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엘리야스 (출처- http://www.cyworld.com/anastasis10/7451927)
길르앗 지역에는 엘리야와 엘리사와 관련된 성지가 있다. 성서는 엘리야를 소개할 때 길르앗 지역에 살고 있는 디셉사람 엘리야라 말하고 있다. 이에 근거할 때 디셉은 오늘날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으나 학자들은 대략적인 위치로 길르앗 야베스의 동쪽 8㎞에 있는 길베드 리스딥이라는 도시가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얍복강과 야르묵강 사이의 길르앗 지역의 산악지대에 있는 성읍인 현지명 텔 마르 일야스(Tell Mar Ilyas)를 디셉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텔 마르 일야스에는 현재 산 정상에 일부 바닥이 모자이크로 장식된 회당터로 보이는 60평 정도의 유적만이 남아있고 산에서는 요단강과 가나안 지경이 조망되기도 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엘리야는 아합 시대를 향해 첫 음성을 발하면서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잇다. 이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가나안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바알 종교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다. 바알은 농사의 신으로 농사에 가장 필요한 비와 물을 주관하고 있는 신으로 알려져 왔었다. 엘리야는 비와 이슬은 바알이 아닌 여호와가 주관하심을 보여주기 위해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였던 것이다. 엘리야가 우로가 없음을 선언한 뒤 머물렀던 장소는 현지명 와디 알 야비스 성서의 그릿시내인데 그릿시내는 엘리사의 고향인 아벨므홀라와 매우 인접한 지역을 흐르고 있는 작은 시내로 이곳에서 엘리야는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떡과 고기로 가뭄 중 연명하였고 시돈땅 사르밧으로 가기전가지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Tishbite (출처- http://bibleatlas.org/d.htm)
마르 엘리야스 (출처- http://blog.naver.com/lsb8257/150136537425)
마르 엘리야스 (출처- http://blog.naver.com/lsb8257/150136537425)
비잔틴 시대 교회 터, 모자이크가 남아있다. (출처- http://blog.naver.com/lsb8257/150136537425)
비잔틴 시대 교회 터, 모자이크
마르 엘리야스 (출처- http://blog.daum.net/kco0218/1952)
마르 엘리야스 (출처- http://blog.naver.com/lsb8257/150136537425)
마르 엘리야스 (출처- http://blog.daum.net/kco0218/1952)
마르 엘리야스 (출처- http://blog.naver.com/lsb8257/150136537425)
마르 엘리야스 (출처- http://blog.daum.net/kco0218/1952)
마르 엘리야스 (출처- http://blog.daum.net/kco0218/1952)
엘리야의 고향 디셉 (출처- http://blog.naver.com/lsb8257/150136537425)
엘리야의 고향 디셉 (출처- http://blog.naver.com/lsb8257/150136537425)
엘리사의 고향인 아벨므홀라는 그릿시내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오른쪽 언덕의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본래 이곳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주하기 이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곳으로 경사진 산언덕에 위치해 있지만 밭을 경작할 수 있는 비교적 비옥한 지역이다. 현지면 텔 엘 마크룹인 아벨므홀라가 성경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사사기 7장 22절에 의하면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르엘 평원 전투에서 기드온 300명 군사의 기습을 받고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지역인 아벨므홀라를 지나 남쪽으로 도망간 사건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아벨므홀라에 있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받고 이곳 아벨므홀라에 와서 열두겨리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는 엘리사를 불러 제자를 삼아 이후 요단강에서 승천할 때가지 동행하게 된다
