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가오니
사 8:17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청와대 경호실 역사상 처음으로 아무런 정치풍파도 타지 않고 명예롭게 정년 퇴직한 인물이 있습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다섯 명의 대통령을 차례로 거친 ’주대준 장로‘입니다.
거제도에서 섬 소년으로 자란 그는 아버지의 병치레와 죽음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고학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처지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늘 긍적적으로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은 ‘주씨 아저씨’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교회에 갔을 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현판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성이 자신과 같은 ’주 씨‘인 줄 알고 친근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주 씨 아저씨‘를 평생의 멘토로 받아들입니다. 그가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전진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후 그는 바라보고 바라봤던 청와대에 취직해서 여러 요직을 거칩니다. 당시 정보 체제의 불모지였던 청와대에 경호 시스템을 IT로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경호실 차장이라는 중직에 오르게 됩니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청와대 경호에 ‘입지전적 인물’이 되어 아무런 정치 배경 없이 경호실 차장까지 승진합니다. 그가 그렇게 전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주씨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가 꿈을 구체적으로 이룰 수 있게 한 것은 ‘바라봄의 법칙’을 삶에 적용한 결과입니다. ‘말씀을 통해 비전을 꿈꾸고, 기도하며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을 삶에 실천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동명의 간증 책자까지 내게 됩니다. 책자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내 안에 있는 ‘안 된다’, ‘어렵다’, ‘불가능하다’, ‘포기하고 싶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달아났다”
“그분은 사막에서도 강을 내시고 광야에서도 길을 내시는 분이 아니던가.. 내가 요행을 바라지 않고 그분의 뜻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품은 꿈도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그분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확신은 현실로 이루어져 나갔다. 이른바 ‘입을 벌려 기도하고 바라보면 바라보는 만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체험을 통해 ‘바라봄의 법칙’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그의 스토리는 매순간 어려울 때마다 오히려 주를 바라봄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체험의 간증입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바라봄’을 남유다 백성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당시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합니다. 남유다의 왕 아하스는 위기 돌파를 위해 앗수르 제국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물리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런 그에게 이사야는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외칩니다.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북이스라엘도 아람도 앗수르도 아닌 하나님이라고 선언합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말씀한 것입니다.
당시 죄악 가운데 있었던 북이스라엘과 아람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할 것이라 예언하면서, 더불어 남유다도 하나님 보다 앗수르를 더 신뢰하면 자신이 믿었던 앗수르에 의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사야는 고통받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말씀합니다. 잘못된 길에 들어선 자에게 임한 고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데도 형통하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게 만드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서판에 쓰게 한 ‘마헬살랄하스바스라’(노략이 속히 일어난다, 고통이 속히 임한다)에 담긴 영적 의미입니다. 이때 해야할 것은 주님을 믿고 기다리며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오히려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솔직히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주만 바라본다는 것이 좀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지침으로 마음에 당장 오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려고 힘쓰다보면 조금씩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서 거룩한 꿈을 발견하고 그것을 마음에 품고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정도’(바른 길)입니다. 단순하고 쉬워서 무시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얼굴을 가리실 때
인간적인 꼼수를 쓰지 않게 하소서
주를 기다리며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