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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과 찌포리

  예수는 비록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나사렛 예수라 불렸다. 그만큼 예수의 생애에 있어서 나사렛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나사렛에서 거의 30년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도와 목수 일을 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길이 없다. 나사렛은 갈릴리 지역의 보잘것없는 한 촌락에 불과했다. 따라서 나다나엘은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들의 메시아라고 알려준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요 1:45-46).

오늘날 나사렛은 유대교가 주류인 이스라엘 내에서 예루살렘, 베들레헴과 함께 기독교의 3대 중심지 중 하나로 정착되었다. 신약 시대 이후로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한 곳이어서 나사렛의 고고학적 발굴 조사는 수태고지 교회와 요셉 교회 지하 정도에만 국한되었다. 나사렛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임신 사실을 알려 주었다는 소위 수태고지 동굴이며, 이미 비잔틴 시대부터 기념 교회가 건설되었지만 파괴와 재건을 거듭하다 지난 1955년 대규모 교회의 신축을 앞두고 체계적인 고고학적 발굴을 시도하게 되었다. 발굴 결과 비록 소규모 촌락이었지만, 서기전 1,000년 이후 철기 2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또한 신약 시대에 바위를 파서 만든 지하 물 저수조와 곡식 창고 등의 흔적도 요셉 교회 지하에서 확인되었다. 비록 10여 년 동안의 발굴을 끝내고 1969년에 신축 교회가 준공되었지만, 이러한 신약시대 유적의 흔적은 요셉 교회와 수태고지 교회를 연결하는 통로의 지하 부분에 잘 보존되어 있다. 여러모로 볼 때 나사렛은 근처의 가나 마을과 마찬가지로 신약 시대의 전형적인 갈릴리 산간 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예수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자신의 고향 나사렛 지역보다는 북동쪽으로 30km 떨어진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3년 동안의 선교 사역을 펼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갈릴리 호수 변에는 당시 갈릴리 왕국의 수도였던 로마식 도시 티베리아스(Tiberias)가 있었고 제법 규모가 큰 유대인 마을 가버나움도 호수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가버나움은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처가가 있는 곳이어서, 이 도시는 자연스럽게 예수의 선교 본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의 나사렛 30년 생애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1931년 여름 미국 미시건 대학의 르로이 워터맨(Leroy Waterman) 교수는 찌포리라 불리는 나사렛 근처의 한 고대 유적지에 대한 발굴을 시도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이 예루살렘을 비롯해서 사마리아나 므깃도 등 유명한 도시들을 발굴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성서에도 등장하지 않는 초라한 폐허를 택한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신약시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에서 찌포리가 갈릴리 왕국의 첫 번째 수도로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서기 1세기에 건설된 4,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과 서기 1-2세기의 별장들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를 토대로 워터맨 교수는 신약시대에 나사렛은 문명과 고립된 촌락이 아닌 대도시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는 새로운 가설과 함께 어린 시절 예수의 교육적, 문화적 배경을 이 도시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따라 청중을 사로잡는 수준 높은 비유, 합리적인 율법의 해설, 그리고 심오한 이웃 사랑의 윤리 등은 보잘것없는 나사렛같은 시골 출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걷히기 시작하였다.

1985년부터 본격적인 대규모 발굴이 재개되어 카르도(Cardo)라 불리는 대로를 중심으로 계획적으로 건설되었던 고대 왕도의 구체적인 모습들이 차례대로 드러났다. 특히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된 대규모 회당이 발견되면서 이제 찌포리는 서기 3세기 동안 발전했던 유대교의 중심지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찌포리는 서기 2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유대교의 종교적 의결기구인 산헤드린의 중심지였고 탈무드의 원문이 되는 미쉬나가 서기 200년경 최종 편집된 곳이었다. 주변을 감시할 수 있고 방어에 유리한 우뚝 솟은 언덕, 수량이 풍부한 샘과 근처를 흐르는 하천, 비옥한 농경지, 그리고 사방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찌포리는 전통적인 갈릴리 지방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이미 서기전 100년경 예루살렘의 하스몬 왕조는 이 도시를 군사적 요새로 건설하여 갈릴리의 중심 도시로 개발하였고, 서기전 55년에는 로마의 총독 가비니우스(Gabinius)도 이곳을 군사적 요새로 발전시켰다.

