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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만나 Early Morning QT

한 밤중의 찬양 (The David’s Hava Nagila 시22:3)

시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히브리 민요나 찬양은 거의 ‘장조’보다 ‘단조’(minor)가 많습니다. 그래서 분위기에 이미 ‘슬픔’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마치 ‘한’이 깃든 한국 민요 곡조들과 비슷합니다.

빠른 템포의 곡들도 ‘단조’입니다. 단조로 시작된 곡들이 점점 빠르게 진행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떼춤’을 추는 댄스 곡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20세기 초반에 나온 히브리 민요 ‘하바나길라’가 그렇습니다.

뉴저지 뉴왁 출신 가수 Connie Francis가 불러 60-70년대 한국에도 소개되어 유명했던 하바나길라(Hava Nagila)는 히브리어로 ‘우리 함께 기뻐하자‘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의 민요입니다.

주로 축하할 일이나 기쁜 자리에서 활기차게 부르고 춤추며 즐기는 노래입니다. 그럼에도 역시 ‘단조’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히브리 복음송 ’우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여 춤을 추며 노래합니다’도 역시 ‘단조’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히브리 영성의 기초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이런 ’슬픔의 영성‘을 소개한 정호승의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
나는 희망의 절망을 먼저 원한다
희망의 절망이 절망이 될 때보다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

희망을 거절한다는 것은 모순이지만, 진실을 담고있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희망이 없는 희망‘은 무엇을 말할까? 긍정적인 상황, 절망과 고통이 없는 상황에는 희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마냥 다 좋을 때는 어떤 것을 바꾸거나 이루어야 할 의지도 희망도 필요가 없습니다. ‘희망’은 힘겨운 상황, 부정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절망을 이겨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보다는 분노에 가깝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미래 시제’에 있는 것입니다.

희망은 ’현재 시제‘ 안에서는 실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는 결핍의 상태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거리가 멀든 가깝든 희망은 ‘현재’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희망을 바라보며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하며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고 시를 갈무리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 22편을 쓴 다윗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앨랫샤할에 맞춘 노래’라고 소개합니다. ‘아침 사슴에 맞춘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노천명의 ‘사슴‘이라는 시를 연상시키는 소개입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을 호소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1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발하셨던 고통의 호소, 고난 당하는 의인의 기도가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완전히 죽음에 이르도록 버림받은 의인의 기도(12-21절)로 이어집니다.

한 밤중에 부르는 노래입니다. 한 밤중에 부르는 노래가 ’진짜 노래‘입니다. 정호승이 표현한 것처럼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깊은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은 바로 ‘한 밤중에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 가운데 ‘거룩하신 주’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의 순간에 부르는 노래를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희망을 갖게 하십니다.

아프리카의 밀림지대에 파견된 어느 영국 병사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가 소속되어 있던 부대는 밀림 한가운데서 적들에게 포위당해서 그 병사만 살고 전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6개월뒤 그 병사는 홀홀 단신으로 밀림을 헤쳐나와 구조되었습니다. 그를 발견했던 사람들은 그가 손에 꼭 쥐고 있던 지도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그는 밀림의 지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난 거야!” 하지만 그가 펼쳐 보인 종이에는 밀림의 지도가 아닌 영국의 지하철 지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지하철 지도를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이런 힘을 발휘합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게합니다. 희망은 행동으로 실현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희망)의 실상”이라 말씀합니다. 희망이 믿음을 낳고 그 믿음으로 행할 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롬5:5) 때문입니다.

오 하나님
먼저 절망의 손을 잡게 하소서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되게 하소서
주를 더욱 더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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