게 항의의 목소리를 터뜨렸다. 그렇다고 그것들에 집중하면 기도하는 일이 뒤로 밀린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겠는가?

18. 나는 그것들을 종이에 기록했다. 그 요구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여기 이렇게 차근차근 적어놓았으니 기도를 끝내고 처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 그것들은 나중에 내가 돌봐줄 것이라고 확신하고는 조용히 가라앉았다.

19. 나의 고요함에 불쑥 난입하는 또 다른 소음은 나의 양심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내가 아직 순종하지 않았을 때 양심은 경종을 울리며 말한다.
“너는 잘못했어! 죄를 지었다고!”
그럴 때 내가 그 소리에 위축되어 죄책감의 수렁에서 뒹굴어야 할까? 아니다.

20. 내가 진정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자 한다면, 나는 나 자신의 추악한 미숙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죄를 범했을 때 즉시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완벽한 용서를 받아들인다. 그럼으로써 나 자신과 나의 연약함을 넘어 예수님과 예수님의 크심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님과 대화하기: 내 인생의 가장 깊은 갈망” – 마크 & 패티 버클러(Mark and Patti Virk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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