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2-22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겪는 아픔 가운데 하나는 사실 자체보다 “오해”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약속의 지연,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보며 우리는 쉽게 판단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그럴 수가 있어?” 그 순간 마음은 닫히고 관계는 멀어집니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상대의 형편을 생각하고, 상황을 살피며, 이해하려 합니다. 이 작은 차이가 관계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공동체를 살리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도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겠다고 계획했지만 일정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을 빌미로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바울은 믿을 사람이 아니다. 말이 자주 바뀌는 사람이다. 사도로서 권위도 없다.” 이렇게 그의 인격과 사역까지 공격했습니다. 계획의 변경이 곧 거짓됨으로 해석된 것입니다. 이것이 곡해입니다. 사실을 비틀어 나쁘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곡해는 교회 안에 있는 순진한 성도들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다고 분노하지 않았고, 맞받아치며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양심과 진실함을 말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안에서 이 문제를 풀어가려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자세입니다. 세상은 오해를 만나면 더 큰 오해로 갚고, 비난을 받으면 더 강한 비난으로 응수합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 사는 사람은 곡해와 오해를 이해와 화해로 바꾸는 길을 택합니다.
바울은 14절에서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된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표현입니까. 자신을 의심하고 비난했던 교회를 향해 여전히 “너희는 우리의 자랑”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넓은 마음입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조금만 섭섭해도 상대를 끊어내고, 조금만 기대에 어긋나도 등을 돌립니다. 그러나 바울은 관계를 끊지 않았습니다. 상처보다 공동체의 회복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계획하였을 때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라고 말합니다. 그는 계획을 가볍게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고린도교회를 사랑했고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의 길에는 늘 변수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계획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깁니다. 건강의 문제, 재정의 문제, 사람의 문제, 환경의 변화가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쉽게 누군가를 탓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이해를 배웁니다. 남에게는 관용을, 자신에게는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지금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어야 합니다.
18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은 미쁘시니”라고 선포합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계획도 바뀔 수 있습니다. 일정도 수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의 모든 약속은 흔들릴 수 있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20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안에서 예가 되니”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확정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실망할 수 있지만 주님께 실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람의 불완전함 때문에 믿음까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갈등의 현장에서는 모두가 자신이 옳다고 말합니다. 나도 하나님의 뜻이라 하고, 상대도 하나님의 뜻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준은 내 고집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낮아짐이며, 사랑이며, 용서이며, 화해입니다. 내가 이기느냐 지느냐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내 체면보다 공동체의 회복이 더 중요합니다.
22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분노할 때 절제하게 하시고, 억울할 때 인내하게 하시며, 미워할 때 사랑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변호자이시며 동시에 교사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오해 앞에서도 쉽게 흥분하지 않고, 상처 속에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며, 갈등 가운데서도 화해의 길을 찾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귀와 마음에는 두 음성이 들립니다. “그럴 수가 있어?”라는 판단의 음성과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이해의 음성입니다. 어느 음성을 따르겠습니까? 오해는 사람을 멀어지게 하지만 이해는 사람을 살립니다. 곡해는 공동체를 무너뜨리지만 화해는 공동체를 세웁니다.
혹시 지금 누군가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오래된 서운함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내 입장만 옳다고 여기며 상대를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곡해와 오해를 내려놓고 이해와 화해의 길로 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도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해 용서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도 화해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피스메이커로 세우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곡해와 오해를 넘어 이해와 화해를 이루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오해와 교만의 외줄을 타지 않게 하시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일로 인해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새롭게 찾아오시는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때론 비바람에 흔들리는
내 삶의 항해의 방향을 잡아 주소서.
오해보다 이해를 선택하게 하시고
교만보다 겸손을 배우며
예수의 심장을 갖고 피스메이커로 살아가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항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