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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 Ministry and Theology

정직한 신학이고, 정직한 목회

<하나님 없이도 충분한 세계에서 목사가 하는 >

전부터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면 이상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설교가 길어서도 아니고, 회중이 적어서도 아닙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말했는데, 말이 어디에도 닿지 않은 같은느낌이었습니다. 말은 분명히 나갔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느낌. 공기 중에 흩어지는 것처럼, 설교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준비가 부족했거나, 본문 해석이 엉성했거나, 언어가 진부했거나 묵상을 덜했나 싶어 초조했습니다. 그래서 읽고 쓰고 다듬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문득 깨닫게 되더군요. 문제는 설교의 질이 아니라, 설교가 전제하고 있는 세계와 회중이 실제로 살고 있는 세계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알았습니다. 나는 간극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습니다.

루터가 살던 16세기를 생각해 봅니다.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들에게 믿음은 선택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웠다는 말입니다. 자연은단순한 물질계가 아니었고, 역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었으며, 천둥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의미가 있었고, 의미는 인간 바깥의 질서에서 왔다고 믿었습니다. 16세기 사람들에겐 세계 자체가 신의 언어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었습니다.

루터가 1505 폭풍우 속에서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했을 , 그것은 단순한 공포의 반응이 아닙니다. 번개는 신이 말을 거는 사건이었고, 루터는 언어를 당연하게 알아들었습니다. 세계가그렇게 구성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런 세계에서 선포된 칭의의 복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을까요. 죄의 무게가 실제로 느껴지고, 하나님의 심판이 피부로 닿는 세계에서, 오직 은혜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선언은 중세인의 실존 전체를 뒤흔드는 해방의 언어였을 겁니다. 루터의 복음이시대를 뚫고 나간 것은, 그것이 시대 사람들의 실존적 무게에 정확히 응답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앉아 있는 회중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왔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자연은 법칙으로 설명됩니다. 질병은 바이러스로 설명되고, 사회는 구조로 설명되고, 인간의 마음은 신경과학으로 설명됩니다. 설명 체계에선 초월이 필수적으로 들어설 자리가어디에도 보입니다. 이런 세계에서 하나님은 필수가 아닌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원하는 사람은믿을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을 있는 그런 선택지 말입니다. 믿음은 이상 세계가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매주일 설교단 앞에서 마주하는 세계입니다.

나는 30 넘게 신학과 목회로 살아왔습니다. 루터 신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논문을 쓰고, 한국으로 돌아와 목회 강단에 섰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언어가 세계를 가득 채우던 시절의 언어로 지금의 사람들에게 말해 왔습니다. 오늘의 세계를 제대로 것이지요. 죄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칭의의 기쁨을 설명했고, 하나님 앞의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은혜의 감격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언어가 맞지 않는 곳에서 말을 했으니, 피로감은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복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복음의 내용이 아니라 복음을 전달하는 언어와 방식인 같습니다. 그리고 언어를 찾으려면 먼저 지금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어디서 살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지금의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도 충분한 세계에서 살면서도, 때로 충분함이실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이루었는데도 찾아오는 공허함, 성공의 한가운데서 불현듯 밀려오는 허무감, 삶이 무언가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설명할 없는 갈망. 이것은 신앙인만이 느끼는 심연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서, 아무런 종교적 언어 없이 살아가는사람들도 갈망을 압니다. 다만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몰라서 침묵하거나, 다른 것으로 채우려다 지칠 뿐입니다.

나는 갈망이 복음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사라진 하늘을 억지로 돌려주려 하거나,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복음의 방식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이미 내부에서 느끼고 있는 불완전함, 하나님 없이도 충분한 것처럼 보이는 세계가 채워주지 못하는 빈자리를 함께 솔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빈자리가 무엇인지를 알아볼 , 복음은 외부에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응답받는 것이 됩니다.

교회를 떠난 청년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이 신앙을 버리거나 잃은 것이 아닐 있습니다. 그들이 떠난 것은 교회가 자신들이 사는 세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일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지옥의 공포로 구성된 설교 언어는 갈망에 응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언어는 갈망의 진짜 이름을 가리고, 교회의 문턱을 높게 만들 뿐입니다. 이들에게 교회의 언어는 교회 밖에선 먹을 없는 외계어였던거지요.

루터가 1517년에 일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는 당시 교회의 언어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고통을 읽었고, 고통에 응답하는 복음의 새로운 언어를 찾았습니다. 면죄부를 사면서도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실존적 무게를 정확히 짚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비텐베르크를넘어 유럽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루터는 복음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시대의 언어로번역한 신학자였습니다.

목사인 나는 지금 작업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어가 세계를 가득 채우던시절이 지나간 자리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크게 소리를 지른다고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미 느끼고 있는 갈망의 이름을 함께 찾아가는 , 갈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짚어주는 , 그리고 갈망의 끝에,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복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일이 오늘 목사인 나의 숙제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지금 시대에 목사로 산다는 것은, 물음을 안고 매주일 강단에 오르는 일입니다. 나도 아직 대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물음을 놓지 않는 것이, 지금 내가 있는 가장 정직한 신학이고, 정직한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글: 최주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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