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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엘세바와 이삭(창세기 26장)

이삭과 그 가족은 브엘라해로이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해에 그 땅에 흉년이 듭니다. 아브라함 때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이집트로 내려가 잠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을 때였기에 이삭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이집트로 내려 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2절). 데라로부터 시작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려면 그가 가나안 땅을 떠나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을 이삭에게 말씀 하시면서 있는 자리에서 흉년을 견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삭은 불레셋으로 가서 그랄이라는 곳에 머물러 살았습니다(6절).

그랄 땅에서 불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아내를 보고 반하여 누구냐고 묻자 이삭은 누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아브라함도 두 번이나 그런 잘못을 범했습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당시 사람들은 외지인이 들어오면 그런 식으로 외지인의 기를 죽이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로 인해 자신이 살해 당할 수도 있다는 이삭의 걱정이 당시의 현실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과 리브가의 애정 행위를 우연히 보게 됩니다. 이미 아브라함에게서 같은 일을 겪은 아비멜렉은 이삭을 불러서 크게 나무랍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아내를 후처로 들이려 하다가 하나님께 큰 책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20장). 그는 하나님께서 이삭의 가정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는 아무도 리브가를 건드리지 말라고 백성에게 엄명을 내립니다(11절). 흥미롭게도, 이삭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사실을 이삭 자신보다 아비멜렉이 더 굳게 믿었습니다.

그곳에서 이삭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서 점점 큰 부자가 됩니다. 처음에는 너그럽게 대하던 불레셋 사람들은 이삭의 재산과 가솔이 늘어가는 것을 보고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자주 겪는 전형적인 경험 중 하나입니다. 약자일 때는 동정해 주지만 강해지면 경계하고 배척합니다. 그들은 아브라함 때에 판 모든 우물을 흙으로 메워 버리고,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그곳을 떠나 달라고 요구합니다(16절). 우물은 목축업을 하는 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필품이었습니다. 우물을 막아 버린다는 말은 오늘로 하면 가게 문을 닫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삭은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떠나 그랄 평원에 자리를 잡고는 우물을 다시 파서 아버지가 붙인 이름을 붙입니다. 이삭의 종들은 새로운 우물을 파다가 샘줄기를 발견했는데, 그 지방 사람들이 그것을 빼앗습니다. 종들이 또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파자, 이번에도 그 지방 사람들이 또 빼앗습니다. 이삭의 종들은 다시금 피하여 다른 곳에 우물을 팠고, 이번에는 빼앗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빼앗김을 당하고 물러서는 이삭의 태도에 두려움을 느꼈을 수도 있고, 파는 곳마다 샘이 터지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팔레스틴 지방에서 우물을 파서 물줄기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이삭은 우물을 팔 때마다 물줄기를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넓은 곳)이라고 짓습니다.

얼마 후에 이삭은 브엘세바로 이사합니다. 그곳에 장막을 쳤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또 다시 축복의 약속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삭이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세력을 불려 가자 아비멜렉이 부하들과 함께 그랄에서부터 찾아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평화조약을 맺으러 왔다고 대답합니다. 이삭은 그들을 맞아서 잔치를 베풀고 불가침의 맹약을 맺습니다. 그 날, 종들은 새 우물에서 또 물이 터져 나왔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우물이 있는 지역을 ‘브엘세바'(맹세의 우물 혹은 일곱 우물)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에서와 야곱은 성인이 되었고 나이 40에 에서는 헷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맞아 들입니다. 아브라함의 가문에서 처음으로 이방 여인과 통혼을 한 것입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두 사람을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성경 저자는 “이 두 여자가 나중에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된다”(35절)고 적어 놓습니다.

묵상:

나이 든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삭은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성품도 유순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청소년기에 아버지의 손에 죽을 뻔 했으니, 키엘케골의 추측대로 그는 평생 기를 펴지 못하고 지냈을지 모릅니다. 그러한 그의 성품이 그랄 지방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리브가를 아내라고 말할 만큼 강하지 못했습니다. 그랄 땅에서 우물을 빼앗길 때마다 아무 말 없이 물러난 것도 그런 성품을 보여줍니다. 나중에 불레셋 사람들이 찾아와 평화조약을 맺자고 하자 그들을 손님으로 맞아 큰 잔치를 베풉니다. 결기와 의분의 기능이 완전히 거세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마치 그를 추적 하듯 가는 곳마다 큰 복을 주십니다. 인간적으로는 무력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그를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불레셋 사람들도 나중에는 경외심을 가지고 이삭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삭에게 찾아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응징하고 보복하기를 포기하고 양보하고 손해 보는 사람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이삭에게 함께 하신 분이 지금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하나님을 믿고 이 땅에서 평화를 만들어 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악다구니로 싸워서 내 꿈을 성취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을 믿고 누구에게나 선대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어야 합니다.  (와싱톤 사귐의 교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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