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과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여행하도록 돕는 안내서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정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설명해 줍니다. 또 성경에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 주는 경고 표지지판도 등장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정의가 빠져버린 예배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염두에 두는 편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사 58:2-3)
이에 하나님은 이런 수사학적인 질문으로 답하십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 58:6)
이스라엘 사람들은 축제와 절기를 지키며 금식을 했지만 무엇인가 이상했습니다. “왜 저희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으시며, 저희를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요구한 것은 정의를 행하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자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정의가 빠져 버린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아모스서에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서 5:21-24)
이사야 59:16에는 하나님이 “기막힐 수밖에”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기막혀 하신다고 묘사하는 성경 구절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기막혀 하실까요? 이사야서는 말합니다.
“성실함이 종적을 감추고 악에서 발을 뺀 자가 도리어 약탈당하는 세상, 이다지도 공평하지 못하여 주께서 눈을 찌푸리시지 않을 수 없는 세상, 그의 눈엔 사람다운 사람 하나 보이지 아니하고 중재하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으니 기막힐 수밖에”(사 59:15-16)
하나님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을실 뿐 아니라 불의를 막기 위해 애쓰지 않는 백성을 바라보며 기막혀 하십니다. 하나님이 정의가 빠진 예배를 이토록 미워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한1서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아무리 고상하고 큰 일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귀에 거슬리는 소음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거슬리는 존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러면 무엇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 예수님이 알려 주신 기본적인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다시 걸으며 그 분을 닮아가려는 삶의 몸부림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입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마음의 혁신(Renovation of the Heart)”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믿는다는 말이나 믿는다는 확신만으로는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행동할 때에야 비로서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 것입니다” 샬롬!
참고: 정의를 위한 용기(게리 하우겐, IVP+CLF)