서기전 40년 로마의 원로원에 의해 유다의 왕으로 임명된 헤롯 대왕은 서기전 38년 겨울 찌포리를 선점함으로써 유다 지역 점령에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되었다. 서기전 4년 헤롯 대왕이 죽은 후 그의 셋째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가 갈릴리 왕국의 분봉 왕으로 임명됐을 때, 당연히 전략적 요충지인 찌포리를 새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따라서 서기전 4년 헤롯 안티파스가 찌포리를 자율적인 도시라는 의미로 ‘오토크라토리스(Autocratoris)’로 명명하고 새 왕국의 수도로서 대규모 건축공사를 시행했을 때, 나사렛을 비롯한 근처의 마을 주민들이 이 공사에 대거 참여했을 것이다. 요셉의 직업으로 알려진 목수는 그리스어로 ‘텍토노스’로 표기되는데 넓은 의미로 일반적인 ‘건축 노동자’라는 학설도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요셉은 나사렛 근처의 대규모 신도시 건설 공사에 수년간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그의 직업을 이어받은 예수도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찌포리 건설현장을 오갔을 것이고, 어쩌면 이곳의 왕궁 부설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도 있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예수는 찌포리에 있는 극장에서 다양한 장르의 연극을 감상했을 것이다. 그리스 고전 문헌에서 연극배우는 휘포크리테스(hypocrites)로 불렸는데 신약성서의 복음서에서는 배우보다는 위선자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아마도 원래 예수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을 ‘이 배우 같은 자들아’라고 빗대어 꾸짖었을 것이다. 실제 생활과는 전혀 다른 삶을 연기하는 찌포리 극장의 연극배우들을 염두에 둔 예수의 언어적 유희는 극장이 없었던 나사렛같은 시골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나사렛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성벽에 둘러싸여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한 왕궁의 일상생활도 예수의 비유에서 구체적으로 잘 드러난다. 왕궁에 거하는 고급 의상을 차려입은 자들(마 11:8), 빚진 종을 용서하는 왕(마 18:23-35), 혼인잔치를 베푸는 왕(마 22:1-14), 왕과 왕이 전투를 벌이는 비유(눅 14:31), 그리고 예수의 추종자들 중의 하나인 헤롯왕의 재무장관 아내인 요안나(눅 8:3) 등은 모두가 찌포리나 티베리아스 같은 왕도와 동떨어져서는 생각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비록 중세 십자군 시대의 전승이기는 하지만 찌포리에는 예수의 외할머니 성 안나를 기념하는 교회당 유적도 있어서 혹시 어린 시절 예수가 외갓집에서 도시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서기 20년경 갈릴리 왕국의 수도는 갈릴리 호수 변에 새로 건설된 로마식 도시인 티베리아스로 옮겨갔다. 아마도 청년이 된 예수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직업에 충실했다면 새로운 수도 건설현장에서 일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갈릴리 왕국의 중심은 나사렛 근처의 찌포리에서 갈릴리 호수 변의 티베리아스로 옮겨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티베리아스가 복음서에 언급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후대의 랍비들은 ‘하맛트’라 불리는 유대인 마을의 묘지를 헐고 그 위에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어서 유대인들이 정결율법에 따라 일부러 이 도시를 피했다고 해석하였다. 따라서 율법을 지켰던 예수와 제자들도 되도록 티베리아스 출입을 삼갔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찌포리의 영화가 사라지고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하는 티베리아스의 새 시대가 열렸음을 직감한 예수가 자신의 선교 중심지로 갈릴리 호수 변의 가버나움을 택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였다.(자료:한국 성서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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