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장: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
해설:
16장과 17장 사이에 적어도 13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것은 아브람이 85세 때의 일이고, 17장에 기록된 이야기는 그가 99세 때의 일입니다. 구약성경의 기록들은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때 충분한 시간적 간격을 전제해야 합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연속적인 사건으로 읽으면 여러 가지 해결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생깁니다.
아브람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셔서 순종하며 흠 없이 살라고 권면 하면서 그를 크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1-2절).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아브람이 두려워 떨자 하나님은 그를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고 다시금 약속해 주십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고치라고 말씀하십니다(5절).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이고,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번성하여 여러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며,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표로서 낳은 지 팔일 되는 날에 모든 남자 아이에게 할례를 행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속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라고 하십니다(10절). 할례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언약이 “너희 몸에 영원한 언약으로 새겨질 것”(13절)이기 때문입니다. 할례 자체가 어떤 유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할례의 흔적을 볼 때마다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백성에 속해 있음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고쳐 주십니다. ‘사래’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반면 ‘사라’는 ‘왕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족장이었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사라가 장차 아들을 낳을 뿐 아니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혼잣말”(17절)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18절)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을 무시하시면서 사라의 태가 열려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19절). ‘이삭’은 ‘그가 웃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자손에게도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또 다른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아들과 “영원한 언약”(19절, 21절)을 맺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떠나가신 후, 아브라함은 자신과 이스마엘 그리고 자기에게 속한 모든 남성 식솔들에게 할례를 행합니다(23절).
묵상: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앞 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분이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불러내신 것은 앞 서 행하신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께 그렇게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내려가 아내 를 누이라고 속여 바로의 후궁이 되게 할 찰나에 개입하신 것도 하나님이 앞 서 행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많은 자손을 약속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앞 서 행하신 것입니다. 99세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을 새롭게 해 주시고 할례를 명하시면서 아들을 약속해 주신 것도 하나님께서 앞 서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자 아브라함은 그럴 것 없다고 사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정하신 일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아직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묵묵히 하루를 살아갑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그분이 앞 서 행하십니다. 요구한 적도 없는 일을 약속하시고 그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만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의지하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우리의 꿈과 계획에 그분이 맞추어 주시기를 바라는 데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꿈과 계획에 비할 수 없는 좋은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보다 앞 서 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미리 걱정할 일도, 염려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아, 우리의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을 믿고 “좁은 길을 기뻐 뛰어”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