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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그리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화가 르느와르는 체계적으로 그림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집안이 가난해서 도자기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그의 재능을 보고 파리 화단에 소개하여 등단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손이 떨리는 수전증이 있었다. 그래서 붓을 손에 묶어서 그림을 그렸다. 어떤 사람이 와서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이런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이런 명작이 나옵니까?” 그때 르느와르가 대답했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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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신앙생활에서 자주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은혜가 무엇인지, 은혜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면, 저마다 대답이 다르고, 시대마다 그 뜻도 변해 왔습니다.

구약성경 속의 ‘은혜’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호의, 혹은 친절함을 나타내는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부터, 이스라엘의 선택과 구원, 율법의 부여 등은 모두 하나님의 호의의 행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시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스스로 규정한 본질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부터 34장 9절까지,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주다.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출 33,19)고 계시하셨습니다.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단지 하나님의 태도나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영적인 선물입니다. 은혜는 사역을 위한 특별한 힘으로 주어집니다. 은혜는 카리스마의 형태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고, 교회를 교화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돌보심을 매개하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특히 가난하고 박해받는 사람들에게 힘을 줍니다.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힘을 주고, 박해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행 4,33; 빌 1,7).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의미합니다.

중세의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능력을 강조했던 펠라기우스(Pelagius, 360-418)와의 논쟁에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주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이 자유의지로 악을 선택했고, 죄는 인간의 타락에 의해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타락한 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단독으로 선을 이루거나 구원을 성취할 수 없다. 인간이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입니다.

중세 후기 교회에서 은혜는 신적인 ‘성향’이라기보다는 신적인 ‘유출’이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는 은혜를 성례전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주입되는 어떤 본질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주입된 은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로 인도하는 선행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퀴나스에게 은혜는 인간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킨 것입니다.

칼뱅(J. Calvin, 1509-1564)은 구원의 시작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선택에 달린 것이지, 사람의 영적인 성향이나 장점들에 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은혜는 거듭남의 선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마술’(magic)로 보는 중세적 신학을 폐기했습니다.

20세기에 와서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은혜를 신학적 성찰의 중심에 다시 세웠습니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역사에 대한 낙관적인 진보론과 인간성에 대하여 심각한 도전을 받고, 종교개혁 정신,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다시 불러냄으로써, 19-20세기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을 정립했습니다.

은혜 받은 삶, 은혜 안에 있는 삶은 고통과 고난 없는 삶, 갈등 없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은혜 안에 있는 삶은 고통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놓지 않는 삶입니다. 은혜로운 교회는 갈등 없는 교회가 아니라, 있을 수 있는 갈등을 성숙하게 해결해가는 교회입니다. 은혜로운 예배는 한바탕 웃고 끝나는 예배가 아니라, 회개와 거듭남,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예배입니다. 은혜받았다는 것은 만사형통했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육신의 한계가 있고 고통스러운 눈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는 명작을 그릴 수가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작품도 재능과 지식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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