디셉과 아벨므홀라 (엘리야, 엘리사의 고향)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가장 유명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엘리야와 그 후계자 엘리사의 고향을 답사하기로 하고 암만을 출발해 성서에 나오는 ‘왕의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성경에 나오는 왕의 대로는 오늘날 요르단의 35번 도로 중 수도인 암만 북쪽으로는 가장 중심된 도로로 암만 남쪽으로는 사막으로 난 15번 도로 다음으로 중심을 이루는 도로다. 암만을 출발해 50km를 달리면 요르단에서 가장 큰 유적이 남아있는 제라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 안자라(Anjara)에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그릿 시냇가에 도착하게 되는데, 바로 시냇가 위 언덕에 엘리사의 고향인 아벨므홀라가 보인다. 그릿 시냇가는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때 가뭄이 들어 엘리야가 잠시 머문 곳으로 오늘날의 와디 알 야비스(Wadi al Yabis)이다. 그릿 시내에서 잠시 멈춘 후 도로를 따라 올라가자 바로 위에 야비스의 푯말이 있어 이곳이 그릿 시냇가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시내라고는 하지만 우기 때만 흐르는 와디(건천)인지라 도착했을 때도 물이 없어 엘리야 때의 가뭄을 상기시켰다. 엘리야는 이곳에서 까마귀가 가져다 주는 떡과 고기로 연명했으나 가뭄이 계속되어 이곳을 떠나 오늘날 레바논 지역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서 가뭄이 끝날 때까지 그곳 과부의 공궤를 받았다(왕상17:1∼9).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의 고향인 아벨므홀라는 바로 이 시내 계곡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오른쪽 언덕의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본래 이곳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주하기 이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곳으로 경사진 산 언덕에 위치해 있지만 밭을 경작할 수 있는 비교적 비옥한 지역이다. 오늘날 텔 엘 마클룹(Tell el-Maqlub)인 아벨므홀라가 성경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사사 시대에 미디안 사람들이 기드온 300명 군사의 기습을 받고 스레라와 아벨므홀라 평원의 경계를 경유해 도망하는 사건에서 언급되었다(삿7:22). 그리고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아벨므홀라에 있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받고 이곳까지 와서 엘리사를 후계자로 삼았다(왕상19:16, 19∼21). 오늘날 별다른 유적이 없지만 그 옛날 엘리사가 12겨리소로 밭을 갈다가 엘리야의 부름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던 아벨므홀라 가까이서 사진을 찍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엘리야의 고향 디셉으로 갔다. 디셉은 아벨므홀라가 보이는 그릿 시냇가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막길의 산을 넘어가다가 다시 비포장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엘리야는 성경에서 여섯 번이나 디셉 사람으로 나오고 있다(왕하3:1). 그리고 디셉의 지명에 대해서는 독립적으로 나오고 있지 않고 확실한 자료도 없기 때문에 디셉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약간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이전까지 디셉은 그릿 시내(와디 엘 야비스) 지류 중 하나인 와디 엘 마스쿠프(Wadi el-Masquf) 근처에 위치한 리스팁(Listib)으로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글루엑은 왕상17:1의 야베스 길르앗의 야베스 사람을 엘리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엘리야의 활동 무대가 대체로 와디 엘 야비스(그릿 시내) 지역이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디셉은 얍복강과 야르묵강 사이의 길르앗 지역의 산악지대에 있는 성읍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일반적으로 오늘날 텔 마르 일야스(Tell Mar Ilyas)로 보고 있다.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발굴이 거의 끝나고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마침 한국 사람이 이곳까지 찾아온 것에 대해 신기한 듯 나에게 엘리야와 관련된 모자이크를 가리켜 주었다. 현재 이곳에는 산 정상에 일부 바닥이 모자이크로 장식된 회당터로 보이는 60평 정도의 유적이 남아있어 그나마도 사람이 거주했던 곳임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고향인 디셉과 아벨므홀라.오늘날 별다른 유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힘들게 이곳을 찾아 멀리 요단계곡 너머의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그 옛날 바알 숭배에 빠져 종교적으로 암울한 이스라엘을 일깨웠던 엘리야와 그 후계자 엘리사의 시대적 사명을 되새겨 본다 (국민일보 2005-12-12) (출처- 블로그명 : 0505cyj님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