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말씀, 여호와의 소리앞에
시(Psalms) 29:1-119
메릴랜드 존스 홉킨스 대학 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이승복 박사의 간증은 우리에게 상당한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와 미국 대표 기계체조 선수가 되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노려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연습 도중 척추가 망가져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본인이 느낀 좌절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어떤 선교사님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렇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고 분명 이 사건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실 하나님의 뜻이 있다.” 당사자가 받아 들이기에는 쉽지 않은 말이었습니다.
다른 때 같아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는 이 음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음 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들의 걱정어린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시 공부하여 의과 대학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존스 홉킨스 대학 병원의 재활의과 과장이 됩니다. 그가 그때 선교사님을 통해 들었던 ‘여호와의 소리’ 즉, 하나님의 음성을 붙들었기 때문에 이룬 열매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 있든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씀은 어디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요, 여호와의 소리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그분의 속성에서 나온 하나님의 편재성(Omnipresence)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우주 만물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리고 권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물 안에 계시지만 만물 그 자체는 아니십니다. 거룩하게 구별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분의 뜻, 여호와의 소리를 들려주십니다.(3,4,5,7,8,9)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3절)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4절)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5절)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7절)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8절)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9절)
그런데 누가 이러한 여호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꼭 필요한 사람이 듣습니다. 다윗은 그의 삶 가운데 ‘여호와의 소리’를 듣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도.. 계시니이다..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7-10).
아무리 밑바닥에 있다고 느껴도, 혹은 세상 끝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아도 하나님은 이미 그곳에 계시며 그를 붙들고 계신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서든, 무엇에서든 여호와의 소리에 귀기울였습니다.
폭풍우 속에서 울려 퍼지는 ‘여호와의 소리’ 를 통해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그 권능의 하나님이 힘과 평강의 복을 주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29:11)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크고 두려운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한 옷’을 입고 오직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라고 촉구합니다. 다윗은 삶과 예배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구별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합니다.
예비군복은 군대 제대할 때 입고 나왔던 옷입니다. 그런데 군 제대 후, 다시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예비군 군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흐트러지고 태도가 바뀝니다.
군 현역시절의 말년 병장으로 모두 변하는 것입니다. 모자를 비뚜로 쓰고 윗도리는 밖으로 내고 담배를 뭅니다. 돌아올 때는 술도 거나하게 취하여 워커 끈을 다 풀은 채로 복귀합니다.
예비군복을 입으면 마치 고삐가 풀린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되는 것은 ‘복장이 사람을 만든다‘입니다. 물론 게중에는 군복을 입었어도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밖의 복장보다 내면의 복장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나에게 입히는 복장대로 살아가게 돼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내면의 옷을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 즉 영적 예배‘(롬12:1)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씀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롬12:2)를 받을 때 입게 되는 것이 거룩한 옷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옷을 입을 때 여호와의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여호와의 소리, 하나님의 음성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이승복 박사가 듣고 분별했던 선교사님의 말씀도 이와 같았습니다. 여호와의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듣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그 소리가 특별하게 들립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배드릴 때,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살겠습니다”하는 고백과 간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한 말씀이 없으면 나의 영혼은 죽은 목숨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한 말씀이 우리에게 들리고 우리를 살리십니다. 이러한 절실함이 우리가 입는 ’거룩한 옷‘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주는‘ 사람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겸손의 옷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여호와의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게 됩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이 ’꼭 필요한‘ 백성입니다
그 절실함으로 거룩한 옷을 입게 하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그 한 말씀, 여호와의 소리앞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순종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